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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킬것이 있는 자는 강하다

노후에 필요한것

by 제이

TV에서 어르신들이 좌담을 하고 있었다.
진행자가 물었다. "노후에 제일 필요한 게 무엇일까요?"
한 분이 말했다. "건강이지요. 아, 장수하면 무엇합니까? 아파서 골골대면 자식들에게 짐만 돼요..."
어떤 분은 "금고지요. 금고 안에 통장이랑 현금 등을 넣어두면 내가 늙어 아파 누워 있어도 금고 때문 나를 돌봐 줄 테지요."
'친구'라는 분도 계셨고 ''취미생활'이란 분도 계셨다.
그런데 한 분이 의외의 말을 하셨다.
"강아지요.
강아지를 키워보니 내가 나이들 수록 자식들은 지 살기 바빠 나에게 신경도 안 쓰고 같이 사는 마누라도 나를 시큰둥하게 대하는데 우리 집 강아지는 나를 볼 때마다 반가워 자빠지지요. 너무 좋아요.
또 그 애를 산보시키다 보니 내 건강도 좋아지더라고요. 그 애를 위해서라도 오래 살아야겠다는 삶의 의욕이 생기니 강아지, 최곱니다."
그 말을 듣는 옆 사람들이 "에이, 강아지가 살아 보았자 몇 년 산다고... " 하는 등 기를 꺾어도 그분은 "어쨌든 늙어서는 강아지 키우는 게 최곱니다."

일전에 '채비'라는 영화를 보았다.
서른이 넘었는데 유치원 아이 같은 지적장애인인 아들.
혼자서는 밥을 하기는커녕 밥을 제대로 차려 먹지도
못하고 양치질도 샤워, 면도도 엄마가 마무리를 해주어야 하는 청년. 내 아들처럼.

그런데 엄마가 시한부 뇌종양 판정을 받게 되었다.
하루 스물네 시간 신경을 써야 하는 부족한 아들.
이 험한 세상에 그 아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막막한 엄마.
엄마는 아이와 한날한시에 번개탄으로 죽으려 했다가 아들의 ''배고파"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엄마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하나하나 삶의 기술을 가리키며 아들에게는 생존의 '채비'를 엄마는 이별의 '채비'를 한다.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달걀 프라이 만들기부터 빨래, 청소 등등을 고군분투하며 가르치기 시작한다.

임종의 시각,
엄마는 말한다.
"애야, 고마워.
너 때문에 심심할 겨를이 없었네..."

그렇네.
내 아들도 지난 40여 년간 나에게 심심할 겨를을 주지 않았네.
아침부터 정신 번쩍 차려야 한다.
더 자겠다고 침대에 착 붙어있는 애를 어르고 달래어 깨운다.
씻게 하고 먹이고 복지관에 데려다준다.
하원 후는 미술 레슨, 태권도 도장, 이런저런 병원...
최근 장애인 전용 콜택시가 생겼다. 편리는 하지만 어떤 날은 예약, 확인 등으로 열 차례 전화한 적도 있었다.
요즘은 감사하게도 이동 바우처가 생겨 많은 도움을 받게 되었다.

어느 날,
남편은 출장 갔고 아들은 일박 이일 캠프 떠났다.
그날따라 나는 나갈 일이 없어 오래간만에 종일 집에 머무는 찬스.
오후에 어쩌다 잠이 얼핏 들었다. 깨어보니 사위가 캄캄한 저녁.
아~ 익숙지 않은 이 허전한 느낌이라니.
온몸의 힘이 빠지고 꼼짝하기 싫네.
말로만 듣던 빈집 증후군?
아들이 있을 때는 이리저리 바빠 언제 좀 쉬어보나 했는데 막상 아들이 없으니 내 끼니조차 챙기기 싫구나.
생각해 보니, 아들 덕에 나도 잘 챙겨 먹었구나.
아들 덕에 오래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의욕이 생겼고 바쁘고 씩씩하게 살았구나.

일본작가의 책 '뇌과학자의 어머니 치매에 걸리다'
치매를 연구하는 딸이 60대에 치매가 온 엄마에 대한 기록이다.
엄마가 이젠 요리를 할 생각도 않고 요리법도 잊으셨다.
같이 사는 딸이 어느 날 아파 눕게 되었다.
세상에나...
엄마가 예전엄마가 되셨다.
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드신다.


지켜야 할 것이 있는 자는 강하다.
그래서 세상 모든 엄마는 강하다.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

베르톨트 브레히트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었기에.







잘 사는 자녀는 지 살기 바쁜데 너는 만사에 나를 부르고 반기니
네가 나의 최고의 사랑스러운 강아지.
부족하게 태어날 때는 절망스럽기만 했던 아들.
그런데 살다 보니 어쩌다 나의 소중한 노후 재산이 되어버렸다.
어디 마땅히 쓸 곳 없는 옹이 진 나무가 산을 지킨다더니
세상일이란 다 나쁜 것도 다 좋은 것도 없는 것 같네.
합은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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