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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un 22. 2024

황홀한 세상

그럼에도 인생은 아름답다

십여 년 전 사진 한 장.

네 여자가 웃고 있다.

80대 엄마, 60대 나, 30대 딸 그리고  꼬맹이 외손녀.

다들 행복하게 보인다.

그런데...


세월이 흘렀다

어느 날, 어머니께 전화.

부쩍 치매가 심해지신 어머니.

섬망(치매 증상의 하나로 환각, 착각, 비현실감 같은 지각의 장애).

다리도 없이 둥둥 떠다니는 모르는 사람들이 옆방에 들어와 자고 간다고 하신다.

식사할 때 밥은 나누어 먹지 못해도 옆방 손님들에게 커피라도 한 잔씩 대접해야 하지 않을까 하신다.

어떤 때는 멀쩡히 이야기하시다가도 어떤 때는 마치 먼 나라 사람과 소통되지 않은 이야기를 나누는 듯하다.

"엄마, 그게 아니에요, 엄마가 헛것을 보고 계시는 거예요"

엄마를 붙잡고 소리치는 나를 엄마는 멀건히 보고 계신다.

때로는 정신이 온전해지면 "남들은 이렇게 헛것이 보이면 어떻게 하노?"

말을 듣는 나의 무력감 막막함.

살아 내 곁에 계시지만 이 세상 사람이 아닌듯한 엄마.

가슴이 답답하다. 불쌍한 엄마...


어느 날 아침,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세상 모든 근심 혼자 안은 듯한 음성.

사람과의 관계가 어렵단다.

아직 살아가야 할 시간이 많은 데

벌써 이렇게 힘드니 어찌할꼬?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날 수는 없는 노릇인데.


손녀는 또 어떤가?

4차원의 아이.

수업시간에 집중을 안 한단다.

생뚱맞은 일을 계속 저지른다.

유명한 상담센터에 갔더니 몇 개월 후에야 예약이 된다고 그냥 왔단다.

틱 증상.

심한 비염으로 종일 킁킁거린다.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지는 않을까?


세 여자의 상황들은 어렵고,

도움을 줄 수 없는 나의 무력감과 두려움.

밤늦게 까지 잠을 설친다.

주님 도와주소서...


3월에 늦은 눈이 내렸다.

예배 가는 새벽,

살짝 얼어 쌓인 눈 길을 걸을 때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바삭한 크래커를 깨무는 소리.

목련나무 꽃망울에 쌓인 눈이 얼어 투명한 얼음꽃이 맺혔다.

 교회 곁  닭축사에서 '꼬끼오' 닭이 운다.

소리가 밤과 낮의 경계를 연기처럼 휘젓는다.

눈을 감고 나의 안타까움과 연약함을 그분께 드린다.

'꼬끼오' 다시 닭이 운다.

"걱정 마라.

언젠가는 이 날도 그리워할 거야.

아픔을 아뢰는 이 순간도 그리운 순간이 될  터"


엄마는 그다음 해 봄,

사랑하는 막내아들 집에서 밤새 주무시듯 소천하셨다.

공무원의 박봉으로 다섯 자식을 대학 보낸 가냘프나 대책 없이 용감하셨던 위대한 어머니!

어쩌다 보니 어느 영부인의 장례가 치러진 대학병원에서 어머니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딸은 그 뒤 일을 시작했고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해졌다.

하는 일로 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


손녀는 차츰 외계인에서 지구인이 되었다.

아이들은 자라면서 몇 번 변한다.

친구들의 지지를 받아 학습대표가 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의술의 발달로 코수술도 무난히 받았다.

 

세상 살기란 사막, 풍랑이는 바다,

태산을 넘고 험곡을 가는 것과 같다.

그러나 

가난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 모든

 풍경이 모두 황홀하다.

차가운 겨울을 겪고 나면 한 줌 봄바람도 신기하고 고맙고 따뜻하다.

생명의 은총.


지난겨울은 혹독하게 추웠지만 이번 봄도 나는 살아 있다.

비록 부모님은 소천하셨으나 사랑하는 다른 가족들도 살아있다.

은총이다.

꽃처럼 아름다운 그들이

이 봄의 꽃들의 아우성을 보는 황홀한 세상, 2024년의 봄!


혹독한 가난한 가정에서  노예의 후손으로 태어난 한 흑인소년이 있었다.

부친은 가정을 버렸고 어머니는 매춘으로 생계를 이어 기야했다.

소년은 비행으로 소년원에 송치되었고 거기에서 음악을 알게 되었다.

그는 1901년 태어나 1,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공공연한 인종차별의 시대를 살았다.

개인적으로도 인종적, 시대적으로도 소망이 없었던 그 남자.

그러나 그는 전설적 재즈 아티스트가 되었다.

루이 암스트롱.

그의 노래,

 What a wonderful word!


푸른 나무들,  빨간 장미 

그들이 꽃을 피워요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

파란 하늘, 하얀 구름

축복받은 밝은 낮, 신성한 까만 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참 멋진 세상이야

하늘의 무지개의 일곱 빛깔들이 아름답게 하늘에서 빛나네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행인들의 얼굴에도.

친구들이 악수하면서 인사하네

정말로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말하고 있네

아기들이 태어나 울고 자라네

그들은 내가 배우지 못하는 더 많은 것들을 배우겠지

그런데 생각해 보니

참 멋진 세상이야.

참 멋진 세상이야.


인생의  겨울을 보낸,  허스키한 목소리의 암스트롱이 부르는 역설적 생의 찬가.


누구는 세계의  종말, 마지막 날에 이 노래가 울려 퍼져야 한다고 한다.

나도 나의 인생이라는 한 편의 영화가 끝날 때 엔딩크레디트로 이곡 낙점.

What a wonderful word!

황홀한 인생!


https://youtu.be/rBrd_3VMC3c?si=PaCNhpsRl7ry4Tb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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