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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 Jul 20. 2024

보시기에 심히 좋으셨더라(아들은그리고 엄마는쓰고. 5)

천지창조

          <  이재윤, 보시기에 심히 좋으셨다>


40여  전 어느 날,
태어난 지 채 한 달이 안 된 둘째 애를 데리고 소아과에 접종하러 갔다. 의사는  무심히 진찰을 끝낸다.
엄마는 머뭇거리며 말한다 "저기, 아기가
다운증후군이래요.
갑자기 안색이 바뀐 의사는 아이를 이리저리  유심히 들여다본다.
빨간 볼펜을 집더니 진료 차트에 무어라 쓰고 줄을 짝 긋는다.
그리고 말한다."아이고, 엄마 평생 고생, 아기 평생 고생..."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엄마는 참았던 눈물이 치솟는다. 그를 기다리고 있다는 거대한 해일 같은 그 고생의 무게감에 지레 짓눌려 땅 밑으로 한없이 꺼지고 있었다.

 출생 이틀 만에 알게 아이의 장애.
정신박약!(지금은 발달장애라 한다)  유전자검사 결과를 알려 주는 서울대 교수님의 판정은 백치!(지적 장애)
그뿐이랴? 양 손가락이 세 개씩 붙어 있다...

넓은 길로 가는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 무리에서  갑자기 내가 뽑혔다.
그리고 수렁 속으로 내팽개쳐졌다.
평범했던, 그래서 때로는 권태로울 때도 있었던 예전의 생활들이 얼마나 축복된 날이었던가? 행복이란 말은 존재하지 않지.
그 행복이 깨어질 때 비로소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가.

인생의 막다른 끝이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 될 때도 있다.
이 아이로 인해 나는 또 다른 개념의 행복을 알게 되었다.
비교가 아닌 절대적인,
큰 것이 아닌 작은 것,
사라지는 것이 아닌 영원한 것.-그런 행복.

우연과 우연이 잇따랐다.
사람의 우연은 하나님의 필연이다. 섭리다.
한동안 머물렀던 파리에서,  아들이 두 살 때   그곳에서 손가락수술이  세 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것도 거진 무료로.
열 살 즈음, 귀한 미술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고쳐 주신 그 손으로 하나님께서 붙여 주신 그 선생님께 그림을 배웠다.  

그리고 다음 달 있을 세 번째 개인 성경그림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아들 출산 후, 나도 수렁에 빠진 사람들이 으레 가는 '부정, 분노, 협상, 절망, 수용'의 기나 긴 여정을 거쳤다.
그 여정 중에 언제부터인가 나는 이 아이의 특별함의 이유를 말씀에서 알게 됐다.
그것을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시기 위함 '(요한복음 9: 3)이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로마서 8:28)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것보다 단순한 답이 바로 성경의 첫머리에 있었다.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보시기 심히 좋았더라' (창세기 1장)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분이 창조하셨다. 우리가 보기에는  어떠하든지  그분이 보시기에 심히 좋으셨단다.
내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것은 무어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 장애 때문에 이 아이도 엄마도 불행할 것이라는 생각(의사도 그랬지 않았나?), 도대체 이 아이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무어가 있을까?
그러나, 그런 것들은 내 생각일 뿐이었다. 이 아이를 내가 낳았지만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분께서 이 아이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주셨다. 그래서 그분께서 보시기 심히 좋으셨단다.
'태초에 하나니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의 '천지'에 아들 이름을 슬며시 끼워 놓으니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 버렸다.

지난 40여 년 동안
우리 가족은 하나님께서 그분 말씀을 어떻게 이루시는지 보아 왔다.
그분께서 지은 것을 어떻게 지키시며 인도하시는지를 본다.
미련한 우리들이 그 말씀에 승복하지 않을 수 없도록 차근차근 보여 주신다.  
때마다 필요한 인간 천사들을 보내 주신다. 말씀을 주신다.
그리고 이번 세 번째 미술 전시회까지 가지게 하셨다.

예전 그 의사가 한 말은 틀린 말도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다.
아들은 지금도 의사표현에 불편함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도움을 받아야 한다.
엄마인 나는 몸으로는 여전히 힘든다.
그러나 예전 같은  마음의 고통을 없다. 편안한 삶은 아니나 평안한 자유는 누린다.
아들은 전혀 기대치 못한, 나름대로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특별히 신앙과 예술로서 즐겁고 신나는 시간을 누린다. 때로는 엄마도 아들의 행복한 시간을 부러워한다.
색색의 연필로 그림을 그릴 때, 그것도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

아이의 장애를 알게 된 출산 이틀째날, 산부인과 빈 방에서 아이를 처음 보러 온 남편과 기도를 드리려다가  계속하지 못하고 결국 주기도문도 울음으로 끝냈던  장면이 생각난다.
 탄식하는 우리 곁에서 빙그레 웃으시는 주님이 이제 보인다."내가 보기엔 심히 좋은데..."라고 속삭이시는.

아들이 그린 그림을 들여다본다.
달과 별이 있다.
해는 잘 봐야 보인다.
기린이 있고 나무가 있다.
하늘 나는 새들의 펄럭이는 소리가 들린다.   흘러가는 물고기들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행복한 아들도 거기에 있다.

 '푸른 잔디 꽃밭은 누가 내셨나
보슬비를 주시는 하나님이 내셨지
저 하늘의 새들은 누가 키우나
푸른 숲에 재우는 하나님이 키우지
반짝반짝  저 별은 누가  내셨나
온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이 내셨지 '
( 어린이 찬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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