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아침밥을 하려고 7시 전에 일어났다. 휴대폰 알람은 7시에 맞춰 놓았지만, 수면 중에 발생한 두통이 예정보다 이르게 잠자리에서 나를 밀어냈다. 머리가 폭발해 버릴 것처럼 아팠다. 관자놀이를 수차례 지압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전에는 없던 증상이었다. 혹시 코로나인가 싶어, 어제 어디를 다녀왔나 되짚어 보았다. 코로나에 감염될 일은 없었다. 그 순간에도 코로나 백신 주사를 4차까지 맞아서 안심했다. 그것도 잠시, 독감 주사를 맞지 않아서 께름칙했다. 두통약을 먹을까 하다가 빈속에 약을 먹기가 뭣해서 그만두었다. 일단 평소대로 식전에 물 한 컵에 유산균 캡슐을 입에 넣었다. 쌀을 씻어서 전기밥솥에 넣고 취사를 누르는 동안에도 두통은 가시지 않았다. 평소대로 사과를 깎아 먹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렇게 심하던 두통이 사과 두 쪽에 깨끗이 낫는 게 아닌가. 신기한 일이었다. 이런 게 자연치유인가. 지금도 아무렇지 않게 글을 쓰고 있으니, 내 두통은 어이 된 일인가. 딸아이는 학교에 가고, 이젠 내 세상! 홀가분한 마음으로 컴퓨터를 켰다. 이 감격스러운 일을 잊을까 봐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아침에 글을 쓰니, 상쾌하기도 하다.
이른 아침에 있었던 두통의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혹시 늦은 취침 때문이었나? 어젯밤, 찰스 디킨스의 <데이비드 코퍼필드>(동서문화사, 2021)를 읽느라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일천 쪽 남짓한 분량 중에서 406쪽까지 읽고 잠들었다. 데이비드가 어려운 유소년 시절을 견뎌내고, 마침내 20대 청년으로 새 직장을 얻었다. 일찍 조실부모하고 의붓아버지와 의붓 고모의 학대에서 벗어나서도 다른 종류의 갖은 고생을 겪던 데이비드. 그럼에도 밝고 반듯하게 성장한 데이비드. 주변 여러 사람과 대고모의 후원을 받던 데이비드가 이젠 '독립'해가는 초입에 들어선 대목을 읽던 중이라, 책에서 눈을 떼기가 어려웠다. 나는 어젯밤 2시에 잤다. 그래도 이젠 퇴직을 했기 때문에 마음 놓고 늦게 자도 되겠지, 하는 자만심의 대가였나? 알기 어렵다. 병원에 가야 하나? 아니다. 두고 봐야겠다.
퇴직하기 전에는 어쩌다 밤 11시만 되어도 다음 날 기상시간, 출근 시간, 그리고 업무시간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12시를 넘겨도 잠을 못 자면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 헤맸다. 어느 날에는 우유를 데워 마시기도 하고, 어떤 때는 양파를 잘라 머리맡에 두기도 하고, 때로는 어려운 책을 읽으며 잠을 재촉하기도 하고, 어느 날 밤엔가는 유튜브에서 '10분 안에 실신하듯 잠이 오는 음악'을 찾아 들으며 잠을 청한 적도 있다. 그도 저도 안되면 책상 속 깊숙이 숨겨 놓은 수면제를 먹기도 하였다. 나의 경우는 6시간 정도의 수면을 하지 못하면, 출근하여 하루를 보내기가 고역이었다. 내 고역은 고스란히 학급 아이들에게 전해지기 때문에 교사로서의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살기 위해 일해야 했고, 일하기 위해서 자야 했으며, 자야 해서 약을 복용하기까지 하였다. 잠을 못 자서 내 컨디션이 좋지 못하면 혹시라도 실수를 할까 봐 나 자신을 더 긴장 속에 몰아넣었기 때문에 스트레스는 가중되었다.
휴우, 이제는 이 모든 긴장 속에서 해방되었다.
35년 만에 얻은 자유! 올해 2월, 교직 생활 35년 만에 나는 퇴직했다. 긴 세월이었다. 퇴직하고 나니 나를 괴롭혔던 갖가지 질병에서 벗어났다. 나를 괴롭히던 만성 소화불량, 과민성 대장증후군, 불안장애 등으로 병원을 찾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사실은 내가 하는 일들이 나에겐 맞지 않았거나, 할 일들이 나에게 과했거나, 내 능력 밖이었거나, 그랬을지도 모른다. 때때로 교직생활을 곱씹어 보면 긍정적인 일보다는 부정적인 일들이 떠오른다. 정신과에서는 그러한 뇌의 작용을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소아정신과 의사로 일하는 지나영 교수가 쓴 <마음이 흐르는 대로>(다산북스, 2021)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우리의 뇌와 몸은 부정적인 것을 더 깊고 강하게, 오랫동안 느낀다. 실제로 떡 하나를 훔쳐 간 사람에 대한 분노는 쉽게 잊지 못하는 데 반해, 나에게 떡 하나를 더 준 사람에 대한 고마움은 빠르게 잊곤 한다. 그러니 일부러라도 긍정적인 감사의 마음을 되새기고 자꾸 떠올릴 수 있도록 스스로를 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270쪽)
현재에 도움 되지 않는 과거의 일을 들춰내서 뭣하리. 어서 이 글을 마치고, 데이비드 코퍼필드나 만나야겠다. 책을 읽기 전에 내 두통을 말끔히 씻어준 사과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과 먼저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