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글을 쓰는가

by 강지영

사람의 일생을 '생로병사'라 하던가. 40대의 어머니에게서 셋째 딸로 출생하였고, 가난했으나 부모님의 사랑은 넘치도록 받으며 자랐다. 물론 언니와 동생의 사랑도. 26살에 무진장 몸이 아파 저승의 문턱까지 가는도 중, 더 살고 오라 하여 겨우 살아났다. 지금의 삶은 덤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50대 후반의 나이. 죽지 않았으나 20대에 죽은 거나 마찬가지였으니, 나는 내 몫의 생로병사를 다 겪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인생을 다 아느냐고? 꼭 그렇지는 않다. 20대 두 딸에게 힘들다고 투정하고, 밥하기 싫다고 게으름 피우기도 하고...

몸이 허약해서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하고 살았다. 해외여행도 못했다. 여행경비도 부담이 되었지만 바깥 음식을 먹으면 나의 예민한 '소장, 대장'이 받아 주질 않았다. 운동? 이것도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다. 예전에 탁구 좀 배워볼까 했는데, 족저근막염이 와서 못했다. 테니스, 이건 척추가 약해서 의사가 하지 말라고 했다. 수영, 이것은 피부건조증이 있어서 두렵다. 요가, 이거 하다가 대상포진이 와서 그만두었다. 에구에구, 무얼 하고 사나. 지금은 두 발로 걷기 운동과 실내자전거만 탄다. 아무리 달려도 늘 제자리. 참 재미없다. 하루하루 연명하며 산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교사 생활하면서 초등학생들과 함께 한 세월이 벌써 34년이다. 참 긴 세월이다. 되짚어 보면 그때그때 일들이 떠오르긴 한다. 학교 생활 중, 가장 중요한 일은 무얼까, 아마도 이것일 것 같다. 정년까지 교사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교감도 되고 교장도 되어야 한다는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몇 년 준비하다가 말았다. 허리 디스크가 와서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승진도 하기 전에 침대에만 등 붙이고 살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걸 접고 평교사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길게 가자면 그게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도 그건 잘한 것 같다. 내가 독서에 취미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목표도 없이 그저 읽고 또 읽었다. 친구랑 만나서 수다 떠는 것보다 재미있었다. 여행하고 싶은 욕구도 생기지 않았다. 그저 책 읽는 게 좋았다. 저자 강연회를 찾아다녔다. 내가 만난 저자 중에, 조정래, 박범신, 강신주, 유시민, 서민, 강원국, 김용택, 최진석, 등등. 내로라하는 분들이니 다 알 테지만 책을 읽고 저자들을 만나니, 왠지 정말 친해진 것 같고, 그들이 하는 말들이 귀에 쏙쏙 들어왔다. 그런데 어느 강연에서인지 모르겠는데, 어느 분이 그런 말을 했다. '전문가로 인정받고 싶습니까, 그러면 저자가 되십시오.' 그 말은 내 심장은 물론 내 작은 몸 전체를 울렸다. 나는 오랜동안, 학교에서 근무했으니 초등교육 전문가라고 자부해 왔다. 불행히도 그건 내 자부심일 뿐이라는 자괴감이 들었다. 학교 밖에서 보는 학교 현장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은 시절이다. 교사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고 한다.

무언가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거절당한 사람으로서 무언가 나도 세상에 하나쯤은 기여하고 싶다. 내가 힘들 때, 죽어서 편안히 쉬고 싶을 만큼 힘들 때, 그 많은 저자들의 책은 나에게 삶의 희망과 삶의 재미를 주었다. 그건 분명하다. 이제 나도 누군가에게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희망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는 삶이 재미있다는 것을 주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삶이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하지 않을까. 거창하게 꿈을 꾸는 게 아니다. 그 누구 한 사람에게라도 읽히면 다행이지 않겠나. 없으면 또 어떤가. 쓰는 동안 내가 재미있으면 그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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