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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영 Feb 06. 2023

오, 바다가 불타고 있어

-사진 : 일출 직전의 동해-

 2월 5일 해뜨기 전, 동해안 양양이다. 가장 먼저 잠을 깬 동생이 나를 깨운다.

"언니, 저기 봐!"

동생이 커튼을 양 옆으로 걷어 젖힌다. 붉은빛이 하얀 벽지까지 붉게 만든다.

"오, 바다가 불타고 있어! 다정아, 저기 좀 봐. 어서 일어나."

세 여자가 침대에 앉아 바다를 본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얼굴만 내밀고 보다가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어 발코니로 나간다. 파도소리가 들린다. 어젯밤 내내 저렇게 철썩댔겠지.

"엄마, 하늘이 저렇게 빨간데, 해는 왜 안 떠?

"어서 보고 싶지? 기다려 봐."

"언니, 혹시 안개 때문에 해가 안 보이는 게 아닐까?"

"아니, 하늘이 저렇게 맑은데? 여기가 동쪽이니까 분명히 일출을 볼 수 있을 거야. 기다려 봐 봐."


  해가 뜨기 전에 세 여자는 조바심을 내며 설레는 마음을 나누었다. 잠시 후, 빛나는 불덩이가 빼꼼히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온전히 떠오른다. 딸아이는 동영상을 찍었다. 옷을 갖춰 입고 나가서 겨울바다와 마주 했다. 바닷물은 차가웠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면의 붉은빛은 사라지고 바다는 제 본연의 색깔을 찾아 쪽빛을 띠었다. 하늘은 그지없이 맑았고 파랬다. 구름 한 점 없었다. 햇빛을 받아 얼음조각처럼 빛나기도 했다. 등대가 있는 쪽에서 작은 배 두 척이 출항을 하였다. 북쪽에서 새 떼가 날아와 우리 시야에 들어왔다가 남쪽으로 지나갔다. 일출은 모든 생명을 깨웠다.


 아주 오랜 옛날을 상상해 보았다. 원시시대. 사람들은 해가 뜨면 일어나 하루 먹을 양식을 구하러 사냥을 갔을 것이다. 동굴이나 풀잎을 얼기설기 지은 움막 같은 거처에는 여자가 아이들을 깨우고 일용할 양식을 기다렸을 것이다. 사냥한 사람들이 돌아오면 모여 앉아 먹을 것을 나눠 먹으며 두런두런 얘기를 하였겠지. 무슨 얘기를 하였을까. 먹는 일을 마치면 다시 또 먹을 것을 구하러 사냥을 하고 아이들을 돌보았을 것이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하루를 정리하고 해가 지면 잠자리에 들었을 터이다. 원시시대의 사람들은 현대인보다는 훨씬 많이 잤을 것이다.


  사람의 신체 구조는 변한 게 없는데, 사람을 둘러싼 문명의 변화는 원시시대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변하였다. 이렇게 밤새워 불 밝히고 사람들이 읽고 쓰고 연구하고 일할 줄 누가 알았으랴. 그러니 각종 신체적 정신적 질병이 생겨난 게 아닐까 상상해 봤다. 원시시대 사람들의 평균수명보다 지금의 평균수명이 길어진 것은 의학을 비롯한 각종 문명의 발전 때문이지, 인간의 신체 자체가 튼튼하게 진화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내 생애 두 번째로 본 바닷가 일출이었기에 이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내가 바닷가에서 일출을 본 것은 고2 때 설악산 수학여행 다음으로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하면 믿겠는가. 사실이다. 그 흔한 연말 연초에 일출을 보기 위한 여행을 한 적이 없다. 고2 때는 여러 친구들과 함께 보았기 때문에 커다란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이번처럼 날씨가 맑지 않아 제대로 된 일출이 아니었다고 기억한다. 아마도 일출보다는 친구들과의 친교에 관심이 더 컸을 것이다.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이나 감상은 나처럼 나이를 좀 먹어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은 순전히 내 생각이다.


  그동안 여행을 거의 다니지 않았다. 딸아이 둘이 초등학교 다닐 때는 아빠 없이 어린아이들을 나 혼자 챙겨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낯선 이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을 줄 뻔히 알면서도, 나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져 1박을 한다든가 하는 여행은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공부하느라고, 또 여행 비용도 만만치 않아 여행을 다니지 않았다. 딸아이들이 대학생이 되고부터는 내가 동행하지 않아도 되니까 국내여행은 물론 해외여행까지도 적극 지원해 주었다. 금전적으로 부담은 되었지만, 자식은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었다.


  이번 양양 죽도 여행은 여행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다. 내 동생이 서울에서 초등교사로 있는데, 시골 초등학교 그것도 바닷가 마을에 있는 작은 초등학교 근무를 하고 싶어 했다. 교환교사 신청이 받아들여져서 이 달에 이곳 양양 바닷가 작은 초등학교로 발령이 났고, 나와 동생은 아파트 월세를 계약하러 양양에 간 것이다. 멀리까지 간 김에 여행을 하게 되었다. 동생이 근무할 학교도 가 보았다. 1층짜리 조그만 학교였다. 그렇게 작은 학교는 처음 보았다. 교사가 열 명도 안된다고 한다. 학교에서 3분 내지 5분만 걸어도 바닷가였다. 동생의 시골학교 근무에 응원을 보낸다.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에서 양양은 참 먼 곳이었다. 자주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양양에 가면 숙소는 해결되고, 동생을 볼 수 있으니 동해안 여행을 지금보다는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동생은 2년간 양양에서 근무하고, 2년 후에 서울 초등학교로 복귀한다. 큰딸은 이번 여행에 동참하지 못해 아쉬움과 함께 큰 기대를 하고 있다. 동해바다여! 기다리시라.


2023년 2월 5일 양양의 일출 -죽도해수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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