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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ul 19. 2024

사람의 끝, 하나님의 시작.(아들 그림, 엄마글 4 )

압송과. 파송

             <바울의 로마 압송, 이재윤>


스마트폰에서 동영상을 보다가 필요한 곳에서  정지시켜 한 화면을 만든다.
쉼 없이 흐르는 인생의 강물에서 한순간을 건져 만든 한 화면, 한순간.
인생의 끝이라 생각했던 그 시간.

얼마 전 우연히 어떤 음악을  듣게 되었는데 기분이 묘해졌다. 이게 뭐지?
문득 떠오르는 한 장면.

기약 없이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들.
나도 입원한 지 거진 반년.
겨울 아침 햇빛이 스며드는 창가.
환자들의 기상을 재촉하며 병실에 퍼지는 바로 이 우울한 노래.
(알고 보니 '86년 당시 유행한, 해바라기의 '내 마음의 보석 상자'란 노래였다)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 노래가
나를 그 당시로 소환했다.

그때 나는 원인 불명의 장출혈로 입원 중이었다.
입원 전날, 네 살 된 딸은 내년도 유치원 등록을 했으나 결국 입학하지 못하고 멀리 외갓집에  보내졌다.
다운증 아들은 세 살이나 아직  잘 걷지 못한다.
애들은 엄마의 갑작스러운 입원으로  외갓집으로 보낸 지 오래다.
남편은 출근했다가 부인이 입원한 병원으로 퇴근하고  밤늦게 텅 빈집으로 귀가한다.
네 식구가 뿔뿔이 헤어져 생활하고 있다.

입원 중 온갖 검사를 했으나 계속되는 출혈의 위치도, 원인도 찾지 못한다.
계속 토하고 장기 어디에선가 피가 흘러나온다.
결국 이렇게 내 인생은 끝나는구나...
그런데 장애아 저 아들은 어떻게 하나?

아직 싱글로 있는 내 친구랑 남편이랑 맺어줄까?
종일  어지러워 누워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링거병을 올려보며 이런저런 생각...
그 당시 들었던  바로 이 노래.
삶의 끝이라 생각했던 그때,
지나고 보니 하나님 역사의 시작점.

어느  주일날 아침,
그날은 매일 면회 오던 남편조차 먼 처갓집에 아이들을 보러 갔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병실. 창문 밖을 혼자 우두커니 보다가 한 가족이 성경을 끼고 교회 가는 걸 보게 되었다.
그때  문득 든 생각. '살아나가면 전 가족이, 가능한 모든 예배에  참석하리라.
어쩌다 한 이 작은 결심이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그때는 몰랐다.

하나님은 내가 그 생각을 하도록 그 먼 길을 나를 끌고 오셨음을 나는 이제 안다.
c.s 루이스의 책 '나니아연대기'에서 꼬마들이 쫓겨 어쩌다 들어간 벽장 안 세상.
사람들의 이성으로는 결코 생각지도 못하는 놀라운 그 세상...
나도 어쩌다 그 세상으로 초대되었다.
사람 생각으로는 '어쩌다'이지만 그것은 필연이고 섭리이고 은혜이다.
절망, 사고, 슬픔, 때로는 우리의 악함이라는 미끼를 통해서도 그 귀한 세계로 초대하시려는 그분.

 그 당시는 의료보험 적용이 일 년에 반년밖에 되지 않기도 해서 반년 만에 휘청거리는 몸으로 억지로 퇴원했다.
그런데, 우연한 일들이 잇따랐다.
죽은 목숨 같은 BC의 시대에서 생명의 AD의 시대가 되었다.
나만의 일을 주셨다. 사람을 붙여주시고 일을 주시고 새로운 삶을 주셨다.
어느 틈에 건강도  주셨다. 그나마 오늘의 나는 그 장면부터다.

모세.
출산한 히브리종의 아들은 죽여라는 왕의 명령. 키우지 말아야 할 아들을 몰래 키우다 더 못 키워  이렇게 우리 애는 죽는구나, 강에 떠 내려보낸  아기. 이렇게 끝나는구나...
그러나 

아기는 왕족에게 발견되어 궁정으로 들어가고 왕자가 되었다. 그리고 자기 백성을 종이 된 그곳 애굽에서 자유의 땅으로 이끄는 자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요셉.
오가는 이 없는 벌판에서 이복형들에게 구덩이에 떠밀려, 이제 이렇게 죽는구나... 그런데 그는 어찌어찌하여 거대한 이웃나라 총리가 되어 가뭄으로 고생하던 그 부족을 살리게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그로 인해 애굽으로 이민 갔던 한 작은 부족이 거대한 민족이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야곱.
동생의 거짓말로 노한 형에게 쫓겨 정신없이 도망가다 맞은 광야의 밤,
돌베개 베고 눈 붙이며  끝이구나...
그러나  도망친 그곳에서,  이스라엘
12지파의 뿌리를 이루게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그리고 이 그림. 바울의 압송 장면.
복음을 선포하다가  초라하게 묶인 죄수 신세가 되어  배로 로마로 가게 된다.
모든 게 끝 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로마는 그가 그렇게 가기를 소망하던 사역지가 아니던가?
그곳에서 큰 사역을 했다.
찬란한 옥중서신들도 썼다.
사람들은 그를 죄인으로 압송했으나 하나님은 그를 파송하셨다.

사람이 환란이라 부르는 그곳.
그러나  지나 보면 하나님 작품의 꽃의 씨앗이 된다.
우리 인생의 감독이신 하나님이 연출하시는 이 드라마틱한 과정.
사랑의 섭리!
합력하여 선이 이루어지는 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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