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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영 Sep 01. 2023

행복, 그게 뭔데요?

  공주에 갔다. 은사님의 정년퇴임식에 참석하고자 해서였다. 오랜만에 가보는 공주시는 크게 변모해 있었다. 길은 넓어지고 낯선 건물들이 많이 들어서고, 특히 제민천 근처에는 원룸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다. 모교 또한 많이 달라져 있었다. 20년 만이니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다. 잔디밭에는 작은 숲이 조성되어 있었고, 색다른 조형물도 설치되었다. 방학 중인데도 건물 안팎으로 여러 학생이 오갔다. 활기찬 젊음이 느껴졌다. 


  교수님의 고별 강연을 들으면서, 젊은 시절로 돌아가 설렜다. 이제는 학부시절 은사님이 모두 퇴임을 하셨다고 생각하니, 친정 부모님을 잃은 것처럼 허전했다. 장거리 운전을 하고 갔던 터라 간식을 조금 준비해 가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었다. 그랬더니 배는 고프지 않았다. 번잡한 것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못난 성미라서 식사자리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그간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풀꽃문학관'을 가기로 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풀꽃문학관은 시인 나태주 님의 문학세계를 펼쳐 보인다. 또한 시인들의 창작활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는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풀꽃문학관은 공주사대부설고등학교와 공주세무서 사이에 있다. 학교와 세무서 건물은 크고 웅장했다. 특히 공주세무서 건물은 20년 전에는 없던 건물이다. 큰 건물에 비해서 문학관은 너무나 작았다. 우리 사회가 문학을 시를 예술인을 홀대하는 것 같은 느낌에 서운한 감정이 일었다. 


  큰 건물 사이 언덕배기에 문학관이 있었다. 오르막길 오른쪽 담장에 나태주 시인의 시 대여섯 편이 방문객을 반긴다. 그중에서 시 '행복'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간에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행복을 확실히 개념정리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행복

                      나태주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행복이라면 우선 의식주가 해결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생존불안으로부터 놓여날 수가 있겠지. 1연의 집이란 그렇게 의식주를 뜻하는 것으로 읽었다. 그다음으로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란 인간관계 내지는 건전한 사회생활을 뜻하리라, 생각했다. 거기에 더 보탠다면 사랑의 대상, 그리움의 대상, 추억 등이 연상된다. 3연의 노래는 무엇을 뜻할까. 아마도 예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의식주와 사회관계망이 잘 유지된다면 그다음으로는 취미나 예술 활동 등의 '창조'가 아닐까 한다. 특히 예술 활동이라면 창작의 기쁨을 누리게 될 때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저녁에 돌아갈 집이든, 추억이든, 취미든 다 갖추었다고 치자. 세 가지 모두 개인적인 것들이다. 그것들을 다 이루었다고 쳐도 행복하지는 않을 것 같다. 요즘처럼 세상이 어수선하고 주변이 시끄러울 때는 아무리 개인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해도 행복하기는 어렵다. 각종 흉악 범죄가 판을 치고 있고, 집 밖에만 나가면 위험한 곳 천지인데 어찌 삶이 행복할 수 있겠는가. 뉴스에서는 극단적 선택이니 고소 고발이니 정쟁이니 등의 얘기만 흘러나온다. 게다가 요즘은 후쿠시마 오염수가 어떻다느니 해롭다 아니다 말들이 참 많다. 당최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중고교 시절 어느 사회 시간인가, 배웠던 단어 중에 '행복추구권'이 떠오른다.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다고 하지, 아마. 찾아보니 헌법 10조라고 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준다는 것은 국가가 행복을 추구할 환경을 조성해 줄 의무가 있는 건 아닐까. 사회환경이 건전하지 않다면 그곳에서 몸담고 살고 있는 사람들은 행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심리학이나 종교에서는 개인의 심리 상태에 따라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심리학 특히 긍정심리학에서는 긍정적인 심리 상태에 초점을 두고 '좋은 생각'을 가지라고 한다. 어떤 종교는 내세에서의 행복을 위해 현세의 고통을 참으라고 한다. 어떤 종교는 고통이 없는 상태를 행복이라고 한다. 그러니 욕망의 노예가 되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마음을 챙기라고 한다. 도대체 다 비웠는데 무엇을 챙기라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심리학 책이나 종교에서 말하는 행복은 모두 개인적인 행복이다. 개인적인 행복이 이루어졌다고 해도 우리를 둘러싼 사회 환경이 좋지 않으면 행복은 요원하다. 이웃이 흉악한 범죄를 당했는데,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고 내 가족이 아니라서 안심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 그건 불완전한 행복이다. 사회심리학자 김태형은 그의 책 <가짜 행복 권하는 사회>에서 이를 일컬어 '가짜 행복'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진짜 행복'을 위해서는 사회가 건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건전한 사회란 무엇일까.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정당한 대가를 얻는 사회. 사기와 눈속임으로 부와 명예를 얻은 사람이 성실한 사람을 조롱하지 않는 사회. 한 탕 크게 해서 평생을 놀고먹고 싶은 것이 장래희망이 아닌 사회. 몸과 마음이 아프면 언제든 어디서든 경제적 어려움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사회. 학력이나 재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존중받는 사회. 어렵게 취업한 일터에서 일하는 젊은이의 꿈이 정년퇴직이 아닌 사회.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가 학교를 좋아하는 사회. 그런 사회를 우리는 가질 수 없을까. 


   사회심리학자 김태형의 말을 더 들어보자.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는 주로 물질생활, 개인적인 쾌감 등의 만족을 행복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벌어야 생존하고 쾌감을 얻기 때문에 노동에서 진정한 행복을 얻기는 힘들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만이 자유롭고 창조적인 생활을 할 수 있고, 삶에서 보람과 만족을 느낄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제야 행복에 대해 정리가 된다. 마음 챙김이나 심리적 안정 상태 등과 같은 개인적 행복은 불완전한 행복이다. 가짜 행복이다. 우리가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사회가 건강해야 한다. 집안에서의 평안을 넘어서서 집 밖에 나가도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사회. 그런 사회는 누가 만드나. 남에게 미룰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그 길에 나서야 하지 않겠는가. 행복은 가까이에 있으니 그걸 놓치지 말고 누리라는 일명 '소확행'도 의미가 있을 수 있으나, 우리는 좀 더 본질적인 행복, 진짜 행복을 찾아 나서야 하지 않을까. 그 진짜 행복은 개인만으로는 성취가 어렵다. 이웃과 함께 손을 잡고 함께 나아가야 하겠다.


풀꽃문학관으로 올라가는 길 담장에 나태주 시인의 시 '행복' 시화
풀꽃문학관
풀꽃문학관 잔디밭에 세워진 비석에 나태주 시인의 시 '풀꽃'이 새겨져 있다. 
풀꽃문학관 뒤뜰에 피어 있는 풀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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