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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영 Oct 01. 2023

자책은 그만, 다시 시월

'교통법규위반 범칙금 통보'


 궁금했다. 범칙금이 얼마나 나왔는지. 얼마 전에 내 차를 운전해서 서울에 다녀올 일이 있었다. 예전에는 서울 갈 일이 있으면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했는데, 그날은 꼭 차를 가지고 갈 일이 있었다. 초행길이라 긴장했다. 거의 다 도착해서 내비게이션은 종료되고 내 힘으로 찾아가야 했다. 낯선 표지판과 신호등에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목적지까지 잘 도착했다. 그 후로 가끔 껄쩍지근했다. 낯선 신호에 허둥대던 일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교통 카메라에 찍혔을 것 같았다. 분명히 범칙금 통지서가 날아올 것이라 짐작했다. 날아오더라도 범칙금이 작기만을 바랐다.


  범칙금 통지서를 받아본 지가 오래되어서 요즘은 종이로 오지 않고 온라인으로 오나 보다, 순간 생각했다. '그놈'이 보낸 URL을 눌렀다. 경찰청 글자가 새겨진 사이트가 나왔다. 처음 보는 화면이지만 경찰청 사이트로 여기고, 범칙금 조회 배너를 터치했다.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라고 해서 14자리를 모두 입력했다. 경찰청 앱을 설치해야만 조회가 가능하다고 하여 '설치'도 가볍게 터치했다. 그런데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그제야 알았다. 스미싱(SMS와 피싱의 합성어)에 걸렸다는 걸. 30초가 걸렸을까. 아마도 10초 안이었을지도 모른다. 짧은 순간에 '범칙금', '경찰청'이라는 말에 주눅 들어서 판단력은 흐려지고 바보가 돼버렸다.


 곧바로 경찰서로 달려갔다. 민원실에 찾아갔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는 몇 분간이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내 휴대폰을 받아본 경찰관은,

 "이파인(efine), 이거 경찰청 교통민원 사이트와 비슷하긴 한데, 으음, 가짜인 거 아시죠?"

 "그러게요. 터치하고 주민번호 입력하고 나서 알아챘어요."

 "범칙금 통보는 종이로 보내니까 이런 거 열어보시면 안 됩니다."

  모바일뱅킹을 하고 있다고 하니까 곧바로 예금계좌에 들어 있는 돈을 다른 사람의 계좌로 옮겨놓으라고 했다. 현금인출을 막기 위함이었다. 은행에 전화해서 지급정지를 시켰다. 은행계좌와 연결된 신용카드 사용도 자동으로 정지되었다. 휴대폰 매장에 가서 휴대폰을 초기화하라고 했다.


  휴대폰 매장에 갔다. 그간의 사정을 얘기하니, 점장은 다른 고객들의 양해를 구하고 먼저 나를 응대해 주었다. 우선 내 폰을 초기화시키는 것이 가장 급했다. 내가 누른 URL로 악성 앱, 원격제어 앱이 내 폰에 설치되고, 그 앱으로 내 휴대폰을 원격조종하여 금융정보를 이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책할 시간도 없이 일이 진행되었다. 금방 내가 알거지가 되는 기분이었다. 폰에 들어 있는 주요 전화번호를 메모해 놓으라고 했다. A4용지 한 장을 주는데 다 채우지 못했다. 내 폰에 들어 있는 전화번호 중에서 메모지에 옮겨놓을 만큼 중요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음에 잠시 슬픔을 느꼈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옮겨 쓰고 나니 양면이 필요 없었다. 단면에 20줄쯤 썼으려나, 매장 직원에게 이제 되었다고 했다. 다음으로 사진과 동영상은 옮겨 놓을 수가 없었다. 사진과 동영상은 과감히 포기했다. 가슴이 휑해지는 느낌, 몇 백장이나 되는 사진이 통째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다음 날, 은행에 가서 모바일 뱅킹 앱을 다시 설치했다. 지급 정지를 해제했다. 시간이 꽤 걸렸다. 금전적인 피해는 없었다. 은행 직원은 빠른 대처를 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금융사기는 경찰관이나 변호사 등도 당할 수 있다고 했다. 너무 자책하지 말라고 누구나 순간의 실수로 당할 수 있다고 위로의 말을 했다. 고마웠다. 은행 직원은 은행 나가서 오른쪽 옆 골목에 경찰서 oo지구대가 있으니 한 번 가보라고 했다. 은행 직원의 말을 따랐다. 지구대에 가니, 경찰관 세 명이 바쁘게 업무를 보고 있었다. 방문 사유를 말하니, 요즘 그런 일이 많다고 하면서 안심시켜 주었다. 그들에게도 고마웠다. 경찰관은 내 휴대폰에 '시티즌코난'이라는 앱을 설치해 주었다. 시티즌 코난이란, 경찰청에서 개발한 보이스피싱 및 악성어플 탐지앱'이라는 걸 알았다.


