2000년대 초 어느 여름날, 휴가지를 고르다가 우연히 충무관광호텔을 예약하게 되었다.
충무관광호텔!
그 옛날 1977년 처녀 적 여름, 교직에 있을 때다.
한 학생 가족이 여름휴가를 떠나는데 어쩌다 나도 동행하게 되었다.
70년대, 다들 살기가 녹록하지 않은 시대.
당일치기 물놀이도 호사인데 여름휴가, 그것도 호텔에 투숙하며 피서를 간다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다.
그런데 그 학생의 이모들 세 가족이 그 당시 드문 자가용으로 전국에서 충무로 모였다.
충무관광호텔 아주 큰 방을 빌렸다.
여자들과 아이들은 호텔에서 숙박하고 남자들은 호텔 아래 동네에 방을 빌렸다.
바다와 육지, 그리고 섬, 섬, 섬...
푸른 다도해가 보이는 바닷가 언덕 위에 있는 나지막한 호텔.
바다에 연이은 울창한 남쪽 나무들로 둘러싸인 언덕 위 넓은 잔디밭.
호텔 옆 어둑한 숲 사이 가파른 오솔길을 내려가면 호텔 전용 해수욕장이 있다.
밤이 되니 호텔 옆 드넓은 잔디밭에서 한국 궁중무용 공연이 열렸다.
한여름밤의 호텔 옆 가든에서는 밤늦게까지 음악이 흐르고 비치파라솔 아래 테이블에서는 끼리끼리 모여 마시며 웃는 소리들.
마침 그때가 보름 경이었다.
늦은 밤, 사오십대 자매 세명과 호텔 아래 해수욕장 모래사장으로 내려갔다.
해변 한편 바위 위에 앉아 휘영청 떠오른 보름달 아래 가곡들을 불렀다.
낮에는 수영하고 오후에는 호텔에서 샤워하고 쉬다가 밤늦게 남자들은 호텔 아래 숙소로 돌아갔다.
새벽에는 어시장에서 신선한 해물들은 사 와서 객실에서 밥을 해 먹었다.
박봉의 교사 아버지 밑에서 오 남매가 아등바등 겨우 학교를 다녔던 나로서는 처음 보고 누리는 호사로운 시간들이었다.
그 뒤 가끔, 그 회목하고 여유로운 그 가족들과 그 여름, 특별히 뛰어난 풍광의 통영과 그 호텔이 생각나곤 했다.
그 후로 거진 20여년의 세월이 훌쩍 흐른 2000년대 초, 국가도 나도 경제 수준이 너무나 좋아졌다.
호텔로 휴가 가는 건 예사로운 일.
그런데 꿈인 듯 가끔 생각나는 그곳, 충무 관광호텔이 아직 있다니...
그 호텔.
객실에 들어가는 순간, 실망감. 무언가 다르다.
잔디밭은 대충 그대로 있었다.
푸른 다도해가 내려다보이는 멋진 풍광의 너른 잔디밭을 지나 한층 더 울창해진 숲 사이 오솔길을 내려가니 백사장도 나왔다.
예전의 전용 해수욕장은 일반 해수욕장이 되었다.
그런데 예전 그 방은 아주 컸고 창밖으로 드넓은 다도해의 푸른 바다와 간간이 지나가는 배들이 보었는데 좁은 이 방에서는 시내만 보이네.
아까 체크인할 때, 저가 여기 거진 20여 년 만에 왔어요. 호들갑을 떨며 감격한 탓인지
객실로 각종 과일을 예쁘게 담은 접시가 전달되었다.
그런데 접시 위 엔틱한 집기들이라니...
그즈음 가정에서 볼 수 없는 오래된 스테인리스 포크, 찻잔.
TV도 LG가 아닌 자그마한 금성.
이건 20~30년 전 그때로 시간여행.
예전 대통령들이 피서차 묵었다는 곳.
호텔의 모든 것이 낡았어나 프런트 웨이터들의 절도 있는 응대가 예사롭지 않다.
밤이 되었다.
예전 그 궁중무용 공연이 생각나건만 오늘은 그 너른 잔디밭에서 영화상영이 있었다.
예전의 그 비어가든 대신 지글지글 바비큐 파티가 열렸다. 딸과 남편은 잔디밭에서의 모처럼의 바비큐 파티를 즐겼고 두고두고 그 밤의 맛난 고기 맛을 그리워진다.
나는 그 예전의 궁중음악 소리와 가든의 그 밤을 그리워하건만.
이상하다...
언덕 밑 호텔 전용 바닷가가 일반 해수욕장으로 바뀐 건 세율이 흘렀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그 추억 속의 큰방은 무어란 말인가? 꿈이었나?
배 타고 충렬사를 둘러보고 다도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남망산 일주도로등을 둘러보며 그 해 여름은 아름다웠다.
마음 한편 풀리지 않는 한 문제를 남긴 채로.
두어 해가 흐른 여름.
이번 휴가 때는 아예 작정하고 2박으로 충무관광호텔을 예약했다.
다소 늦은 밤에 도착한 호텔.
데스크 담당자가 당황해한다.
예약이 잘못되어 우리가 예약한 방이 지금 없단다. 대신 큰 방을 드리겠단다.
