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지, 걱정하지 마세요. 저, 이젠 편안해요!

by 강지영

장소는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골집이다. 나는 이불을 덮고 곤히 자고 있다. 아버지가 으흠, 인기척을 내면서 방으로 들어온다.

"아부지, 일어나야 하는데 눈이 안 떠져요."

간신히 목소리를 만들어 낸다. 아버지가 앉으면서 두 손으로 내 손을 꼭 잡는다.

"지쳐서 그래..."

나는 일어나려고 해도 일어나지지 않는다. 점점 더 잠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다. 아버지의 손이 점점 따듯해져 온다. 안간힘을 써서 눈을 뜬다.

"아부지... 아부지..."

그러면서 벌떡 일어났다. 꿈이다. 너무 생생했다. 아버지가 잡으셨던 내 손에서도 온기가 남아 있는 듯하다. 잠에서 깨어 한참 생각했다. 오래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는데... 꿈속에서부터였는지 잠에서 깨고 나서인지 한줄기 눈물이 귓속으로 흘러간다. 오늘 아침, 이른 낮잠을 잔 사연은 이렇다.


다음 주는 나의 교직 생활을 마무리 짓는 퇴임식이 예정되어 있다. 학교로부터의 업무 긴장이 다 풀어진 상태였다고나 할까... 그런데, 어제저녁에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학교운영위원회 심의 안건 기안을 올리라는 거였다. 급히 컴퓨터를 켰다. 작년에 다른 선생님이 작성했던 공문을 참고하기 위해서였다. '교육(행정)기관 원격업무지원시스템'에 접속은 되는데, 기안했던 본문이 열리지 않는다. 다른 선생님에게 문의해서 조금 해결은 했으나 그다음 과정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았다. 어깨와 허리가 아파서 시계를 보니 11시가 다 되어 가고 있다. 서너 시간을 업무 처리하느라고 컴퓨터 앞에 꼬박 앉아 있었던 거다. 우여곡절 끝에 첨부파일은 완성했는데, 이번엔 '업무 과제 카드'가 안 열려서 전자결재를 올릴 수가 없다. 교무실무사에게 부탁을 해야 하는데, 늦은 시간이라 안되니 그냥 자기로 했다. 작년에 수술했던 팔에 통증이 온다. 냉찜질 팩을 팔에 감고, 배 위에는 온찜질 팩을 얹었다. 업무처리 마무리가 다 되지 않았는데도 곯아떨어졌다.


아침에 일어나서 막 컴퓨터를 켜려고 하는데, 교감 선생님으로부터 독촉 전화가 왔다. 나는 당황했다. 침이 말랐다. 컴퓨터를 켜고 어제 작업하던 화면을 띄우고 마우스를 갖다 대니, 팝업창이 닫혀 있다는 짧은 메시지가 뜬다. 아흐, 어제 과제카드가 안 열린 게 그 팝업창 닫힘 때문이라니... 급히 해제하니 과제카드가 열렸다. 무사히 '결재올림'이 완료되었다. 참 별 것도 아닌 일에 어젯밤부터 '사투'를 벌인 거네, 하면서 안도의 숨을 쉬었다. 무엇을 탓하랴. 나의 무능이 문제지. 그러면서도 왜 이렇게 억울한지...교직 생활 중, 힘든 일 중 하나가 수업 외의 업무다. 가르치는 일만 한다면야 얼마나 신바람 나고 즐거우랴만 학교는 교육부는 나라는 교사에게 수업만 시키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나와 동료들은 수업 외의 일들 때문에 힘들어한다. 오늘 결재 올린 기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이렇게 홀가분할 수가 없다. 오늘 아침, 편안한 마음에 오수에 빠져든 거다.


문득, 검은색 두루마기를 입고 중절모자를 쓴 아버지가 생각난다. 나는 아버지의 그 모습이 가장 멋있다고 여긴다. 나의 아버지는 농부였다. 평소에는 일하기 편한 허름한 옷을 입었으나 외출을 할 때면 한복을 입고 두루마기를 입었다. 한복에 두루마기를 입고 중절모자를 쓰면 외출 준비가 끝난다. 주로 장례식, 결혼식 졸업식 등과 같은 의식에만 입고 가는 '행사복'이었다. 평생 양복은 입은 적이 없다. 내가 중학교 때 회갑 잔치를 했으니, 나는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못 보았다. 아버지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는 사진이 하나 있기는 하다. 사진 속 아버지가 30대인지 40대인지, 그 때도 두루마기를 입었다. 다만 중절모자는 쓰지 않았다.


또 생각난다. 여름철이면 아버지는 이른 아침에 논밭을 다녀왔다. 입고 간 옷은 땀으로 젖었다. 샤워시설이 없는 시골집이었으니 샤워도 못했다. 그때 그 시절에는 간이 샤워, 곧 등목을 했다. 아버지가 웃통을 벗고 허리를 굽혀 엎드리면 나는 아버지의 허리부터 목까지 등에 물을 끼얹었다. 아버지의 등에는 빨간 땀띠가 나 있었다. 등목을 마친 아버지는 구멍이 숭숭 뚫린 메리야스나 삼베옷을 입었다. 선풍기를 틀어 놓고 누워서 판소리를 들었다. 낡은 카세트 녹음기에서는 국악인 조상현의 판소리가 돌아갔다. 카세트 녹음기가 오래된 터라, 작동 버튼이 고장이 났다. 눌러서 작동시키는 플레이 버튼에는 꼬깃꼬깃 접은 종이를 끼워서 고정시키곤 하였다. 어떤 때는 국악인 김영임의 민요가 흘러나왔다. 민요를 들을 때면, 아버지는 옆으로 누워서 한 손으로는 엉덩이를 치면서 박자를 맞췄다. 참 소리도 잘한다, 감탄하면서 곤한 낮잠을 주무시곤 했다.


이렇게 나이가 먹은 나도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나 보다. 아니, 이렇게 나이 먹은 자식에게도 아버지는 늘 걱정이신가 보다. 아부지, 걱정하지 마세요. 저, 이젠 괜찮아요. 지금은 편안해요. 아부지도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세요. 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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