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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un 24. 2024

한여름밤에

유성우가 쏟아진다.


어린 시절 몇 번이나 읽었던 동화
'사랑의 가족'
독일 아그네스 지퍼 여사 지음.
가난한 음악교사 집의 일곱 남매의 좌충우돌 에피소드.
책 내용 중 몇몇은 오십 년도 훌쩍 지난 지금도 따뜻하게 생각난다.
성탄절 트리 배송 알바 사건.
눈싸움 사건.
특별히 유성우 사건.
별똥별들.


어느 날.​
그날 밤에 유성우가  떨어질 거라는 걸 알게 된 아이들.

그러나 그들은 이층에 세 든 상태이다. 밤늦게  들어오려면 일층 주인을  깨워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이 시끌법쩍한   다자녀 세입자 가족을  탐탁하지 않게 여기는 주인 목수 내외.
어쨌거나, 한밤중에 졸린 눈을 비비면서 그 애들은 부모 몰래  집을 나왔다.

집 앞 쌓여있는 목재 더미 위에 앉아 밤하늘을 본다.
와우, 유성우다 유성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넋 놓고 황홀한 별똥별 잔치를 구경한다.

정신 차리고 집에 돌아왔을 때, 그 무서운 일층 주인을 깨우지 않고는 집에 들어갈 방도가 없다...


그 책의 이 장면은 두고두고 생각나곤 했다. 언젠가는 나도 그 감동적인 별똥별 잔치를 보리라..  

이십여 년 전 별똥별쑈를 한번 본 적은 있다.

그때만 해도 대기가 깨끗했다.

호젓한 삼층아파트 주차장에 거진 눕다시피 해서 떨어지는 별똥별을 딸이랑 탄성을 지르며 보았다.

아! 하는 순간, 꼬리를 그으며 눈에서 사라지는 별똥별..

찰나, 순식간(눈 한번 깜박. 숨  한번  쉬는 동안)!
그런데 그런 별똥별들이 수십 개씩 비처럼 쏟아지는 유성우.
일흔 가까이 살면서 무어가 바빠서 그 아름다운 밤하늘의 잔치를 챙겨보지 못할까.

몇 해 전, 드디어 천혜의 기회가 왔다.
유성우 소식을 접한 것이다.

예전 그 '사랑의 가족' 동화책 속의 그 아이들의 감동을 나도 생생히 느껴보리라.
밤 10시경부터 유성우가 시작된단다.
종일 설렜다.
저녁 식사 후 집에서 쉬려는 남편을 설득하여 함께 집을 나섰다.
종일 후끈하던 한여름 날씨가 이젠 조금 시원해졌다.

별똥별 관전 포인트- 불빛이 없는 곳, 넓게 하늘을 볼 수 있게 확 트인 곳.
어딜까? 그래, 근처에 있는 새 동네 개발 현장.
배밭이 연이어 있던 곳이 어느 날 배밭이 사라지고 평평하게 토지가 정리되었다.

한쪽에는 아파트들이 올라가고 큰 길가 쪽에는 주택터들이 구획화되었다. 그 넓은 땅에 도로들만 반듯하게 포장되었다.
아직 불빛도 없고 사방이 트인 곳이다.

그곳에 도착하여 타고 간 차 시동을 끄니 사위가 어둑하다.
매트를 깔고 자리를 잡고 하늘을 보기 시작했다.
하루 종일 한 여름의 태양이 달구었던 땅의 열기가  아직도 채 식지 않았다.  
큰 길가에 가끔씩 지나가는 차들의 헤드라이트만  주위를 밝힌다.
리 외에도 너덧 팀이 어둑어둑한 여기저기에서 자리를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게 들린다.
이야... 드디어 별똥별 쇼를 보게 되었구나. 그것도 남편과 함께.
조금씩 졸려져 감기는 눈꺼풀에 힘을 주면서 별똥별이 나타나리라는 방향의 하늘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혹시나 싶어 밤하늘의 여기저기에도 눈길을 준다. 별똥별은 순식간에 '반짝'하고 사라지므로. 행여 내가 다른 곳을 볼 때 나타났다 사라질까 봐  눈길이 바빠진다.

시간은 계속 흐르는데 당최 유성우는커녕 별똥별 하나 안 보이니 웬일이지?
여기저기 있던 다른 팀들이 하나씩 어둠 속에서 자리를 치우고 철수한다.
어느덧 11시가 넘었다.

우리만 남았다.
하늘을 올려보느라 이젠 목이 아프다. 어떻게 해야 하나? 혹시 우리가 떠난 후 우주쇼가 시작된다면?.
캄캄한 밤하늘.
드넓은 공사 현장의 길가에서 매트를 깔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 부부, 아니다. 나직이 시작되는 규칙적인 소리가 있었으니.
드르렁드르렁- 어느새 잠이 든 남편의 코 고는 소리.

가끔씩 차를 타고 그 동네를 지나간다.
그날 밤 건축 중이던 그 아파트는 이젠 이전부터 있었던 아파트 인양, 사람들이 쉼 없이 들락거린다. 그날 밤, 우리가 매트 깔고 별 보려던 곳은 이런저런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물론 밤에는 불야성이다.

지금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알까?
그것이 허허 들판이었을 때, 어느 한여름 밤, 별똥별 쇼를 보려고 그곳에 간 늙은 부부가 별똥별 보다 더 아름다운 추억을 갖게 된 일을.
별똥별이 아름다운 것은 하늘에서 반짝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여름의 복판 어느 밤, 한 부부를 캄캄한 들판에서 오직 둘만의 시간을 갖는 추억을 주었기 때문이다.
남편의 코 고는 소리에 사위가 평안해지는 잊지 못할 그 한 여름밤의 추억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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