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지영 Sep 12. 2023

공교육 정상화,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1990년대 말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장 선생님이 직원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는 교직도 서비스직이 될 것 같습니다."

  교사들은 수군댔다.

  "뭔 소리래."

  "그러게, 서비스직이라니..."

  나 또한 그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간 교사로서의 자긍심과 자부심으로 교단에 서왔는데, 무슨 말인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교육 전문가로 여기고 아이들 앞에 섰는데, 서비스직이라니. 서비스직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단지 교직의 특수성을 말하려는 것이다. 그로부터 학교 현장에 불어닥친 몇몇 일을 보면서 그 교장 선생님의 예견이 맞았다는 것을 실감했다. 교사는 서비스하는 사람, 학생과 학부모는 고객. 고객을 위한 최선의 맞춤 서비스!


  그렇게 최선을 다해 서비스를 해왔는데도 일부 고객의 불만족은 여러 형태의 사건 사고로 이어졌다. 누군가는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고 하고, 누군가는 교권 자체가 없었다고 한다. 무엇이 이런 사태를 초래했을까. 이 글은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초등교육 현장에서 35년을 지낸 한 평교사의 견이다. 최근 초등학교 현장의 황폐화 원인을 네 가지로 진단한다. 첫째, 교원성과급제. 둘째, 돌봄 교실. 셋째, 교원평가제. 넷째, 아동학대법. 이 네 가지가 학생, 학부모, 교사, 교육 삼위일체를 이간질하고 괴롭혀 왔음을 밝히고자 한다.


  첫째, 교원성과급제. 2001년, 정부는 '공정한 경쟁을 통한 교사들의 사기 진작과 동기부여 등을 이유로 '교원성과급제'를 들고 나왔다. 목적은 그럴듯해 보인다. 열심히 일한 교사에게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주고, 이를 통해 교육현장에 활기를 불어넣으려는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좋은 말로 포장하더라도, 교원성과급제는 경쟁 중심의 경제 논리로 교사들을 길들이기 위한 것임이 분명했다. 해마다 교감 선생님과 교원평가 업무담당자는 교사를 모아 놓고 기준안을 뜯어고치고 등급으로 분류했다. 누가 얼마나 힘든가를 놓고 갑론을박을 펼친다. 그룹별 대표로 나온 교사는 자기 그룹을 대변하기 위해 열변을 토한다. 어떻게 해도 불만이 있고, 어떻게 해도 수긍하기 어렵다. 등급에 따라 금액을 차등지급한다.


  정부와 교육부에 묻고 싶다. 교원성과급제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보고 있는가. 교원성과급제로 인하여 교사의 사기를 진작시켰고, 교직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여기는가. 어려운 질문인가. 전혀 어렵지 않다. 정답은 교원성과급제는 백해무익한 제도다. 천박한 경쟁심, 천민자본주의 경제논리로 교사들을 괴롭히는 성과급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대신 부장교사의 보직수당을 올려야 한다. 생활지도로 고생하는 담임수당도 올려야 한다. 성과급제를 폐지하면, 보직 수당이나 담임수당을 올릴 예산을 따로 마련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니 얼마나 쉬운가.


