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새 해가 되었다고 많은 이가 즐거워할 즈음, 내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병원에 갔다. 20년 넘게 다니는 내과의원이다.
"원장님, 며칠 전부터 자꾸 속이 울렁거려요."
"다른 증상은요?"
"다른 데는 다 괜찮아요. 마치 입덧하는 것처럼, 멀미 나는 것처럼요. 식욕도 없구요. 물도 마시기 싫어요."
"울렁거리는데 식욕이 없는 건 당연한 거죠. 사진부터 찍어 봅시다."
완경 한 지가 언젠데, 임신은 당연히 아니다. 분명히 위장에 문제가 생긴 건데, 두려웠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병원 복도를 지나 검진센터로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바로 서서 앞 사진 한 장, 뒤로 돌아 한 장, 옆으로 서서 한 장, 바로 누워서 한 장, 수 차례의 사진을 찍고 나서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대여섯 명의 환자가 진료실을 드나든 후, 간호사가 나를 불렀다. 의사는 컴퓨터 모니터를 조금 돌려 나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벽면에 붙어 있는 위 구조 그림을 가리키면서 설명하였다.
"위장에 볼(ball)이 형성되어 있어요. 음식물이 소화되어 장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소화가 안되어 여기에 이렇게 뭉쳐 있어요. 거기에 음식을 조금이라도 먹게 되면, 이 볼이 눈덩이처럼 커져서 점점 심해지는 거죠. 보통의 위장은 이렇게 주머니처럼 생겼는데, 강 선생님은 예전에 위의 아랫부분을 잘라냈기 때문에 보통의 주머니 모양이 아닌 거죠. 그래서 이런 경우가 생길 수 있어요. 그러니 늘 음식조심, 그리고 마음을 평안히 해야 합니다."
나는 모니터를 보기도 싫었다.
"원장님, 그럼 어떻게 해요?"
"우선 금식을 하고 위장 운동을 촉진시키고... 강력 소화제로 내려가도록 해 봅시다."
그래서 링거를 맞고 약을 3일 치 받아왔다. 그럼에도 울렁거림은 나아지지 않았다.
3일을 못 기다리고, 바로 다음날 병원을 찾았다.
"원장님, 안 되겠어요. 계속 더 울렁거려서 고통스러워요. 이젠 가슴도 답답해요."
"그럼 내시경을 해 봅시다. 내시경 검진도 1년이 넘었으니..."
"원장님, 내시경 검진하기 전에 채혈해서 검사도 받아보고 싶어요. 건강검진도 1년 넘었으니까."
"그럽시다."
이렇게 해서 채혈을 했다. 수면 내시경 검사를 받게 되었다. 내시경 검사하기 전에 심전도 검사를 했다. 내시경실에 들어갔다. 검사 전 처치를 하고, 검사대에 누웠다. 의사가 수면주사를 놓기 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의사가 수면 주사를 놓는 순간, 아, 이대로 편안히 죽을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울렁거림은 통증만큼이나 괴로운 증상이었다.
눈을 떠보니, 내시경 검사는 끝나고 수액을 맞고 있었다. 간호사가 와서 괜찮냐고 했다. 어지럽지 않냐고 했다. 괜찮다고 했다. 회복실에 가서 남은 수액을 맞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는 내시경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설명하였다.
"내시경으로 위에 들어 있는 음식볼을 깨뜨렸습니다. 요기 조금 남은 찌꺼기는 약 먹으면 다 내려갈 겁니다. 오늘은 미음 드시고, 내일 하루는 죽을 드시도록 하세요. 그다음은 일반식으로 해도 됩니다."
"근데, 원장님, 제가 왜 이런 증상이 생긴 거죠?"
"신변에 무슨 일이 있었어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런 일이 없었는데요."
"그래요? 우선 급한 처치는 했으니, 괜찮을 겁니다."
다시 일주일치의 약을 받고 집에 돌아왔다.
일주일이 못 가서 또 울렁거림 증세가 나타났다. 병원 원장은 채혈검사로도 이상이 없고, 엑스레이상으로도 이상이 없고, 초음파 상으로도 이상이 없다고 했다. 내과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아무래도 정신적인 문제인 것 같으니,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보라고 했다. 정신적인 문제가 신체적인 문제로까지 이토록 심하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인간의 몸이란 알다가도 모르겠다. 참 오묘하다.
예약한 날짜에 정신건강의학과에 갔다. 간단한 우울증 검사를 해 보자고 했다. 결과는 우울 지수가 매우 높다고 나왔다. 무엇 때문일까. 의사는 컴퓨터 모니터를 한참이나 훑어보더니, 잠은 잘 자냐고 물었다. 잠드는 데 한 참 걸린다고 했다. 상담실에서 심리검사도 받았다. 문답 형식. 그리고 여러 가지 그림을 보여 주면서 어떤 그림으로 보이냐는 검사를 한참이나 했다. 지루했다.
검사 결과, 남편과의 사별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다고 했다. 남편의 죽음에 대한 충분한 애도기간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랬는지도 몰랐다. 네 살, 아홉 살 아이들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릴 수 없어 좀 더 명랑하게 좀 더 밝게 웃으면서 아이들을 키웠다. 나의 슬픔을 묻어 둔 채. 그 묻어둔 상처가 갱년기 증세와 겹쳐서 이제 발현되는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성격상으로도 내가 예민한 편이라고 했다. 그리고 남편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 아이들의 아빠를 지켜주지 못한 죄책감이 더해져서 우울증으로 나타났다는 진단을 받았다. 진단을 받는 순간, 오히려 편안했다. 나도 보통의 여자라는 생각에 안도감이 들었다. 나도 그리 독한 사람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일종의 일체감을 느꼈다.
처방해 준 약을 먹고 있는 지금, 평온하다. 예전에 나는 우울증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어떤 동료 교사가 우울증 약을 먹는다고 해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얼마나 심약하면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먹나,라고 생각했다. 우울증 약을 먹는다고 해서 사람이 달리 보였다. 그 동료 교사도 뭔가 따뜻한 말 한마디, 위로가 필요했을 터인데, 그때는 내가 몰라서 아무 말도 못 했다. 오히려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였던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신체적 고통이든, 정신적 고통이든.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그래서 병을 앓게 되면 겸손해진다. 때로는 병이 인간을 인간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