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지를 받았다. 아는 게 하나도 없다.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는데, 풀 수 있는 문제가 없다. 주변에 물었다. 앗, 내가 공부한 것은 시험 범위에 없었다. 으으으, 신음 소리를 내며 깼다. 꿈이었다. 내 나이가 몇인데, 가끔 시험 보는 꿈을 꾼다. 매번 시험 범위를 잘못 알았거나, 이름을 안 썼거나, 시험을 못 보는 꿈이다. 그간 얼마나 시험 스트레스에 시달렸는지 나 자신이 가엽기까지 하다. 왜 그럴까. 소심함 때문인가, 욕심 때문인가. 시험 보는 꿈의 원인이 뭘까, 뜬금없이 분석해 봤다.
무엇보다도 수험생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주부터 일주일 내내 기말고사를 본다는 딸아이 말을 듣고 나서 알게 모르게 나도 스트레스를 받았나 보다. 이 놈의 시험은 언제나 끝나려는지. 딸아이가 시험을 본다고 하면 내가 다 긴장이 된다. 안 그러려고 하는데도 그런다. 마음 다스리기가 당최 어렵다. 시험이 별거라고, 생각해도 쿨해지기 힘들다. 어디선가 그런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등생과 열등생의 차이는? 우등생은 시험 본 후에 공부한 것을 까먹고, 열등생은 시험 보기 전에 까먹는다는 차이뿐!' 대충 그런 내용이었다.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시험이라는 녀석이 실상 시험도 안 보는 나에게까지 평생을 따라다니는 '추노'와 같다는, 이 기분 나쁜 기분.
방금 새벽 4시쯤, 딸아이가 가습기 물을 보충하는 소리를 내고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든다. 물 한 잔 마시려고 주방으로 가니, 식탁 위에 이게 있다. '8시 기상 무조건 기상.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무조건 깨우기*** 진짜 중요**' 4시에 자서 8시에 일어나면 4시간 자는 건데, 그래도 되나? 너무 적게 자면 심장에 무리가 온다던데. 아이의 건강을 생각하면 안 깨울 수도 없고, 모질게 깨우자니 안쓰럽고. 깨우긴 깨워야겠지. 이제 내년 한 학년만 마치면 졸업이니, 시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으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참 좋겠다.
긍정의 아이콘인 나인데, 시험마저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마음을 다잡는다. 이 경쟁 사회에서 그래도 내가 이만큼 살 수 있었던 건 시험 덕분이다. 물려받은 유산 없고, 특출한 재능 없고. 교대에서 4년 시험공부하고 얻은 교사 자격증 하나로 평생 밥벌이했으니 그만하면 큰 혜택이 아니었나 싶다. 흙수저로 태어나 시험이라는 제도 덕분에 이만큼 살게 되었으니 감사하다.
문득, 인생이라는 것에도 '시험 범위'가 있을까, 생각했다. 어떤 이는 자알 살아서 높은 지위에 오르고, 어떤 이는 자알 살아서 커다란 명예를 얻고, 어떤 이는 자알 살아서 큰돈을 벌고. 그 사람들은 인생의 시험 범위를 잘 알아서 인생에서 우등생이 된 걸까. 나는 인생의 시험 범위를 잘 몰라서 권력도 명예도 부도 없이, 무명으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쓸데없이 이런 생각까지 드는 새벽이다. 저 책꽂이에 꽂혀 있는 수많은 작가들은 권력 명예 부를 이룬 사람들인가. 모두 인생 시험을 잘 쳤던 사람들일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저 사람들 중 몇은 큰 병을 앓으면서 인생의 의미를 알기도 했고(김혜남의 <오늘 내가 사는 게 재미없는 이유>, 어렵고 힘든 일을 하면서 인생을 깨닫기도 했고(김 완의 <죽은 자의 집 청소>),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을 하다가 죽음을 맞이했다(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
제사 지낼 때, 지방문(紙榜文)에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라고 쓴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배우는 학생으로 인생을 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신령이시여, 나타나서 자리에 임하소서!'라는 뜻이라고 한다. 돌아가신 분이 관직을 지낸 사람이면 '학생' 대신에 관직을 쓰라고 한다. 그러니 관직을 지내지 않은 보통 사람은 영원히 학생이라는 말이다. 제사라는 게 유교의 산물이니, 관직이라면 요즈음엔 공무원 정도가 아닐까. 아니 고위 공무원. 일반 회사의 CEO도 지방문에 회장이나 사장으로 살았다고 쓰나? 그건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나는 고위 공무원도 CEO도 지낸 것이 아니니 평생 학생으로 살다 가는 거다. 인생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 죽는 날까지 배우라는 얘기다. 인생의 최종 시험은 죽는 순간에 결정될 터이다. 고로, 인생에는 시험 범위가 없다. 자유서술문항이다. 지금 내가 자유롭게 서술하고 있는 이 글 또한 내 인생의 한쪽이다. 첨언하면, 나는 죽더라도 내 딸에게 제사를 지내라고는 안 할 거다. 내 딸도 자유로울 권리가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