아니 그 큰방에서 하루 자고 짐을 옮겨 다음날 예약된 방으로 옮기는 불편을 해라고요? 나는 역정을 내었다.
낮에 수영하고 수영복등의 짐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른 객실로 옮기는 불편을 해라니.
담당자가 말했다.
다행히 그 큰 방이 그다음 날까지 예약이 되지 않은 거니 연달아 2박 하셔도 됩니다.
약간 미안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웬 횡재야.
어쩌다 무궁화 네댓 개 호텔의 비싼 방을 사용케 되다니. 그것도 이박을.
담당자를 따라 들어간 방.
아~ 바로 그 방이었다.
그 호텔의 그 방.
창 밖으로 다도해의 푸른 바다가 꿈결같이 보인다.
20여 년 전의 그 방.
얼마나 넓은지 화장실 안에 세면대가 두 개나 있었다.
그래, 나의 기억은 맞아.
이 방이 아직 있었구나.
우리 여유로는 비싼 이 방을 예약 못하니 하나님께서 담당자의 실수를 통해 이 방을 쓰게 해 주시는구나.
"여보, 내가 말했지? 이게 바로 그 방이라고."
추억여행은 완벽했다.
계속 그렇게 그 호텔은 거기에 있을 줄 알았다.
적어도 30여 년 오랜 시간 있었으니 그 후에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충무관광호텔이 어느 날 없어졌다.
마치 동네 인근 가로수 길 나무가 어느 날 사라지듯이.
도로 양쪽으로 하늘 높이 솟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단풍이 들어도 좋고 눈이 오면 더욱 멋졌던 그 길.
그러나 어느 날 새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몽땅 뽑혀 없어지고 젓가락 같은 앙상한 나무들이 심겼다...
마치 단골 레스토랑이 없어지듯.
가족의 승진, 합격 등등으로 가슴 벅찬 날 가던 단골 레스토랑이 점점 서비스가 나빠지더니 어느 날 없어졌다.
장소가 없어진 게 아니라 추억이 사라졌다.
사정은 이랬다.
그다음 해 여름.
그 감격스러웠던 추억의 호텔을 별생각 없이 인터넷으로 예약하려는데 예약이 안 되는 것이다. 왜 이러지? 인터넷으로 이리저리 알게 된 사실.
그 호텔은 오랫동안 재정적 문제로 묶여 있었단다.
아하~. 그래서 TV도 집기도 온통 골동품이었구나. 리모델링이 전혀 안 되어 있었구나. 나는 그게 되려 좋았는데...
충무시에서 그 호텔을 사서 허물고 그 언덕에 충무 출신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 음악당을 짓는단다. (통영 국제음악당)
아이고머니나.
숨겨둔 나의 기쁨의 장소가 또 하나 지구상에서 사라 젔다.
뒤늦게 알게 던 사실.
박정희 대통령 별장이었다가 1971년 준공된 경남 등록 호텔 1호.
2009년 매각.
2012년 통영국제음악당이 되었다.
201호 넓은 그 방은 박정희 대통령부터 역대 다섯 명의 대통령이 묵었던 곳.
호텔 아래 해변에서의 주당들의 고백.
"보름달 아래 정든 이와 술잔을 기울이면 4개의 달이 뜨오.
하늘의 땅, 물결 위의 땅, 술잔 안의 달, 그리고 그대 눈 안의 달."
호텔이 있는 언덕 아래 해변에 예전부터 고층의 '마리나호텔'이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각종 열대림 나무가 우거진 언덕 위의 3층 나지막하고 고즈넉한 충무호텔에 머물 때 나는 그 아래 높이 치솟은 그 현대식 호텔을 은근 무시했다.
다시 여름이 왔고 휴가철.
이젠 통영시로 바뀐 충무시로 오랜만에 갔다.
예전에 무시했던 그 고층 마리나호텔에 어쩔 수 없이 투숙했다.
그 옆 언덕 위, 충무관광호텔이 있었던 그 자리에 지어진 웅장한 음악당.
마치 바람 맞힌 첫사랑이 사는 집 마냥, 차마 그곳으로 눈길도 발길도 주고 싶지 않다.
비가 온다.
우산을 받쳐 쓰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그곳을 가 본다.
시멘트와 유리로 만든 넓고 높은 텅 빈 건물을 여기저기 기웃거린다.
낯설다.
아~나의 사라진 옛사랑이여.
마리나호텔에서 잠이 들었다.
한밤에 얼핏 잠이 깨었다.
호텔 창문을 통해 희미하게 보이는 언덕 위의 웅장한 음악당을 흘겨본다.
그런데 이 소리는 무얼까?
통통통 통통통...
창밖은 어두운데 드넓은 검푸른 바다 위를 가로지르며 작은 불을 밝힌 똑딱선들이 한 방향으로 줄 지어 가고 있다.
열 척, 스무 척, 오십 척...
통통통 통통통...
꿈같은 광경.
옛사랑은 떠나도
통영은 아름답다.
우리는 가끔 얼떨결에 놀라운 곳으로 초대된다.
귀인들 곁을 스쳐간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누리는 자는 복되다.
그곳의 아름다움과 그분의 귀함을 심상하게 흘려보내는 바보스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