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가을로 가는 '무')
"언니, 언니는 초등2학년 때 책 읽기가 좋았어?"
"엥? 그때는 읽을 책이 없었어. 읽을거리라고는 교과서밖에 없었거든."
다섯 살 아래인 동생이 묻고 내가 답했다. 내가 기간제로 나가서 일하는 우리 반 아이들에게 1교시 수업 전 아침활동으로 하고 있는 '아침독서' 시간에 대한 얘기였다. 학급의 아이들 중 몇몇이 독서를 잘하지 않는다는 나의 걱정에 대한 동생의 말이다. 우리 반 아이들은 독서보다는 뛰어놀기 좋아한다. 친구하고 수다 떨고 싶어 하는 걸 나도 안다. 그렇더라도 아이들이 좋아한다고 다 해줄 수는 없다. 사람이란 게 서 있는 거보다는 앉아 있는 게 좋고, 앉아 있는 거보다는 눕는 게 편한 이치와 같다. 동생도 초등교사라서 우리는 학교 얘기를 많이 한다. 어떤 때는 나보다 더 어른스럽고 나보다 더 아이들 마음을 헤아려주는 좋은 교사 같은 때가 많다. 그런 동생이기에 독서보다는 다양한 활동을 좋아하는 아이들 마음을 생각해서 하는 말일 것이다. 독서보다는 다른 활동을 생각해 보라고 한다. 동생이 그 말을 하기 전에 할 만큼은 여럿 시도해 보았다.
지난봄, 아침활동 시간에 아이들 데리고 아침 산책이라는 것도 해 보았다. 그런데 나도 아이들도 다 문제였다. 아홉 시가 되어도 교실에 정말 들어가기 싫었다. 우리 학교 등교 시간은 8시 30분부터 8시 40분까지이다. 인간이 기계가 아니니 딱 맞출 수는 없어도 등교 시각이 그 언저리이다. 8시 40분부터 8시 55분까지 15분간 산책을 하는 것이 무리였다. 늦게 오는 아이는 교실에 가방을 두고 나와서는 우리 일행을 찾느라고 허둥댔고, 때로는 늦은 몇몇끼리 교실에서 뛰어다니고 소리치며 놀다가 옆반 선생님에게 주의를 듣고 했더랬다. 그래서 아침 산책은 그만두었다.
줄넘기도 해 보았는데 두 가지가 걸림돌이었다. 첫째는 날씨였다. 날씨가 좋은 날은 교실 밖에서 줄넘기하기가 좋았지만 그렇지 않은 날에는 줄넘기도 하기에 적절하지 않았다. 줄넘기는 보기보다 운동량이 많았다. 100번만 뛰어도 아이들 중에는 헉헉대는 아이들도 있었고, 갑자기 얼굴이 하얘지는 아이도 있었다. 알고 보니, 아침 식사를 하고 오지 않는 아이가 많았다. 바로 아침식사가 두 번째 문제였다. 아침 식사가 부실한 아이에게 줄넘기를 하라고 하는 것은 큰 무리였다. 아침 식사를 하고 오지 않은 사람은 줄넘기를 하지 않는 게 좋다고 하면, 아이들은 괜찮다고 하면서 줄넘기를 시도했다가 금방 지쳐버렸다. 보기에 안쓰러웠다. 밥과 반찬 그리고 국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오는 아이는 없었고, 대부분의 아이가 우유에 시리얼, 또는 바나나 한 개, 잼 바른 빵 등으로 아침을 하고 온다고 하였다.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이마저도 아침활동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하였다.
초등2학년이 신기한 게, 어떤 아침활동을 하든 특히 신체를 많이 움직이는 활동을 하면 하루가 들떠 있었다. 그렇잖아도 늘 몸이 근질거려 몸 둘 바를 모르는 신체 성장 왕성한 아이들이라 그런 것 같다.
