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힘이다. 그걸 신념으로 삼았다. 나도 '힘'을 기르기 위해 글을 쓰고 싶었다. 마음만 앞섰지, 무엇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신촌에 있는 한겨레문화센터였다. 그곳에는 여러 인문학 강의가 있었다. 내가 수강한 곳에는 글쓰기를 배우러 온 사람들이 모였다. 퇴직을 하고 자서전을 쓰고 싶어서 오신 분도 있었고, 논문이나 리포트를 잘 쓰기 위해서 온 대학생들도 있었다. 모두 대학생이상의 연령이었다. 한 명만 빼고. 그 한 명은 고등학교 재학 중인 남학생이었다. 고등학생이 영어 수학 교과 학원이 아닌,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왔다는 것이 특별했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는 중에도 자신감과 패기가 가득 차 보였다. 강사님도 매우 특이하게 생각하고 크게 격려해 주었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그 고등학생을 시내버스 안에서 만났다. 혹시 한겨레문화센터에 다니는 학생이 아니냐고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시내버스 안에서 간단히 대화를 하고 보니,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짧은 대화 속에서 그 학생의 아버지가 수학전문 과외교사라는 것을 알았다. 다영이가 중학교3학년 때부터 수학을 어려워했다. 보충이 필요했다. 내가 교사생활을 하느라고 학교-집만 왔다 갔다 해서 동네 엄마들과의 교류가 없었다. 사교육 시장에 대한 정보가 전무했다. 그저 내 마음속에 과외를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뜻밖에 좋은 선생님과 인연이 되었다. 우선 전화를 해서 시간 약속을 받아내고 다영이와 함께 K선생님을 찾아갔다. 중년의 선생님은 매우 낮은 목소리로 차분하였다. 다영이의 레벨 테스트를 마치고 과외를 받기로 하였다.
선생님은 나에게 혹시 원하시는 것이 있는지 물으셨다. 나는 지나친 선행보다는 잘 이해하고 알 수 있도록 지도해 주실 것을 당부드렸다. 그렇게 해서 다영이가 고3 때까지 수학 과외를 받게 되었다. 한 동네라서 좋았다. 오랫동안 과외교사를 해오셔서 지도력이 탁월하셨다. 다영이도 그 선생님을 잘 따랐다. 그 무렵 어느 언론 보도를 보니까, 우리나라 사교육 시장에서 영어보다 수학이 더 수요가 많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다영이는 수능 시험 2주 전까지 수학과외를 받았다. 그만큼 다영이는 수학과목이 절실했다.
둘째 다정이가 중학교에 입학하였다. 한두 주 지난 어느 날, 다정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소파에 앉더니,
"엄마, 수학이 너무 어려워. 흐흑"
"그렇게 어려워? 교과서 한 번 가져와 봐."
다정이를 중학교에 입학시켜 놓고 꿈에 부풀어 있던 나는 실망하여, 약간은 흥분되었고 화도 났을 것이다. 수학 교과서를 보니 어려워서 조언을 해 줄 수가 없었다. 나는 성격이 좀 급한 편이다. 판단이나 결정도 빠르다.
"다정아, 수학 과외할래?"
했더니,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나는 곧바로 다영이를 가르쳤던 과외 선생님께 전화하여 시간 약속을 하고 다정이와 함께 K선생님을 찾아갔고, 수학과외를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다영이와 다정이가 같은 과외 선생님께 수학을 배웠다. 다영이 고교 3년, 다정이 중학교 3년, 고교 2년, 안타깝게도 과외 선생님이 개인 사정으로 과외를 그만둔다고 하여 다정이는 고교3학년 때는 학교 공부로만 수학공부를 하였다. 다정이가 불안해하지 않고 안정감 있게 수능 때까지 수학공부를 혼자 잘 해냈다. 얼마나 큰 인연인지. 좋은 선생님을 만난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내가 그때 한겨레문화센터에 가지 않았다면, 맺어지지 못할 인연일 수도 있었다.
다정이는 고등학교에서도 수학공부와 과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과학에 흥미를 보이자, 학교에서도 다정이에게 여러 과학 캠프나 과학 관련 행사를 소개하여 스펙을 꼼꼼히 쌓아가게 도와주셨다. 학교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린다. 이렇게 하여 다정이는 이과 관련 대학에 입학하였다. 6개 입학원서를 넣었는데, 다섯 개 떨어지고 한 군데 합격했는데, 그 학교가 가장 원하던 학교였다. 이럴 수가! 이럴 수도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다영이가 고등학교 입학을 했을 때, 그 과외 선생님의 아들도 같은 고등학교 2학년 생이었다. 그 누나도 같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과외 선생님의 남매와 내 딸 둘 그러니까 넷이서 고등학교 동문이 되었다. 그 과외 선생님의 아들은 독일로 유학 가서 철학을 공부한다는 말을 나중에 들었다. 지금쯤이면 선생님의 아들이 훌륭한 철학자가 되었을 텐데, 선생님과 연락이 닿지 않아 안타깝다.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가 있다. 나의 두 딸이 자라고 성장하는데,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양가 부모님을 비롯한 형제자매, 베이비시터, 어린이집 선생님, 유치원 선생님, 초등학교 선생님, 중학교 선생님, 고등학교 선생님, 그리고 가장 늦게 인연을 맺은 과외 선생님 이렇게 많은 분들의 수고와 정성이 있었다. 나와 내 딸들과 인연을 맺은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