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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지영 Nov 28. 2023

지하철은 화물열차가 아니다

                                                                                                  (사진제공:Pixabay)

  한 아이가 교실 의자에 얌전히 앉아 있지 못하고 흔들의자 삼아 앞뒤로 흔든다. 그러다가 힘조절을 잘 못하면 다치기 십상이다. 의자는 뒤로 미끄러져 빠지고 아이는 엉덩방아를 찧는다. 지난번에도 그런 일이 벌어져서 경고를 했는데도 그런다. 또 그렇게 의자에 바르게 앉아 있지 못하면 의자를 빼버리겠다고 했다. 그런데도 자꾸만 그렇게 한다. 습관을 고치기가 이처럼 어렵다. 어느 날엔가는 또 의자를 흔들길래 의자를 빼고 공부하라고 했다. 다치는 것보다는 불편한 게 낫겠다 싶었다. 그랬더니 기꺼이 의자를 옆으로 내놓고 무릎을 교실 바닥에 댄다. 재밌어한다. 새로운 경험을 즐기는 중이다. 뒤에 앉은 장난꾸러기도 그게 좋아 보이는지 따라 한다. 벌칙마저도 장난으로 삼아버리는 아홉 살 아이들이다. 이 벌칙이 실효성 없음을 금세 깨달았다. 무엇보다도 여린 무릎이 교실 바닥에 닿는 것이 안타까워서 바로 철회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의자로 '진짜 장난'을 친다. 바로 지하철 얘기다. 2023년 11월 1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혼잡도를 완화하기 위해 내년 1월 출퇴근 시간대의 지하철 4·7호선 열차 2칸을 대상으로 객실 의자를 없애는 시범사업을 추진한다고 1일 밝혔다.'

  모든 지하철 내부에서 의자를 뺀다는 것은 아니고, 실험적으로 해보고 실효성이 높으면 확대하겠다고 한다. 지하철 혼잡도를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하는데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 반 아이들은 의자를 바르게 사용하지 못해서 의자를 빼야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지만, 지하철을 타는 어느 승객도 지하철 의자를 가지고 장난친 사람은 없다. 오히려 지하철에서 자리를 얻게 되면 행운으로 여긴다. 대체로 혼잡을 무릅쓰고서도 지하철을 타는 사람은 지하철이 정확한 시간에 도착할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교통체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도착시간이 중요한 사람에게는 지하철만 한 것이 없다. 지하철 의자를 뺀다는 것, 이것은 '폭력'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지하철 혼잡을 줄이려면 증차를 하던가 배차간격을 좁히는 등의 조치를 해야지, 의자를 빼겠다는 발상을 한 것 자체가 갑질이고 폭력이다. 언감생심 어찌 이런 생각을 한단 말인가. 의자를 뺀 자리에 더 많은 사람이 탈 수 있기 때문에 혼잡도가 줄어들 것이라고 하는데,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내 앞에 도착한 지하철 내부가 혼잡하면 사람들은 타지 않고 다음을 기다린다. 의자를 빼서 다소 확보된 공간에는 더 많은 사람이 탈 것이니 혼잡도를 줄이려는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는 못할 것이다. 오히려 빼곡하게 들어찬 사람들이 다시 하차하려면 또 그만큼의 애로가 생길 게 뻔하다. 혼잡도가 높은 지하철에 서 있을 경우, 옆사람의 날숨까지도 느껴진다. 의자 위로 트인 공간은 앉아 있는 이나 서 있는 이 모두의 숨통을 틔운다. 그런 의자를 빼버린다니, 문명국가에서 어찌 이런 야만적인 일이 일어나는가. 이는 인간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턱, 숨이 막힌다. 


  우리나라 초등교실은 19평이 조금 넘는다. 20평도 안되는 교실에 30명 안팎의 아이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다가 교실에 있는 아이들의 책상과 의자를 모두 빼게 되는 건 아닌지, 섬뜩하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출생률이 올라갈 것 같은가.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려운 일이나, 인간존중이 실현되지 않는 사회에서 출생률이 올라가는 일이 일어나지 않음은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사람대접을 제대로 해야 아이도 낳고 싶고 살 맛이 나는 것이지, 사람대접을 이렇게 소홀히 하면서 어찌 출생률이 높아지길 바라는가. 사람은 일하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니고 납세자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니다. 나라를 유지시키기 위한 도구가 아니다. 짐짝처럼 대해서는 안 된다. 분명한 것은, 지하철은 화물열차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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