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년을 마치며

초등2학년 종업식날에

by 강지영

지난주에 종업식을 하였다.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여 교실에 난방을 틀어놓았다. 워낙 추워진 날씨라서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오면 온기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하나둘씩 아이들이 들어왔다. 이제 마지막 수업이 시작되는데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양, 조잘대기만 한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한 학생이 손가락을 다쳐서 수술하는 관계로 결석을 하였고, 나머지 25명은 다 왔다.


겨울이 되면서 독감이나 감기로 거의 끊일 날이 없이 결석이 많았는데, 다행히 오늘은 한 명 빼고는 다 왔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았다. 9시에 교내 방송으로 종업식을 했다. 통지표를 나눠 주면서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라고 하였다. 옆구리 찔러서라도 절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교육이라 생각한다. 그러지 않으면 통지표를 채가듯이 받아가는 아이도 있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통지표를 받아가는 아이도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곤 한다. 그동안의 경험이 그렇다는 얘기다.


통지표를 나누어 주었다. 통지표에 쓴 교과평어 또는 행동발달종합의견란을 읽느라 눈들이 초롱초롱하다. 어떤 학생은 '교우관계가 원만하다'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어, 친구랑 사이좋게 잘 지낸다는 뜻이야. oo은 친구들에게 친절하고 예쁜 말을 쓰는 착한 학생이지." 특별한 사유가 있어도 통지표에는 좋은 말로 완곡하게 쓰곤 한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고, 대부분의 교사들은 그렇게 하는 걸로 안다.


내가 저경력일 때는 통지표에 잘못하는 것을 지적하여 쓴 적이 있는데, 그렇다고 하여 나쁜 습관을 고치는 경우를 못 보았다. 예전에, 등교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학생이 있었다. 통지표에 '학교에서 정한 규칙을 잘 지키면 좀 더 원만한 학교생활이 될 거'라고 평어를 썼는데도 고쳐지질 않았다. 그래서 고쳐야 할 일은 학부모에게 전화로 알리고, 통지표에는 좋은 말, 잘하는 점을 쓴다.


그리고 오늘, 마지막 수업이라서 '우아하게' 마치려고 마음먹었다. 통지표 나눠 주고, 몇 가지 안내하고, 책가방 싸고, 옷 입고 가방 메고 귀가할 준비를 하였다. 여자 아이들은 교실 앞에 한 줄로 서라고 하였고, 남자아이들은 교실 뒤에 한 줄로 서라고 하였다. 역시 여자 아이들이 먼저 줄을 잘 섰다. 남학생은 줄 서는 데에도 오래 걸린다. 남자 군인들이 줄 서는 걸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앞으로 10년 조금 지나면 군대에 가는 아이들이 다수일 텐데, 그때 가서는 잘할 거라 믿고 넘어간다. 남학생은 줄 서는데 시간이 걸릴 듯했다. 먼저 여학생을 보내기로 했다.


여자 아이들을 한 사람씩 안아주며 간단한 인사말을 하였다.

"00야, 새해에는 건강하게 잘 지내. 그동안 너로 인해 기쁨이 넘쳤어."

"00야, 3학년이 되면 발표할 때 목소리를 좀 더 크게 해서 발표하렴. 자신 있게 말이야. 알았지?"

"00아, 새해에는 반찬을 골고루 먹어. 그래야 몸도 튼튼해지지."

"00아, 3학년이 되면 학교에 장난감을 가져오지 않을 거지?"

"00야, 수업 시간에 짝이랑 얘기하는 버릇을 고칠 거지? 난 너를 믿는다."

"oo아, 방학 동안에 줄넘기 연습을 많이 할 거지?"


등등의 덕담을 가장한 지도조언을 하였다. 이렇게 여자 아이들과 안녕을 하고, 교실 뒤를 바라보니, 뒤에 서너 명만 뒷모습이 보이고, 나머지 남학생은 교실을 빠져나간 상태였다. 교실문을 열고 복도를 보니, 졸업식장에 가는 6학년 학생과 학부모들이 복도를 가득 매운 채 걸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우리 반 남학생이 끼어 있으니 우리 반을 따로 부를 수도 없었다. 남학생과 악수하면서 인사말을 하려던 내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아이들이 다 귀가하고, 교실 뒷정리를 하였다. 졸업식이 끝나고 교직원들은 졸업식장 의자 정리를 하였다. 그러고 나서 점심시간 가까이가 되었다. 조용해진 학교. 그런데, 복도에 한 아이가 서 있다. 누군가 하고 나가보니, 우리 반 여학생이었다. 추운데 집에 가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선생님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가고 싶어서 기다렸다는 거였다. 나는 아이를 안았다. 패딩점퍼를 입었음에도 가녀린 상체가 느껴졌다.


1년 동안, 수 없이 나를 애태웠던 학생이다. 아침 등교 시간이 일정치 않아 걱정을 하게 만드는 아이였다. 수업 중, 자기 혼자만의 방식으로 색종이 접고, 오리고, 그림 그리고 그러던 아이였다. 기분 내키면 발표하고 기분이 안 좋으면 발표도 안 하고 입을 꾹 다물던 아이. 학습 준비물을 챙겨 오지 않아 늘 신경 쓰이게 하는 아이.


우리 학교는 급식실이 없어서 교실에서 급식을 한다. 어느 날은 급식을 받지 않고 제자리에 앉아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물어도 대답도 안 한다. 짝에게 물어봐도 모른다고 한다.

"oo야, 배가 고파도 기분이 나쁠 수 있어. 맛있는 거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기도 할걸?"

하고 꾀어도 묵묵부답, 꿈쩍을 안 한다. 하는 수 없이 식판에 밥과 반찬, 그리고 국을 떠다가 oo의 책상 위에 놓아주면서,

"oo야, 지금 안 먹으면 이따가는 더 배가 고플 거야. 어서 먹자. 기분이 좋아질 거야."

그랬더니, 숟가락을 받아 든다. 다행이었다. 그러나 뭐가 잘못된 걸까. 이것이 나쁜 버릇을 들이게 하는 것인지, 교사가 아이들을 나쁜 길로 몰아가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정해진 점심시간에 학생도 나도 밥을 먹어야 하기에 그렇게 해결하였다. 그러던 아이가 종업식날, 나를 한 번 더 보겠다고 추운 복도에서 기다린다. 겨울 방학 동안, 잘 지내고 새 학년을 맞이해야 할 텐데... 한 나무에서도 꽃이 피고 지는 순서가 다르듯이 oo는 조금 천천히 꽃을 피울 모양이다.

월, 수, 금,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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