  둘째, 초등 돌봄 교실. 2004년, 학교는 교육에 더하여 보육까지 하란다. 맞벌이, 한부모 가정의 자녀를 오후 5시까지 학교에서 돌봐주는 제도로 시작했다. 시도교육청 또는 학교에서 채용한 돌봄 전담사가 방과 후부터 아이들을 돌봐주는 제도다. 돌봄 전담사가 있기는 하지만 그 외의 행정적인 일은 방과후부장과 그 부서 소속의 교사들이 한다. 최근에는 '늘봄'이라 하여, 시간을 더 연장시켰다. 저녁 7시까지 학교에서 봐주란다. 늘봄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늘 돌봐준다는 의미인가 보다, 했는데 그게 아니라 늘 봄처럼 따뜻하게 돌봐준다는 의미라고 한다. 학교는 교육기관이다. 보육기관이 아니다. 이러한 제도는 학부모로 하여금 착각하게 만든다. 학교가 자녀를 보육까지 해 주는 곳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학부모는 자녀가 방과 후에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고 학교에 머무는 것이 안심이 되니까 이 제도를 반길 테지만, 하루 종일 학교에 있어야 하는 아동의 심정을 헤아려 보았는가. 학급 운영에 보태어 행정업무를 책임져야 하는 교사의 입장을 생각해 보았는가. 이러한 제도 또한 교사의 교육권 내지는 교사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학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학교에 맡길 일이 아니다. 요즘 아파트마다 노인정이 있다. 어르신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노인정을 만든 것이라면 이제는 아파트마다 초등학생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아파트마다 '돌봄방'을 운영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아동이 살고 있는 집 근처에 돌봄방이 있으면 다른 친구들이 하교할 때 같이 학교를 나가서 돌봄방에 있다가 학부모가 찾아가는 방식이라면 시도해 봄직하다. 이런 공약을 내세우는 지자체장이 있다면 학부모도 두 손 들고 환영할 것 같다. 운영의 묘를 살려서 새로운 제도를 만들면 좋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학부모가 너무 늦게까지 일하지 않도록 가정 양육을 중시하는 사회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오래전에 '저녁이 있는 삶'을 외치던 정치인도 있었다. 자녀가 있는 가정에 저녁을 되찾아주어야 하지 않겠나.


  셋째, 교원평가. 2010년부터 시행된 교원능력개발평가(줄여서 '교원평가') 또한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학교 교육 경쟁력 제고를 목적으로 한 교원평가. 이 또한 교사 간의 경쟁을 부추겨 왔다. 동료교사 간의 평가,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 조사 등으로 교원의 능력개발을 통한 전문성을 신장하기 위한 제도라고 했다. 쉽게 말해 교사를 평가하는 제도다. 여기서도 빠지지 않는 게 '경쟁'이다. 정부는 교육부는 왜 그리도 경쟁을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실제로 학교 현장은 경쟁보다는 협력이 강조되고 학생을 교육함에 있어 협력하며 일하고 있다. 정부가 교육부가 아무리 경쟁을 강요해도 우리 교사들은 경쟁보다는 협력하며 일하고 있다. 우리 교사는 그들이 바라는 대로 길들여지지 않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내 경우를 예로 들어 보면, 교원평가 제도가 처음에 도입되었을 때 반감이 매우 컸다. 그렇더라도 정부에서 시행하는 것이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교원평가에 동료교사 간 평가가 있다. 학교 현장에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빤히 보고 알고 있는데, 무슨 평가가 필요한가. 학부모 만족도 조사도 있다. 말이 학부모 만족도  조사지, 실상  따지고 보면 소비자에게 요구하는 '고객 만족도 조사'와 무엇이 다른가. 5단계 척도로 수량화하는 조사도 있고 자유서술식 평가문항도 있다. 학부모는 말 그대로 '자유로이' 서술한다. 처음엔 나도 궁금하여 학부모 만족도 조사를 열어 보았다. 어떤 학부모는 숙제가 많으니 줄여달라고 하고, 어떤 학부모는 숙제가 적어서 공부를 안 하니 숙제를 많이 내달라고 한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추랴. 결국은 내 소신대로 하기로 했다. 과제이행에 불성실하거나 교사의 가르침을 잘 따르지 않는 학생에 대한 상담을 할라치면 왜 우리 애를 미워하느냐 하고 따지던 학부모는 만족도 조사 자유서술문항에 '교사가 차별이 심하고 편애한다.'라고 썼다. 하여 그 후부터 교원평가 결과를 열어보지 않았다. 그게 정신건강에 좋다고 판단하였다. 정부와 교육부에 묻는다. 교원평가 제도가 그 실효성이 있다고 믿는가. 그 실효성이라는 거, 1도 없다. 교사와 학부모간의 소통은  실명으로 해야 한다. 교사는 실명으로 평가하고 학생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데, 어째서 학부모와 학생은 익명으로  하는가. 익명뒤에  숨어서 자녀를 훈육한 교사에게  분풀이식 막말을 하게 하는가. 교사는 학부모와 학생 말고도 교장에게 이미 평가를 받아오고 있다.

