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의사의 따뜻한 손길

by 강지영

어제저녁 잘 먹고 잘 잤다. 그런데 아침에 사달이 났다. 갑자기 배가 아프더니 관장을 하듯이 폭풍 설사를 하고 말았다. 내 몸속이 텅 빈 듯, 기운을 차릴 수가 없었다. 허깨비가 된 듯한 그 허전함과 통증. 나도 모르게 허리가 접혔다. 허리를 펼 수가 없었다. 핫팩을 하고 가까이에 있는 병원엘 갔다. 바깥 기온이 영하 12도를 오르내리는 추운 날씨였다. 9시에 진료가 시작인데, 벌써 대여섯 명의 환자가 대기를 하고 있었다. 접수를 하고 앉아 있는데도 복통이 가시질 않았다. 내 차례가 되어서 진료실로 갔다. 원장님은 노로바이러스라고 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최근 일주일새에 환자가 많이 내원한단다. 원장은 시간이 되면 포도당 주사를 맞고 가라고 한다. 코로나 시절이니만큼 빨리 병원을 나서고 싶어서 처음엔 안 맞겠다고 했다. 나오려니 또 심한 복통이 왔다. 다시 진료실에 들어가 링거를 맞고 가겠다고 하였다. 수액실에 들어가 기다렸다.

10시 30분부터 줌을 활용한 쌍방향 수업이 예정된 터라, 일단은 오후에 줌 수업을 하겠다는 메시지를 발송했다. '지금 제가 병원에 왔습니다. 오늘 줌 수업은 오후에 할 예정입니다.' 더 이상 긴 설명을 할 수가 없었다. 휴대폰 자판을 누르는 손이 떨렸다. 잘 눌러지지 않았다. 자꾸 오타가 났다. 간신히 메시지 전송을 마쳤고 팔에 주삿바늘이 꽂혔다. 차가운 수액이 들어가는 게 느껴진다. 한참이 지나도 복통이 가시질 않았다. 몸의 가운데인 배가 아프니 머리부터 발가락까지 아팠다. 벽에 붙어 있는 벨을 눌러 간호사를 불렀다. 진통제를 맞고 싶었다. 진통제를 맞으면서 아픔을 떨쳐버리고 싶었다. 링거를 맞으면서 편안히 수면을 취하고 싶었다. 예전에 다니던 병원에서는 배가 아프다고 하면, 간호사가 의사에게 말하여 오더를 받고, 간호사가 와서 소염진통제를 놔주었었다. 그런데, 이 병원에서는 원장님이 직접 수액실로 들어왔다. 원장은 수액을 맞고 있는 내 손을 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당분간 배가 아플 거예요. 하지만 이 수액을 다 맞을 때면 가라앉을 거예요. 조금만 참아 봅시다." 하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도 원장님의 눈을 보았다. 나를 안쓰러워하는 마음이 전해졌다.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중환자가 아님에도 그렇게 안타깝게 바라봐주는 따뜻한 시선, 위로해 주는 몇 마디 말에 온몸에 뭔가가 꽉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채워지는 온기로 순간 아픔이 잊혔다. 원장님이 수액실에서 나가고, 수액 두 봉지가 반 이상 비워질 때쯤 아픔도 다 가셨다. 깜빡 잠이 들었다가 간호사가 깨워서 일어나 주삿바늘을 빼고 병원을 나왔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상쾌하게 느껴졌다.

워낙 자주 병이 잘나서, 웬만큼 아파서는 식구들에게 말을 안 하고 혼자 병원을 다니곤 하는데, 나에게 이렇게 따뜻한 말을 해주는 사람, 손을 잡아주며 안정감과 용기를 주는 의사가 너무 감사했다. 흰 죽을 끓여먹고 약을 먹으니 11시 50분쯤이 되었다. 잠이 왔다. 눕고 싶었다. 그런데 줌 수업을 기다리는 아이들을 생각하니 편안히 쉴 수가 없었다. 용기를 내어 12시 30분에 줌 수업을 하겠다고 급하게 알림 메시지를 보냈다. 메시지를 못 본 학부모들에게 급히 전화를 하여 줌 수업을 예고했다. 수업할 내용은 어젯밤에 다 준비를 해 놓은 상태니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컴퓨터 모니터에 아이들의 얼굴이 보인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힘이 났다. '선생님, 많이 아파요?' '선생님, 괜찮아요?' 아이들의 말에 또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아니, 하나도 안 아파. 주사 맞고 약 먹었더니 괜찮아졌어. 엉덩이에 주사도 맞았어,라고 말하니 몇몇 개구쟁이들이 웃는다. 여덟 살 아이들은 '엉덩이'라는 말만 들어도 웃는다. 나도 따라 웃었다.

즐겁게 줌 수업을 마치고 새해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푹 잤다. 어제 나는 이렇게 한 해를 마무리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몸도 마음도 너무나 편안하다. 참 좋다.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주는 의사, 새 해에 맞이하게 될 우리 반 학생들에게 따뜻한 말과 시선으로 희망과 용기를 주는 선생님, 나는 그런 선생님이 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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