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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un 20. 2024

음악의 충격

귀하여 더 아름다웠던 음악

1973년 봄.

스무 살이었던 그날은 내 생애 처음으로 내 남은 인생을 헤아려 보게 된 날이었다.

과연 나는 죽기 전에 이 아름다운 음악들을 다 들어보려나...


좁은 집에서 일곱 식구가 부대끼며 살던 내가

그 넓은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된 것은 내가 고등학생인 그 집 딸의 입주 가정교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 초반 대학생들의 아르바이트는 거진 가정교사.

신문광고의 절반이 대학생 가정교사 아르바이트.

타지방 출신인 내가 먹고 자고 또 등록금이 거진 충당되는 입주 가정교사.

학생의 부친은 미군부대에서 목회하시는 채플린.

학과 사무실에서 소개받고 얼마 안 되는 내 짐을 들고 들어간 그 집.

현관을 들어서자 넓은 거실이 나왔고 한쪽 끝에는 나와 함께 기거할 딸 방이 있었다.

그날은 내 인생에서 여러 가지 문화충격을 받은 날이다.

여태껏 내가 살았던 집보다 집 규모도 컸지만 여때껏 내가 보지도 못하고 누려보지 못한 문화를 처음 접했기 때문이다.

학생의 아버지가 미군부대에서 근무하시는 탓인지 집 분위기와 물건들이 그 당시에는 꿈같은 선진국 미국 문화.

그렇다.

욕실문화.

푸세식 변소가 대부분인 그 당시

그날 처음으로 세면실과 함께 있는 수세식 화장실을 보았다.

물만 틀면 쏴아 내려간다.

머리 감으려면 일반 집에서는 연탄불에 물 데워 마당에 가져가 비누로 감고 식초로 헹궜는데 그곳에는 샴푸라는 게 있었다.

아~ 아직 생각난다.

미제 레몬빛 플라스틱 통의  샴푸의 그 향기.

부엌문화.

여중학교 요리실습 시간에는 석탄 풍로를 썼다.

부채질을 열심히 해야 불이 산다.

그 후에 석유난로가 나와 편해졌다.

집에서는 연탄불.

그런데 그 집에는 가스레인지라는 게 있었다.


그런데  그런 물질적인 것보다 정말 나를 경악시킨 것은 음악-오디오세트와 LP 판들.

일제강점기 때 젊은 시절을 보내셨던 아버지는 일본 노래를 좋아하셨다.

리고 한창 인기 있던 이미자 노래도.

집에는 나름 작은 냉장고 만한 전축 세트가  있었고 일본, 트롯 음반들이 얼마는 있었다.

전축에  레코드판을 걸어 듣고 들으셨다.

그런데 입주한 그 집의 오디오세트는 차원이 달랐다.

특히 거실 한편에 꽂힌 수십 장의 LP 레코드들.

내가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클래식 곡들 그리고 팝송들.

내가 대학진학 전에 살았던 내고향 그 소도시에는 KBS방송국만 있었고 FM방송은 잡히지 않았다.

클래식과 팝송 같은 음악의 문화에 노출될 기회가 많이 없었다.

그런데 그날,

이것저것 레코드판을 걸어 들어보니 이건 신세계!

이런 아름다운 음악들이 있었구나.

아아, 죽기 전 이 아름다운 음악들을 다 들을 수 있으려나...


일전에 산악인 엄홍길 씨가 이끄는 일단의 뮤지션들이 네팔의 한 초등학교에서 소박한 음악회를 열었다.

서양악기는 물론 서양음악을 처음 접하는 그곳 아이들의 놀라 휘둥그레진 눈들.

좁은 교실에 미처 들어오지 못한 아이들은 창문 위에까지 타고 올라가 음악을 듣는다.

넋을 잃고 그 아름다운 선율에 귀 기울이는 광경.


몇 년 전 LA의 디즈니홀에 갔을 때다.

평소 집 근처 시립예술의 전당을 좋아하는 아들의 소원으로 미국에 간 김에 그곳도 가볍게 둘러보기로 했다.

차 주차료도 만만치 않았는데 건물 내부를 둘러보려면 투어예약을 해야 한단다.

예약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기프트숍에 들렸더니 세상에... 조성진 씨의 CD들이 판매대 맨 앞줄에 진열되어 있었다!

투어 시간에 맞춰서 약속장소로 갔더니 오늘 투어는 리허설 관계로 갑자기 취소되었단다.

그렇지 않아도 여행으로 피곤했던 나는 그 취소통보에 갑자기 더 피곤해지며 짜증이 나려던 순간, 때마침 콘서트 홀에서 리허설하는 어느 소프라노의 아리아가 흘러나왔다.

갑자기 내가 선 그곳이 다른 세상이 되었다.

마치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주인공 앤디가 틀어주는 모차르트의 아리아를 듣는 감옥의

죄수들이 서 있던 그곳처럼.

음악의 파도에 잠긴다.



https://youtu.be/un7tf_iCGPA?si=JdZCLEvTrgorNgzl



우리에게 허락된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

그중 귀의 호사인 음악.

예전에는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허락되었다.

그것도 레코드판을 사다가 축음기에 거는 수고를 해야 했다.

그 뒤에는 테이프를 CD를 돈 들여 사야 했다.

어쩌다 보니 이제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나 거진 값없이 마음껏 듣는 세상.

그 귀하고 비싼 정경화 씨의 연주를 공짜로 산보하면서도 듣는 세상.

그래서 귀한 것을 귀한 줄 모르는 세상이 혹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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