  

  지난 9월 2일, 국회 앞 추모집회에 갔다. 상공에서 드론이 촬영한 영상이 교사들의 눈앞에 펼쳐졌다. 끝없이 이어지는 '검은 점'이 물결을 이루었다. 교사가 생을 달리했다는 것은 학교가 교실이 죽었다는 얘기다. 교육이 죽었다는 증거이다. 그 집회에서 처음 알았다. 일명 '교원평가 성희롱 사건' 세종시의 어느 고교생이 학생만족도 조사의 자유서술식 문항에 답한 교사에 대한 성희롱이 발단이다. 학생은 퇴학을 당했다. 교사는 어떻게든 교직을 이어가고자 했으나 세종시교육청의 감사실에서는 교사에게 2차 가해를 하였다. 결국은 교사가 교단을 떠났다.


  넷째, 아동학대법. 아동복지법 제17조 5항.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행위... 이 또한 교사들의 교육활동을 옥죄는 조항이다. 이것으로 학부모들은 교사를 고소한다고 한다. 교사의 훈육과정에서 아동이 정서적으로 피해를 받았다는 것이다. 교실에서 친구를 폭행하고 놀리고 괴롭히는 행위를 하더라도 교사는 특별히 이를 제지할 권한이 없다. 자칫하면 교사가 가해자가 되어 학생을 정서적으로 학대했다는 고소를 당하기 때문이다. 난동을 부리는 학생이 스스로 절제하고 분노가 사그라들기만을 바랄 뿐이다. 함부로 분리시켜서도 안된다. 이 또한 다른 학생 앞에서라면 수치심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동학대. 무혐의 처분을 받아도 다른 일로 또 교사를 걸고넘어지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교사에 대한 무례한 행동은 교사를 괴롭히기에 충분하다. 이 많은 일들이 전국 방방곡곡에 널리 퍼져 있음을 지난 추모집회에서 생생하게 들었다.


'온수주청와 (溫水煮靑蛙)'라는 말이 있다. 물의 온도가 천천히 올라가는데 물속의 개구리가 이를 감지하지 못하다가 죽게 된다는 의미이다.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인용되기도 한다. 때로는 이 정도야 괜찮겠지, 하는 작은 부정부패에 젖어 살다가 크게 낭패를 보게 되는 경우와 같이 청렴을 강조할 때 쓰기도 한다. 이 시점에, 삶아져 죽는 개구리가 떠오른 것은 왜일까. 서서히 죽어가는 우리나라 교육현장을 떠올려보면 그 답이 나온다.


  지난해 2월, 명예퇴직을 하였다. 지금은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다. 성과급제, 돌봄 교실, 교원평가제, 아동학대법 등 법과 제도가 바뀐다 하여 내게 큰 혜택은 없다. 다만 학교 현장에 남아 있는 후배 교사들을 위하여 좋은 법과 제도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 이상, 악법으로 인하여 교사들이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교육 정상화로 가는 길, 그리 어렵지 않다.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다면 말이다. 내 교실 책상 서랍 속에는 지난번 추모집회 때 손에 들었던 손팻말이 들어 있다. 이 글귀를 볼 때마다 그날의 함성이 떠오른다. 더불어 '찐한 동료애'를 느낀다. 힘이 된다. 교사가 행복해야 교육이 바로 선다.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도 행복하다. 다시 한번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아동복지법 즉각 개정'

  '악성민원인 강경 대응'


2023. 9. 2. (토) 추모집회 때 사용한 손팻말
2023. 9. 2. (토) 추모집회 때 사용한 손팻말
2023. 9. 2. (토) 추모집회 때, 30만 교사가 모여서 공교육 정상화를 외쳤다.


작가의 이전글 행복, 그게 뭔데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