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가 퇴근을 했다. 겉옷만 벗어 놓고 바로 화장실로 들어간다. 한참 있어도 나오지 않는다. 속이 안 좋은 지 오래 걸린다. 화장실 들어가기 전에 얼굴이라도 살펴볼 걸, 하는 아쉬움이 일었지만 이미 지난 일이니 어쩔 수 없다. 화장실 문 앞에 가서 묻는다. "OO아, 속이 안 좋아?" 응, 이라는 답이 들려온다. 갑자기 내 배가 아파온다. 조바심 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소파에 앉아 리모컨으로 텔레비전을 켰다. 잠시 후, 아휴 시원해, 라는 말과 함께 활짝 웃는 표정으로 나온다. 내 배도 금세 나았다. 얼마나 좋은 표정이냐면, 오늘 오후에 봉오리를 터뜨린 호접란 꽃 같다. 진달래 색깔의 호접란 꽃!
소파에 앉아 있는데, 딸아이는 내 허벅지에 다리를 올리고 눕는다. 배를 문질러 주려고 하니, 간지럽다고 밀쳐낸다. 제 스스로 배를 쓸어내리며 많이 아프지 않다고 한다. 다행이다. 점심에 초밥 혼밥을 했는데 그게 탈이 난 모양이라고 한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딸아이는 사무실 팀장님 얘기를 꺼낸다. 팀장님이 자기 아이의 사진을 보여 주며 아기 얘기를 하는데, 별로 관심 가지 않았다고 말한다. 엄마들은 다 그러냐고 묻는다. "나도 그랬어. 네가 얼마나 예뻤는지 늘 자랑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고 그랬어. 남들이 너에 대해 물어오면 생각만 해도 설렜었거든. 엄마들은 다 그래. 누구라도 붙잡고 내 새끼 얘기를 하고 싶고 자랑하고 싶고 그런 거야. 즐거운 마음으로 들어드려." "아휴, 엄마들이란..." 나는 딸아이의 다리를 쓰다듬었다. 발가락도 만져보았다. 그동안 참 많이 자랐다.
나는 세 번의 유산 끝에 네 번째 임신으로 첫아이를 낳았다. 임신 초기, 그 아이마저 잃을까 봐 정기 검진 이외에도 산부인과 초음파를 자주 하곤 했었다. 그래서인지 요 녀석이 쫌 예민한 편이다. 태동이 없으면 누워서 배를 톡톡 쳐보기도 했다. 나의 노크에 뱃속의 아기가 반응을 해야만 안심하고 일어났다. 입덧이 심해서 열심히 먹은 것이 입으로 되돌아오면 눈 질끈 감고 다시 삼켰다. 등 푸른 생선이 태아의 뇌 성장에 좋다고 해서 하루 중 한 끼 이상 고등어조림이나 꽁치조림을 먹었다. 그 때문인지 머리가 좋은 것 같다. 그때는 토요일 근무가 있었다. 4교시 수업을 마치고 집에 오려면 너무 배가 고팠다. 그래서 나 혼자 음식 배달을 시켜서 먹었다. 메뉴는 거의 칼국수였다. 그래서 그런지 큰딸아이는 칼국수를 참 좋아한다.
임신 기간 내내 직장과 집 사이만 오고 갔다. 열 달 내내 차를 타지도 않았다. 장보기는 남편 몫. 버스를 타고 현장학습을 인솔해야 했을 때, 교감 선생님은 다른 선생님에게 우리 반을 지도하도록 했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태어난 큰딸! 육아로 힘들고 지칠 때마다 나는 아이를 낳고 싶었던 간절한 마음을 떠올렸다. 그 마음이 지친 내 몸을 위로했고 치유해 주었다. 그 아이가 벌써 자라서 키는 나보다 크고, 몸무게도 나보다 더 나간다. 오랜만에 나는 딸아이에게 그 시절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이 녀석이 잠들어 버렸다. ㅇㅇ아 , 일어나. 씻고 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