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검진이 있어서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갔다. 8시간 공복 채혈검사라고 해서 아침식사는 물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갔다. 채혈을 마치고, 바깥으로 나왔다. 다음 검사를 하기 위해서는 삼십여 분이 남았다. 번잡한 병원 내에서 벗어나니, 바람은 불어도 햇살은 따스했다. 바깥에 마련된 긴 의자에 앉아 보온병에 담아 간 따끈한 보리차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앞서 가는 젊은 여자는 한쪽에 종이가방을 들고 있고, 또 한쪽에는 보자기로 싼 짐을 들고 있었다. 무거워 보이지는 않았다. 아마도 퇴원을 하는 것 같았다. 뒤에 따라가는 젊은 남자는 "엄마, 춥지?" 하면서 잠시 멈추더니, 여성 노인의 옷깃을 여며 주었다. 벙거지 모자를 쓴 여성 노인을 부축하며 한걸음 한걸음 힘겹게 걸어가고 있었다. 앞서 가는 여자는 급히 걷다가는 다시 뒤돌아보고 한 번 구시렁거리고, 또 걷다가는 다시 뒤돌아보고 또 한 번 구시렁거리고, 빨리 오지 못한다고 불평을 하는 것으로 보였다. 입술을 씰룩거리더니 얼굴로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입으로 바람을 일으켜 신경질적으로 넘긴다. 어떤 관계일까? 딱 보면 안다. 앞서가는 여자는 며느리, 뒤따라 가는 사람은 어머니와 아들. 나는 그렇게 짐작했다. 앞서가는 젊은 여자가 꼭 예전의 나 같았다. 내가 젊었을 때, 저리도 성질이 급했고, 못 됐었다. 지금은 나잇값을 하려고 부단히 노력 중이다. 후훗!
준비해 간 보리차를 다 마시고, 다시 병원 내로 들어가려는데, 오른쪽 응급실 앞에 119차가 멈추었고, 차 뒷문이 열리더니 급히 환자를 병원 내로 이송하고 있었다. 힐끗 보고 나는 병원 내로 들어갔다. 검사를 받기 위해 해당과로 가는 도중에도 여러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링거를 달고 이동 침대에 누워 급히 옮겨가는 환자가 있었다. 이동침대 모서리를 잡고 가는 젊은 남자와 여자는 연신 눈물을 찍어냈다. 아마도 병세가 중한 환자인가 보다. 소아과 병동은 따로 되어 있기는 하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노인 환자가 눈에 띄었다. 등이 기역자로 굽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여성 노인. 휠체어에 앉아 화장실에 들어간 보호자를 기다리는 남성 노인. 심지어는 노인을 업고 급히 지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옆에서는 여유롭게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며 소리 없이 웃음을 지어 보이는 사람들도 몇몇 보인다. 입원과 퇴원. 슬픔과 기쁨. 죽음과 출생. 이렇게 많은 것이 교차되는 곳이 '병원'이 아니던가. 그래서 병원을 소재로 한 메디컬 드라마가 꾸준히 만들어지고 인기를 끄는가 보다. <낭만닥터 김사부>, <하얀 거탑>, <슬기로운 의사생활> 등등.
이 글을 쓰면서, 어제 K친구와 전화통화한 일이 떠오른다. K는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집에서는 막내라고 하였다. 위로 언니와 오빠가 몇 있는데, 모두 몸이 아프거나 70대 이상이라서 아버지를 모실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요양원에 모셨는데, 몇 년이 지나 작년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직장에 다니면서 요양원에 계신 아버지의 평안을 챙겨야 하는 일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코로나 때문에 자주 뵙지도 못했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친구도 그리 몸이 건강한 편은 아닌데, 남매들 중에서 가장 젊다는 이유로 직장 다니면서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셔야 했고, 장례절차까지 마쳤다는 것에 친구가 존경스러웠다. 작년 그맘때 나는 팔 수술을 하고 깁스를 한 상태라 조문을 못한 것이 미안했다.
누구나 늙는다. 언제 어떻게 아플지 모른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도 모르고, 우리는 하루하루 살아간다. 천년만년 살 것처럼 탐욕에 젖어 앞뒤 돌아보지도 않고 살기도 한다. 그렇게는 살지 말자, 고 K친구와 다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대소변 못 가려서 기저귀 찰 정도면 요양원에 보내달라고 자식들에게 얘기하자고 하며 전화통화를 마쳤다. 자녀가 건강한 것이 부모에게는 효도고, 부모가 건강한 것이 자녀에게는 축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