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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영 Feb 07. 2023

목련화를 기다리며

  요즈음 우울한 사람이 많다. 치열한 경쟁, 일상의 반복, 풍요로움 속의 권태 등. 한 번이라도 우울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때로는 질병으로, 때로는 이별로 이 모든 것들이 사람을 우울하게 만든다. 이뿐인가. 인간의 유한성, 우주 속 하찮은 존재라는 자각에 드는 순간에는 실존적 우울에 빠지기도 한다. 의식을 가진 인간만이 느끼는 이 우울감. 우울감을 가지고 의사를 찾아가는 순간, 환자가 되고, 우울감은 우울증이라는 질병이 된다. 질병이라면 치료를 해야 하는데,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는 몇 가지 문진만으로 약물을 처방한다. 이 약물은 항우울제라는 것인데, 바로 약효가 나지 않고 15일 정도 꾸준히 잘 먹어야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고도 재발이 잘되므로 최소한 6개월가량 지속적으로 먹어야 한다고 단단히 일러준다. 6개월 만에 재발하는 병이라면 그건 치료라기보다는 임시방편, 내지는 증상 완화 정도일 뿐이다.


  가족의 질병이나 이별, 사별 등으로 인한 극심한 슬픔은 견디기 힘든 정신적 고통이다. 이 슬픔이 정신질환이나 정신장애는 아니다. 우울하다고 하여 약을 먹고 증상이 호전된다고 하여도 가족의 질병이나 이별, 사별 등은 해결되지 않는다. 일상의 반복이나 권태로 우울하여 약물을 먹고 증상이 호전된다 하여도 일상의 반복이나 권태가 해소되지 않는다. 누가 보아도 인생이 즐거워 보이고 주변 상황이 좋아 보여도 인간은 실존적 슬픔을 느끼는 존재다. 바로 인간의 생명이 유한하다는 사실 말이다. 개인에 국한하여 아무리 좋은 환경에 놓여 있다 하여도 조금만 관심을 돌려 보면 지구 저편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있고, 지구는 점점 병들어 가고, 사회적인 부조리와 전쟁,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 등도 사람을 슬프게 만든다. 인생 자체가 슬픔의 연속이다. 그래서 인생은 고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인생이 고해라는 말은 인생이 허무하고 허망하니 아무렇게나 살자는 말은 아니다. 너나 나나 고해의 바다에서 살고 있으니 서로 가엾게 여기고 서로 배려하며 서로 도우며 살아가자는 말일 터이다.


  항우울제는 사람을 몽롱한 상태로 만들어 우울감, 슬픔 등의 감정 자체를 둔하게 만든다. <가짜 우울>의 저자인 에릭 메이젤은 이 우울감을 ‘가짜 우울’이라고 한다. 진짜는 ‘슬픔’이라는 감정이다. 슬픔의 감정은 의식이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감정인데, 이 슬픔의 감정을 우울증으로 둔갑시켜서 슬픈 사람을 우울증 환자로 만든다고 비판한다. 의료계, 제약회사, 그리고 광고사 등이 합작하여 우울을 권하는 모양새다. 바로, 슬픔의 의료화. 우울하다고 하여 약물에 의존하다 보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 우울에 빠져 자신의 기분에만 신경을 써야 할까. 아니다. 자신의 실존적 문제에 집중하여 불행을 최소화하자고 저자는 제안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의 일상에 ‘의미’를 담자고 주장한다.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나 개인의 존재는 하찮은 미물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나라는 존재가 없다면 우주의 하찮음 조차 느낄 수 없다. 그러므로 나 개인의 존재는 가치롭다. 이 우주에서 나만큼 중요한 존재는 없다. 이것은 자기중심적 사고와는 다르다. 자기중심적 사고는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심리에서 일어나는 사고방식이다. 내가 중요하다는 의식은 나 이외의 사소한 것들에 얽매이지 말자는 얘기다. 내가 중요해지기로 결심하는 순간, 흐린 날씨도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내가 중요해지기로 결심하는 순간, 나를 모욕하는 몰상식한 사람들에게서 상처받지 않는다. 내가 중요해지기로 결심하는 순간, 외모에 대한 불만이 없어진다. 내가 중요해지기로 결심하는 순간, 온갖 소식과 뜬소문에 마음을 뺏기는 일도 줄어든다.


우리 가곡 '목련화'의 노랫말이 떠오른다. 끝부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그대처럼 우아하게
그대처럼 향기롭게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 값있게 살아가리

오- 내 사랑 목련화야 그대 내 사랑 목련화야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나 값있게 살아가리라 


'값있게'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봄이여 어서 오라. 목련화야 어서 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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