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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고시원

나는 이곳의 촌장

by 제이


이상한 고시원이 있다.
파주 금촌 고시원.
오윤환 원장님.

고시원은 고시 공부하는 분들이 묵는 곳이 아니다.
물론 월세 따라 여유로운 고시원도 있겠지만 금촌고시원을 포함 대다수의 고시원이 그렇다.
세면대, 변기가 각 방에 있는 원룸 얻을 형편이 되지 않은 분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곳.
1.2 m×2m 크기, 1.5평 크기
(자동차 한 대 주차장 크기보다 작다)
대부분, 창문도 없다.
좁은 복도 양쪽으로 다닥다닥 붙은 방들.
옆방의 작은 소리는 듣고 있으면서도 막상 옆방 거주인 얼굴은 서로 잘 마주칠 일이 없는 관계.
경제적 궁핍이 사회관계의 궁핍이 된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누구 한 사람 의지할 이 없고, 내 한 몸 누일 데 없는 자가 찾는 곳.
가족은 있으나 버림받은 자.
대부분 무직, 일용직.
출옥은 했으나 사회에 적응을 못하는 자.
내일 죽으려 하는데 그래도 오늘 하룻밤 빈방 있으면 재워달라는 사람도 있다.
최소한의 월세 20여만 원을 내고 들어가는 곳.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어떤 이는 정치가가 된다.
힘든 이를 도우려고 사회복지사가 되는 이도 있다.
영혼을 구하려고 종교인이 된다.
때로는 소리 높여 부르짖고 매스컴을 타며 각광을 받는다.
그러나
굳이 전공 공부를 하지 않아도 내 밥벌이를 위해 시작한 평범한 내 일을 통해서 '숭고한 일'을 하는 이들이 있다.
역시 조직, 환경보다 사람이 먼저다.
어떤 환경에서도 한 사람이 바뀌면 또 다른 환경이 된다.

고시원의 운신하기 어려운 좁은 방에 살아도 세끼 밥은 먹어야 산다.
보통, 고시원 공용 부엌 한편에 밥, 라면, 김치가 제공된다.

파주 금촌 고시원 원장님.
매양, 라면이 주식이 될 수밖에 없는 그곳 입주인들을 위해 사비로 매끼 밥과 국을 마련해 주시기 시작했다.
사람의 온기가 더해진 끼니는 주린 배의 충족을 넘어 정서적 안정을 이룰 터.
사무실 벽에 가득 꽂힌 책들.
매주 한번 목사님을 청해 예배를 드린다.
육신의 밥과 영혼의 갈증을 채워준다.
할 수 없는 것은 못 해도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했다. 물론 간단한 식사라도 준비 경비가 만만치 않으실 터다.
수십 명의 식사 준비로 년 기백 만 원의 적자가 나서 적금을 해약했단다.
"내 먹는 밥에 숟가락 몇 개 더 얹으면 돼요."
"빈방인 채 두느니 잘 곳 없는 이에게 자게 해 주지요."
쉬운 듯하나 쉽지 않은 일이다.

본시 신문사에 다니셨다.
IMF 때 어느 날 갑자기 정리해고 당하셨다.
회사에서 해고당했다는 말을 가족들에게 차마 못 했다.
얼마 동안 출퇴근하는 체하며 집을 나와 종일 거리를 헤맸다.
수중에 돈이 없을 때는 점심도 굶었다.
배고픔의 슬픔을 겪어보았다.


< 국민일보 >



그분은 금촌 고시원 공동체의 '촌장'이시다.
그 고시원은 사회 약자들이 기거하는 곳이 아닌 미래의 인재 양성소라고 간판에 적었다.

먹고사는 일상에 묶여 하루하루 달리는 우리.
생각을 바꾸어
'지금 있는 이곳의 촌장은 바로 나다.'
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될까...
내 집이 ㅇㅇ아파트 ㅇ동 ㅇ번지가 아니라
'미래의 꿈나무가 자라는 곳'!
자연히, 엄마는 밥 해주는 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택해 맡기신 꿈나무를 키우는 이 가정의 촌장.
마치 금촌 고시원 간판 위에 적힌 <금촌 고시원, 인재 육성의 요람>처럼.
사회의 약자가 인재로 거듭난다.

세상을 천국으로 변화시키는 이는 부름 받은 특정한 소수의 사람이 아니다.
모든 이가 하나님의 부름(vocation)을 받아 자기의 일, 즉 직업(vocation)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한다.
종교개혁을 시도한 마르틴 루터의 외침 중
만인제사장설.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나 제도뿐 아니다.
따뜻한 마음과 비전을 가진 평범한 한 사람으로 인해 바뀔 수도 있다.
그게 바로 바쁜 세상에 떠밀려 가지 않고 잠시 멈추어 서서 생각하는 당신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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