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과 어머니

by 강지영

날씨가 추워져서 두꺼운 옷을 찾느라 옷장을 열었다. 찾아도 마땅히 입을 만한 옷이 없다. 옷을 잘 사지 않는 편인 데다가, 최근 코로나로 인해 외출할 일이 줄어들어, 두 해 가량 옷을 사지 않아 더욱 그런 모양이다. 안방 옷장 맨 뒤에 딸아이 교복이 눈에 들어온다.

"엄마, 옷장도 좁으니까 그 교복은 버리지. 이젠."

"엥? 이 귀한 교복을 왜 버리냐. 오래오래 간직할란다."

내 교복도 아니고, 딸아이의 교복에 대한 애착에는 내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다. 중고교 시절, 나는 제대로 된 교복을 입지 못하고 학교를 다녔다. 그렇다고 교복 대신에 사복을 입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는 교복을 사 입는 것이 아니라, 양장점에서 맞춰 입었다. 나의 작은 언니가 방직회사에 다니고 있었는데, 교복을 맞춰 입을 수 있는 옷감을 가져왔다. 내 기억이 맞다면, '엘리트 학생복지'였다. 교복 색깔이 진한 네이비색이어야 하는데, 일부는 검은색이었다. 네이비색과 검은색 옷감을 '강 의상실'이라고 하는 양장점에 갖다 주고 교복을 맞췄다. 당연히 상의와 하의가 색깔이 달랐다. 나는 엄마에게 막 투정을 부리면서, 이 옷을 입고는 학교에 갈 수 없다고 하였다. 엄마는 겉으로는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셨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속상하셨을까. 나는 참 철이 없었다.

"괜찮어. 크게 표시 안 나. 그럼 교복을 새로 맞춰? 돈이 많이 들잖냐. 겉모습이 중요한 게 아녀. 그냥 입고 다녀. 니 언니는 중학교도 못 보냈어."

엄마가 언니 얘기를 하는 바람에, 나는 더 이상 교복에 대한 불만을 말할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위아래 색깔이 다른 교복을 입고 다녔다. 색깔이 다르다고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한 사람은 없었는데도 나 스스로 괜히 주눅이 들어가지고 3년 내내 '마음고생'을 하였다. 그러니 내가 제대로 된 교복에 대한 로망이 있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중학교를 졸업하던 날, 고등학교에 가면 새 교복을 입을 꿈에 부풀어 중학교 교복은 바로 폐기 처분하였다. 아마도 아궁이에 넣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1980년, 나는 대전시내에 있는 인문계 고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여전히 우리 집이 가난하여 새 교복을 마련하기 어려웠다. 근데, 엄마가 수소문하여 대전에 사는 8촌 친척 언니가 내가 입학할 여고 출신임을 알아냈다. 어느 날, 엄마는 나더러 대전에 같이 가자고 했다. 시골 사람이 대전시내에 가서 주택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버스에서 내린 후, 주소가 적힌 쪽지를 들고 한참을 물어물어 겨우 친척 집을 찾아냈다. 바로 그 해에 친척 언니가 대전성모여고를 졸업했다. 그 집안 어르신은 교복을 비롯한 교련복, 체육복, 심지어 구두까지 버리지 않고 잘 두었다가 나에게 주는 거였다. 신기하게도 내 몸에 다 잘 맞았다. 신발까지도. 그 당시에 여고생들은 발등에 끈이 달린 구두를 많이 신었다. 재질은 합성피혁 정도였나, 뭐 그랬다. 그런데 그 언니네는 가정형편이 좋아서 가죽 구두를 신었나 보다. 구두약을 발라 반질반질하게 닦아 놓은 검은색 가죽 구두. 나의 엄마는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않은 사람이었다. 친척 어른은 엄마를 칭찬하였다.

"지영이가 공부를 잘해서 대전시내로 학교를 오게 되었구먼. 자네가 고생이 많네. 시골에서 농사지어 딸을 공부시키기가 어려울 텐데, 장하네. 성모여고가 아주 명문이야. 지영아, 엄마 생각해서 열심히 공부해라."

이렇게 하여 나는 기대하던 새 교복을 입지 못했다. 헌 교복을 입고 첫 소집일에 고교에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나는 교복을 입고 학교에 왔는데, 아무도 교복을 입고 온 신입생이 없었다. 나 혼자만 교복을 입고 온 것이다. 운동장에 신입생이 웅성웅성 모여 있는데, 조회대에서 나를 발견한 선생님이 마이크에 대고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였다.

"저기, 재학생은 교실로 들어가세요. 재학생은 참석 안 합니다."

"선생님, 저는 재학생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눈길이 나에게 쏠렸고, 나는 중학교 때 웅변을 했던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오히려 창피함을 감추기 위해 목소리를 더 크게 했다. 내 처지에 대한 '반발심' 같은 거.

대전성모여고 입학생은 단체로 교복을 맞추었는데, 아직 교복이 완성되지 않아서였다고, 나중에 들었다. 나의 고교 생활 시작은 이렇게 했지만, 3년간 학교 생활에서 교복으로 인한 어떠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교를 졸업하고 물려받은 그 교복은 어떻게 처리했는지 기억에 없다. 친척 언니에게 돌려줬나?


이러했으니 교복에 대한 내 추억이 남다르지 않겠는가. 지금은 그 교복마저 보고 싶다. 상/하의 색깔이 달랐던 중학교 교복. 목덜미가 낡아 감추고 싶었던 고교 교복 셔츠. 엄마를 속상하게 했던 죄송함까지 더해서, 그때가 그립다. 옛날 학생들은 교복이 예복이었다. 친척 결혼식에 참석할 때도 교복을 입고 갔다. 어르신 회갑연에도 교복. 가족사진을 찍을 때도 교복을 입는 경우가 많았다. 사진으로만 남아 있는 애틋한 교복이다. 옷장에 걸려 있는 딸아이의 교복을 잘 간직하려고 한다. 먼 훗날, 딸아이가 지금의 내 나이쯤 되었을 때, 자기의 교복을 보면서 추억에 젖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나는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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