요일을 정해놓고 어느 날은 종이접기, 어느 날은 그림 그리기 등을 해 보았다. 그것도 마땅치가 않았다. 종이접기를 하든 그림 그리기를 하든 완성을 해야 소품이라도 나오는데, 준비하고 설명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버려서 1교시 수업에 지장이 있었다. 산책을 하든, 줄넘기를 하든 신체를 많이 움직이는 활동을 하면 여지없이 하루가 들떠 있었고 좀처럼 차분해지지 않았다. 신체활동을 많이 해서 흥분된 몸이 지나치면 아이들은 몸싸움도 불사했다.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할 때, 우리 반 아이들에게 가장 적합한 활동은 독서였다.
2학기에 들어서는 이걸 할까, 저걸 할까 망설이지 않고, 독서로 정했다. 독서록 양식도 만들었다. 책이름, 글쓴이 이름, 그리고 간단한 메모 정도로. 메모에는 '새로 알게 된 것, 생각이나 느낌을 쓰라는 멘트를 넣었다.'
독서록 겉표지에는
'읽으면 생각할 수 있고, 생각하면 쓸 수 있다.'
라는 문장을 만들어 새겨 넣었다. 20분~30분 동안 읽은 책에 대한 독서록이다. 한 권을 다 읽지 않아도 된다. 읽은 양만큼에 대한 것만 쓰면 된다. 정 쓸 게 없으면 읽은 책 중에서 한 대목을 필사해도 좋다고 했다. 이렇게 하여 우리 반 아이들은 독서를 하고 세 줄 내지 다섯 줄 글쓰기를 한다. 대체로 잘 따라주어서 고맙다. 이제는 아침에 교실에 들어오면 가방을 정리하고 교실 책꽂이에 가서 책을 가져와 의자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아, 기쁘다. 아직도 한 두 명은 내 눈치를 보고 내 시야에서 자기가 벗어나기를 호시탐탐 노리는 학생이 있기는 하다. 틈만 나면 딴짓을 하려는 낌새를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책을 책상 위에 놓기는 한다. 그리고 필사도 한다. 독서가 짐이 되지 않게 하는 것이 관건이다.
읽을 책이 없던 나의 초등학교 2학년 시절, 그때 나와 친구들은 무얼 하며 지냈나. 등교하면 칠판에 '산수' 문제가 가득했다. 우리들은 공책에 문제 쓰고 답을 썼다. 힘들었던 기억은 없다. 농촌의 아침은 일찍 시작한다. 일찍 식사하고 논밭에 나가 일해야 했으니까. 아침밥 먹으면 가방 들고 학교에 왔다. 그 시절 우리들의 책가방은 손가방이었다. 버스도 다니지 않던 길, 시골길을 걸어서 학교에 오면 교실은 우리 천국이었다. 선생님이 교실에서 맞이해 주었던 기억이 없다. 늘 학생들이 먼저 왔다. 선생님들은 인근 도시에서 출퇴근을 한 것 같다. 간혹 집 근처에 선생님이 살고는 있었겠지만 일찍 오신 선생님들은 교무실에 계셨던 것 같다. 그 시절에는 초등학교 교무실에도 선생님들의 개인 책상이 있었다. 요즘 초등학교 담임교사는 각자의 학급교실에 머문다. 교무실에는 교감 선생님과 교무실무사 그리고 교무부장 책상, 연구부장 책상이 있다.
사교육도 없고, 집에는 읽을 책도 없던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이었던 우리들. 학교 공부가 다였던 우리들. 공부가 힘들다거나 부담은 없었다.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놀던 우리들. 눈 감으면 우리가 뛰어놀던 그 시절 그 산천이 떠오른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도로가 생기고 아파트가 생겨서 우리들의 추억 속에만 있다. 지나고 보면 모두가 꿈결 같다. 부모님의 농사일이 힘든 줄은 우리들이 좀 더 자라서야 알았다. 그랬으니 초등학교 2학년 시절, 우리는 아름다운 농촌에서 아름답게 성장했다. 왕따도 없었고, 학교 폭력도 없었다. 선생님께 야단맞는 일이란 게 숙제를 안 해온 정도. 아니면 시험을 못 본 정도. 친구를 괴롭혀서 혼나는 친구는 없었다. 그 시절 아이들은 순하고 착했다. 시대가 참 많이 변했다. 아, 옛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