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을 이겨내는 법

by 강지영

"임신입니다."

산부인과에서 다섯 번이나 들은 말이다. 그런데 딸이 둘이다. 나는 세 번 유산을 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세 번째이다. 속옷에 혈액이 묻어 나와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입원하라고 했다. 두 번 유산 전력이 있기 때문에 이번엔 좀 더 잘 쉬어보자고 했다. 꼼짝 말고 침대에만 누워, 안정기로 접어들 때까지 링거를 맞으면서. 학교에 가서 두 달 병가를 내고 입원하였다. 산부인과 병동이었기 때문에, 내 병실에 입원한 여자들은 산모이거나 예비 산모였다. 젖을 짜내는 사람, 출산이 임박해 배가 불룩한 사람. 그때만큼 남이 부러운 적이 없었다.


입원한 지 일주일쯤 지난 어느 날, 의사가 아침 회진 전에 검사하러 오라고 했다. 바깥은 푸른 새벽이었다. 초음파실로 향하는 나, 남편, 그리고 간호사의 발소리만이 병원 복도의 고요를 밀어냈다. 초음파실로 가서 진료 침대에 누웠다. 젤을 불룩한 내 배 위에 고루 바른다. "차갑습니다." 의사의 차고 건조한 말. 모니터를 보던 의사의 표정이 어둡다. 두근대던 내 심장 소리가 의사의 말에 멈춘다.

"아기 심장 소리가 들리지 않네요."

태아가 숨을 쉬지 않는다고 했다. 소파수술을 받았다. 그렇게 세 번째 임신이 끝났다.

수술과 짧은 휴식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나와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두 손만 잡고 있을 뿐이었다.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나는 내 몸은 내 아이의 숨은 멈추었는데 세상은 잘도 돌아가고 있었다. 낯설고 서러웠다.


뜬금없이 오래전 유산 경험이 떠오른 것은, 드라마 시청 때문이다.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발견한 드라마 <산후조리원>. 예전에 방영한 거라는데, 오늘 나는 넷플릭스로 봤다. 최연소 상무가 최고령 산모(엄지원 분)가 된다. 산후조리원에 들어가 겪는 일들이 코믹하게 때로는 진지하게 다가오는 드라마이다. 신생아실 장면이 나오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내 아이들의 젖먹이 때를 떠올려서다. 드라마 속, 아기를 낳고 모두가 기쁨에 차 있는데 한 산모만이 가끔 어두웠다. 슬픔을 감추기 위해 노력해도 내면을 감싸고도는 고통은 감추기 어려운 법이다. 슬픈 산모는 바로, 쑥쑥이 엄마다. 그 산모는 아기를 낳았는데 아기 건강이 좋지 않았다. 아기는 병원에 입원했고 산모는 산후조리원에 왔다. 아기 면회를 갈 때마다 나아지지 않는 아기를 보며 얼마나 마음을 졸였을까. 신생아실에 누워 있는 아기들을 웃으며 바라보는 다른 산모들이 얼마나 부러웠을까. 결국, 쑥쑥이 엄마의 아기는 엄마 가슴에 묻혔다. 그렇다고 어느 누구도 어떤 위로도 쑥쑥이 엄마의 마음을 치유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오롯이 당사자가 겪어내야 하는 일이다. 외로운 자기와의 싸움이다.


다시 내 얘기로 돌아가서, 30년이나 지난 지금은 얼마나 의학계가 발전했는지 모르지만, 그때만 해도 산부인과에서 벌어지고 있는 유산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진단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원인뿐만 아니라 유산을 예방하고 방지하기 위한 의학적인 처방도 확실한 것은 없다고 했다. 내가 임신에 대하여 얼마나 절박했는지, 차라리 남편이 다른 데 가서 아이를 만들어 가지고 오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했다. 아니면 대리모라도?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도 집착이었다. 유산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차후 방책을 찾기도 어려웠다. 그냥 그렇게 잊고 지내는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서는 휴직을 하거나 퇴직을 권했다. 그렇게 하고 집에만 있기에는 내 정신 건강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교사 생활에 충실하기로 했다. 내 아이가 없더라도 교실에 있는 아이들이라도 잘 키우면 되지 않나 싶었다.


살다 보면 나 자신만이 견뎌내야 하는 일이 있다. 다른 사람이 어느 정도의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자기가 선택하고 버티고 이겨내야 하는 일이다. 질병이 그렇고, 가난이 그렇고, 사랑이 그렇다. 그뿐만이 아니다. 삶의 여러 순간이 결국 스스로 겪어내야 하는 일이다. 시련을 이겨내는 법이 따로 있을까. 옛날 어르신들이 말했다.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도 있다고. 우리네 인생도 좋았다가 나빴다가 또 좋아진다를 반복한다. 맑은 날이 내 공도 아니고 흐린 날이 내 탓이 아니듯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일들이 나 때문만이 아니다. 그저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걸 '자연'이라고 한다. 그러니 내 공이라고 자랑할 일도 아니고, 내 탓이라고 자책할 일도 아니다. 그냥 일어나는 일들이 태반이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쑥쑥이 엄마의 삶은 끝나지 않았다. 누구 탓도 아니니 시련을 잘 이겨내기를 바란다. 이것은 나에게도 보내는 응원의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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