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열애 후 결별했던 슈퍼모델 이소라와 신동엽이 23년 만에 만난 것이 화제다.
예전 이들은 결혼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의 사이였다.
공개 연애 중이던 1999년 12월, 이런저런 사건으로 둘은 루머에 휩쓸리며 결별한다.
그런데 한국 정서답지 않게 둘은 쿨하게 유튜브에서 그들의 감격스러운 재회를 보여주었다.
평생 같이 하리라 생각했던 그 사람
청춘의 한때를 같이 웃으며 보냈던 그간의 아름다운 추억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둘은 어정쩡하게 헤어지게 되었고, 새삼스럽게 이별을 변명할 여유도 가질 수 없게 되었으리라.
그건 아니야, 그건 오해야...
지나간 아름다운 추억으로,
오해를 변명하지 못했던 안타까움으로
이리저리 잠 못 이루는 밤들.
두 사람의 관계를 아는 사람들은 뒤에서는 쑤군쑤군하고 앞에서는 어색해하니 더 가슴이 아프다.
그랬던 지난 시간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세월을 보내고서야 가진 뜻밖의 해후.
둘 다 가슴이 벅차다.
남자는 가정까지 이루었다.
그간의 세월로 둘은 청춘에서 중년이 되었다.
흥분으로 들떴던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차츰 평상심을 찾는다.
그중 이소라의 말.
"이런 날이 오리라는 걸 진작 알았더라면 그동안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았을 텐데.."
상실.
우리는 뜻밖의 상실에 매번 익숙하지 않다.
으레 내 것이라 생각했던 물건이 없어졌다.
으레 내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나를 떠났다.
으레 나는 합격해야 하는데 놓쳤다.
실격, 실패, 실직, 분실, 실연...
으레 내 자식은 건강해야 하고 총명해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이 상실된 장애인이다.
상실에 괴로워한다.
마땅히 있어야 하고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런데 이소라 씨는
"이런 해후의 시간이 올 것 알았다면
그동안 그렇게 슬퍼하지 않았을 거"라 한다.
염색체가 하나 더 있는 아들을 출산하면서 나는 놀라고 슬프고 힘들어했다.
염색체가 평균인 아이인 첫 딸일 때는 생각지도 못한 상황.
친척들도 이웃들도 쑤군쑤군하고 어색해했다.
이 아이의 상실된 여러 능력에 안타까워하면서 잠 못 이룬 밤들.
다운증후군.
장애아.
그런데 살아보니, 알고 보니, 생각해 보니
정상과 장애의 구별은 우리 생각.
각자의 특성이다.
참새가 아름다운 향기의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고
장미가 훨훨 날아다니는 참새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장미가 참새더러 너는 향기 뿜지 못하지 흉보지 않고
참새가 장미에게 날지 못한다고 장애라고 하지 않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만난다.
우리에게 이런저런 역할을 배정한 인생 연극 감독이신 그분을.
왜 이런 배역을 주셨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하실 터다.
특별한 상실의 아이가 아닌
특별한 목적의 아이를 이 땅에 주신
이유를 말씀하실 것이다.
그때 나는 말하겠지.
"이런 시간이 올 줄 알았다면 그때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았을 텐데요.
억울한데요..."
언젠가는
그 놓친 것이 결코 놓친 것이 아님을 알게 되리라.
그건 그때의 내 생각.
한번 넘어졌다고
내 인생이 끝난 줄 알았는데 그 뒤에 더 놀라운 것들이 줄지어 있옴을 그때는 몰랐다.
뜻하지 않게 받았던, 살을 쪼개는 얼음조각 같은 차가운 사막에서 허덕이다 보니 정말 귀한 것을 붙잡게 되었다.
만물의 原因, Cause인 그분을.
인간이 예측불가한 놀라운 선물들을 주시는 분.
얼마 전 가족여행.
호텔은, 집에서 볼 수 없는 넥플렉스를 아들이 볼 수 있는 찬스.
침대 위에서 스낵을 아삭아삭 먹으며 자기가 좋아하는 '오즈의 마법사'영화를 보면서 하는 말
"엄마, 너무 좋아~"
나는 이 애가 태어나서 한동안,
많은 능력이 결여된 이 애의 인생이 안타까워 얼마나 슬퍼했는가.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지.
나의 무지가 억울했다.
이소라는 또 말했다.
"그게 누구와 함께 했더라도 과거의 추억은 추억대로 아름답다."
우리 아이들도 그렇지 않은가?
얼마나 귀엽고 얼마나 사랑스러운 순간들이 많은가?
그 행복한 순간을 미래의 걱정으로,
다른 아이와 비교하느라고 놓치지는 않은지.
그녀는 또 말한다.
"비록 남남이 되었지만 한때 누구의 친구로서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싶었다."
언젠가 이 땅에서든 천국에서든 만날지도 모를, 한때 나를 아껴주던 사랑해 주던 그 모든 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으면...
신동엽과 이소라의 23년 만의 해후를 보며
세월이 우리에게 드러내는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슬픔과 분노와 당황의 그 암흑시대가 마냥 허송세월은 아니었네.
그 시간을 견뎌내다 보니 조금 더 쉽게 살게 되었고
조금 더 삶의 본질을 보게 되었네.
마치
푸르고 풍성했던 잎들이 다 떨어져 버린 한겨울의 벌거벗은
裸木의 자유로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