  바로 휴대폰 매장에 가서 전화번호를 바꾸었다. 휴대폰 매장 직원이 말했다. 혹시 휴대폰 사진 중에 내 신분증 사진이 있는지 물었다. 있는 것도 같았다. 오래전에 알고 지내는 보험 설계사에게 신분증 사진을 보내느라고 찍었던 게 떠올랐다. 보내고 나서 지웠는지 안 지웠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내가 머뭇거리는 것을 본 직원은 주민센터에 가서 주민등록증을 재발급받기를 권했다. 다음 날, 주민센터에 가서 주민등록증 재발급을 신청하고 5천 원을 냈다. 그 길로 경찰서에 가서 운전면허증 재발급을 신청하고 1만 원을 냈다.


 이 일들이 9월 20일에서 22일까지 3일에 걸쳐 내게 일어난 사건 사고다.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갔는지 모른다. 신기한 것은 학교에 있는 동안은 수업에 전념한 거다. 자신이 놀라웠다. 내가 프로가 되었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수업을 다 마치고 다음날 수업준비를 마무리하고 교문을 나왔다. 조퇴를 하고 은행, 주민센터, 경찰서를 드나들었다. 내가 벌인 일이니 내가 수습해야만 했다.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힘든 세상, 거친 세태에 놀랐지만 우리가 살아내야만 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모든 게 예전처럼 돌아왔다. 다만 허공에 날려버린 사진과 동영상이 아쉽다. 거기엔 교실에서 아이들이 만든 여러 작품, 아이들의 발랄한 모습, 교정의 예쁜 꽃들이 있다. 그것들이 모두 모두 내 기억 속에만 있다. 그들이야 다시 만날 수 있다. 내년이면 꽃은 다시 필 테니 다시 찍을 수 있다지만 돌이킬 수 없는 재연할 수 없는 사진과 동영상은 어찌할까. 지난여름, 존경하는 교수님의 정년퇴임식 사진과 동영상은 어찌할까. 어렵게 찾아간 모교에서 찍은 교수님과의 사진, 교수님의 연구실, 고별강연과 퇴임식에서 교수님이 부르신 가곡 '얼굴' 동영상. 국어과 교수이면서도 그 어떤 테너 가수 보다도 멋진 노래였는데, 그리고 기타 연주 동영상. 그것들이 너무 안타깝다. 가슴이 조여올 만큼 아깝다. 순간의 실수로 여러 날의 추억과 삶의 흔적을 지워버려야 했던 일들이 한낮의 꿈처럼 지나가 버렸다. 이제 시월이다. 다시 추억을 모으러 하루를 시작한다. 자, 이제 시작이다!



                       얼굴

                                            심봉석 작사

                                            신귀복 작곡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얀 그때 꿈을

풀잎에 연 이슬처럼 빛나던 눈동자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가는 얼굴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무지개 따라 올라갔던 오색빛 하늘나래

구름 속에 나비처럼 나르던 지난날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15) [2015] 얼굴 - 테너 배재철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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