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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제이
Jun 19. 2024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슬픔이라는 호들갑
1983년.
일상이
유리처럼
깨어졌다.
매일매일 생각 없이도 잘 걸어가던 그 길이 이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생각하며 힘을 써야 나아갈 수 있다.
무심하게 흘려보던 풍경이
,
이젠
눈을 부릅뜨고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그나마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군중 속에 숨어 우르르 몰려다니며 나를 드러내기 싫어하는 성격이다.
그러나 이젠 높은 언덕 위에 올려져 발가벗겨긴 채 뭇사람들의 호기심, 동정 어린 눈길을 감당해야 한다.
여기저기에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쑤군쑤군하고 있는 것 같다.
끝없는 컴컴한 터널.
그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 터널 속을 나는 어떻게 통과해야 하나?
결혼 전 어느 날, 직장 일로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의례적인 지겨운 연수를 받고자 모였다.
오래간만에 만난 동료들 친구들.
안부를 묻고 잡담을 하느라 시끌 법 쩍.
그 모임의 진행자는 이 소란을 그치고 진행을 계속하고자 한 사람을 지목했다.
저어기 파란 카디건 입으신 분!
그게 바로 나였다.
에이, 운 없게도 하필 나야. 곤혹감.
1983년
1월
, 장애아 아이를 출산하고 마구 흔들리며 살던 그 해.
때도 없이 흐르는 눈물, 무력감, 전적인 절망.
세상에 나보다 힘든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병원에서 아픈 아이를 보면 부럽다.
치료해서 나으면 되니까.
병으로 아이를 잃은 가정을 보면 부럽다.
힘들지만 이젠 끝났으니까.
나는 현대의학이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는 선천적인 염색체 이상인 아이를 가졌어요.
의사는 백치라고 판정을 내렸다.
나이가 들수록 성장이 아니라 또 다른 복합적인 이상 증상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그들이 예측한 그 고통의 무게에 지레 짓눌려 나는 넘어졌다.
세상 사람들아, 당신들은 나의 이 아픔을 짐작이나 할 수 있나요?
정말 나의 이 힘듦은 소설책 한 권이 되겠구나.
그러던 그때.
유난히 더웠던 그해 여름.
온 나라가 눈물바다가 되었다.
건국 최초로 대대적인 이산가족 찾기를 공영방송에서 한 거다.
세상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생이별을 하고 헤어져 살고 있었던 것이었다.
6.25 피난길에서 밀려 내려가는 인파.
엄마는 동생을 업고 머리에는 피난 짐을 이고 한 손에는 큰애 손을 잡고 가다가 어떻게 아이 손을 놓친 거다. 영
영... 1
졸지에 아이는 천애 고아가 되었다.
멀쩡한 가족도 입에 풀칠하기 힘든 전쟁 피난통에 갑자기 고아가 된 아이들.
그야말로 부평초처럼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면서 살았던 것이다.
참 목숨이 질리기도 하지.
산다는 건 얼마나 억척같은 건가.
온 나라가 풍비박산의 전쟁통인데 부모도 집도 없이 눈치 하나로 이 집에서 얻어먹고 저 집에서 끼어 자면서 그렇게 삼십 년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결혼도 하고 일가를 이루어 그럴듯하게 살고들 있었던 것이었다.
때로는 웃으며.
말 안 하면 모르지요. 그런 슬픔이 마음 저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었는지를.
사실 KBS 방송사는 1983년 6.25 종전 30주년에 특집 프로그램 중 하나로 이산가족 찾는 방송을 몇 시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생이별을 하고 마음에 한을 묻고 살고 있는 이들이 그렇게 많은 줄 누구도 몰랐다.
연이어 나타나는 피붙이를 찾는 자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나의 부모, 형제- 꿈에도 잊을 수 없는 헤어져 버린 그 얼굴.
몇 시간 하려던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은 이젠 멈출 수 없었다.
정규방송을 중지하고 종일 방송했다.
그 해 6월 30일 시작된 방송은 11월 14일까지 138일간 세게 최장 생방송이 되었다.
10만 명 넘게 신청하였고 만 명 넘게 가족을 찾았다.
헤어진 피붙이를 확인한 순갼, 그들은 울었다, 웃었다. 만세를 불렀다. 털썩 주저앉았다.
그간의 고생을 설움을 토해냈다.
아이 때 엄마를 놓친 한 남자는 이젠 할머니가 된 엄마를 확인 한 순간, 아기처럼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엄마는 또 어떨까?
차라리 아이가 죽었다면 포기라도 하지 생이별을 했으니 그동안 그 어린것을 생각하면 밥이 넘어갔으며 하루라도 편히 잠들었을까?
방송에 채 출연할 기회도 못 얻은 이산가족들은 직접 나섰다.
생방송을 하는 KBS 청사 주위에 나붙은 수많은 전단들.
'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
잃어버린 부모, 자식 인적사항을 적은 전단을 벽에 붙이고 목에 걸었다.
일상을 접고 끼니도 거른 채 하염없이 찾아 헤매는 수많은 인파.
그 오랜 세월 동안 가슴에 묻어둔 그 얼굴을 행여 그곳에서 마주칠 까 봐.
찾는 사람들이 연결되면 Tv에 방영된다.
"
혹 그날 오빠랑 헤어지던 날이 흐렸지요?"
"
맞아"
"
집 마당에 무슨 나무가 있는지 알아요?"
"
감나무 두 그루가 있었지."
"
맞아 맞아요
"
<찿았다 오빠를 동생을. 33년 만에. KBS>
전국에서 서로 찾는 이들이 연결되고 때로는 고아로 외국으로 입양되어 간 자도 이젠 어른이 되어 찾아질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시간만 되면 TV 앞으로 모여들었다. TV 안의 그들과 함께 웃고 울었다.
동네 사람들을 만나면 다들 눈이 부어 있었다.
그렇구나.
나만 아픈 게 아니구나.
내 이야기만 소설 한 권이 되는 게 아니구나.
산다는 것은 참 숭고한 거구나.
거리에 흘러가는 저 많은 인파들.
말 안 하면 다 아무런 아픔 없이 살아온 것 같이 행복해 보이는 얼굴들.
그러나 그들 속에 상처 없고 아픔 없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놀이동산에 간다.
모두가 즐거운 얼굴.
겸연쩍어하면서도 캐릭터 머리띠를 하고 솜사탕을 먹으며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코끼리 열차를 타는 사람들.
퍼레이드를 지켜보는 사람들.
모두가 행복해 보인다.
빙빙 도는 회전목마를 아이가 타겠단다.
아이를 태우고 나는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지켜본다.
즐거운 동요가 울려 퍼지고 오르내리는 황금 마차를 탄 사람들은 아이들도 어른들도 하나같이 함박웃음을 피우고 있다.
적어도 지금은 고단한 인생이 아니라 왕자 공주가 되어 황금마차를 타고 있다.
눈물이 난다.
놀이동산은 참 좋다.
세상에서의 아픔을 그들은 그곳 '환상의 나라'에서 잠시 잊고 즐겁다.
그동안 적지 않은 사람들과 접하면서 그들의 기도 제목들을 들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들의 아픔을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아픔을 갖고 있다가 아니라 도대체 아픔이 없는 인생이 있는가?
내 손가락의 가시 하나가 다른 이의 중병보다 더 아프다.
그러나 나는 1983년의 이산가족 상봉 프로그램이라는 인생 파노라마를 보면서 나 자신에게 말했다.
슬픔이라는 호들갑에 빠지지 말자.
내 슬픔은 별거 아니구나. 응석이구나.
보라, 저 인생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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