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고3이었을 때, 나는 3년 차 원거리 통학생이었다. 충남 연기군 금남면 대평리(지금은 세종시 금남면) 버스 정류장에서 첫 시외버스를 타고 유성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린다. 그러고 나서, 충남대학교-유성시내-대전시민회관-대전성모여고-대전역까지 가는 '1번' 시내버스를 타고 등교한다. 집에서부터 1시간 반이나 걸리는 등굣길은 '고난의 행군'이었다. 그 당시의 중고등 학생들은 트렁크형 책가방을 들고 다녔다. 요즘으로 치면 소형 캐리어 정도가 된다. 책과 공책 그리고 도시락까지 넣어야 했으니, 가히 여행가방 수준이었다. 게다가 야간자율학습까지 하려면 도시락 2개를 싸가지고 다녀야 해서 고충이 컸다.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시외버스를 타러 간다. 버스라도 자주 오면 다행일 터인데, 시외버스는 20분 간격으로 온다. 어떤 때는 30분 만에 오기도 했다. 어쩌다 첫 시외버스를 놓치면 지나가는 트럭을 타고 가기도 하였다. 요즘 세상에서는 낯선 사람의 차를 타는 것은 거의 금기시되고 있지만, 그 시절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면 사무소쯤에서 교복 입고 책가방 들고 택시 잡듯이 손을 들면, 친절한 트럭 기사는 차를 태워주곤 하였다. 그만큼 인심도 좋았고 타인의 고통을 나눌 줄 아는 삶의 여유가 있었다. 사람 사는 세상이 이쯤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힘든 사람끼리 서로 위해줄 수 있는 살맛 나는 세상 말이다.
특히 첫 시외버스는 학생과 직장인이 많이 타는 관계로 늘 붐볐다. 그 당시에는 버스 안내양이 있었는데, 승차권을 받거나 찻삯을 직접 받았다. 허리춤에는 돈을 받는 전대를 찼다. 안내양의 중요한 자질 중에 하나는 바로 힘이었다. 차 문이 잘 닫히지 않는 만원 버스 손님들을 차 안으로 밀어 넣고, 차 문을 탕탕 치며 '오라이!'을 외치고 출발하기 위해서다. 우여곡절 끝에 차가 출발하면,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은 드디어 통학길, 통근길에 들어선 것에 안도하며 다 같이 웃음을 짓기도 했다. 집단적인 통쾌함이랄까. 두 발로 착지가 불가능할 정도로, 때로는 몸통이 휘어진 자세로 10여분 가다 보면, 어느새 두 발이 차 바닥에 닿아 있고 몸은 추슬러진다. 고불고불한 찻길을 가느라고 차가 이리저리 기울었던 덕분이다.
'던져진 가방' 사건이 일어난 날도 여느 날과 다름이 없었다. 힘겹게 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하였다. 대전성모여고는 건물이 하나였다. 모든 학생이 지하 신발장을 통과하여 위층에 있는 교실로 올라가는 구조였다. 일이 일어난 그날도 지하 신발장을 통과하고 매점 앞을 지나 교실로 이동 중이었다. 1층으로 올라가는 층계참에 생활지도 담당 선생님이 서 계셨다. 나는 인사를 하고 올라가려고 하는데, 선생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와아, 고3이 인제 오냐. 지금이 몇 시야, 이거. 후배들 보기에 창피하지도 않냐. 쯧!"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책가방을 내던지고 발을 구르면서 통곡을 하였다.
"엉엉, 첫 차를 타고 와도 이래요. 날더러 어쩌라구요. 엉엉!"
나는 창피한 생각보다는 뭔가 억울할 뿐이었다. 그 시간이면 3학년 학생들은 대부분 입실을 했고, 1학년과 2학년 그리고 나 같은 원거리 통학생들만 등교하는 시간이었다. 후배들이 힐끗힐끗 쳐다보기도 하고 가던 길을 살짝 돌아서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도 보였다. 던져진 가방은 관심도 두지 않고, 두 손을 얼굴에 대고 울기만 하였다. 그게 그렇게 선생님께 반항적인 태도를 보여야만 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내 가방을 주워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손을 잡고 교무실 앞 상담실로 데리고 갔다. 그 방에서도 나는 선생님께 꺼이꺼이 거리면서 말했다. 선생님은 학생 사정도 모르면서 그럴 수 있느냐, 나도 일찍 와서 공부하고 싶다, 후배들 앞에서 내가 3학년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으셨느냐, 중언부언 소리를 질러댔다.
선생님께서 얼마나 난감하셨을까. 그럼에도 선생님은 전혀 꾸지람을 안 하셨다. 되려 미안하다고 하시면서 네가 갑자기 가방을 던져서 놀랐고, 네 사정을 들으니 내가 미안하다고 하셨다. 순간, 너무 창피하였다. 선생님께 죄송하다고 말하고 상담실을 나가려는데, 마음을 진정시킨 후에 교실로 가라고 하셨다. 선생님이 주신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이젠 올라가겠다고 말하고 교실로 들어갔다. 1교시는 '세계사'시간이었다. 아마도 생활지도 담당 선생님과 연락이 되어서였는지, 아니면 세계사 선생님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라고 여기셔서인지, 늦게 들어온 이유를 묻지 않으셨다. 레지나 수녀님(세계사 담당 선생님)은 "그래, 자리에 앉아라."라고 작은 소리로 말씀하셨다. 수업은 그대로 이어졌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희한하게도 가방 속에 들어있던 도시락도 무사하였다. 밥이 한쪽으로 조금 쏠리긴 했지만. 선생님,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