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 : 숨바꼭질 (강지영의 자전에세이)
어렸을 적, 숨바꼭질을 많이 했더랬습니다. 낮에 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여름날 밤에 노는 것도 참 좋았습니다. 술래를 정하고 여기저기 숨으면 술래가 하나 둘 찾아내는 놀이지요. 그중에서 어느 겨울날에 했던 숨바꼭질이 생각납니다. 제가 어느 집 헛간에 숨었습니다. 추운 날이었지만 그 헛간은 참 따뜻했습니다. 예전에 농부들은 가을걷이가 끝나면 볏짚을 헛간 가득히 쌓아놓았습니다. 겨울 철 땔감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였지요. 우리 집도 그러했습니다. 저의 아버지도 농부였으니까요. 남의 집 헛간에 숨은 저를 술래가 찾지 못했습니다. 친구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술래가 저 말고 다 찾았나 봅니다. 술래는 저를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제가 너무 잘 숨어서였던 거죠. 저는 심심했습니다. 하여, 제 발로 기어 나왔습니다. 그리고 밤이 깊어져 모두 자기 집으로 들어들 갔습니다.
문득, 저의 글쓰기가 숨바꼭질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책 제목을 '숨바꼭질'이라고 정했습니다. 그동안 저는 제 삶이 힘들어서 세상에 나오고 싶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은 가난했고, 젊은 시절엔 병과 사투를 벌여야 했고, 더 나이 들어서는 여러 이별을 거치면서 몸과 마음이 고단했습니다. 나만 힘들게 살고 있는 것이 너무나 억울해서 세상에 문 닫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기 속에서 살아남아, 제 나이 환갑을 바라봅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열. 심. 히.' 살 걸 아쉬움도 있지만, 언뜻언뜻 떠오르는 제 삶을 되짚어 보면 '그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 그게 최선이었어.' 하는 결론에 다다르지 뭡니까.
아무리 기다려도 삶의 숨바꼭질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저 스스로 세상으로 나오고자 마음먹었습니다. 처음에는 소설로 써 볼까도 생각했습니다. 다 얘기하자니 쑥스럽기도 하고, 다 드러내면 허전할 것 같기도 해서 말이지요. 소설이라는 외피 속에 숨어서 글을 쓸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소설 창작이라는 강의도 들어보았지요. 얼마 되지 않아 그건 지나친 욕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은 꽤 철저한 디테일도 익혀야 했고, 생각보다 더 높은 문학적 재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소설 쓰기에 대한 생각은 접었습니다. 소설가를 높이 보고, 에세이 작가를 낮게 보려는 의도는 결. 코. 아닙니다. 제가 소설을 쓰지 못하겠다는 고백입니다.
부지런히 독서를 하다 보니, 내 얘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내가 고통받고 힘들었던 일, 기뻤던 일, 무엇보다도 나를 이만큼이나 성장시켜준 부모님, 형제자매, 선생님, 그리고 친구와 지인. 이 분들에 대한 고마움도 세상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기로 했습니다. 제 인생은 길가의 풀 한 포기와도 같습니다. 보도블록 틈바구니에서 피어난 민들레꽃일지도 모릅니다. 이름 모를 들꽃일 수도 있습니다. 작은 꽃이지만 지나가는 나그네에게는 '어머, 저런 데서도 꽃이 피었네.' 하는 감탄을 자아낼 수도 있지 않을는지요.
하여 저도 용기를 내 봅니다. 가난, 질병, 이별. 이 세 가지는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제가 힘들 때마다 의지했던 것이 독서였습니다. 책 덕분에 이만큼의 평안을 누리는 것 같습니다. 고은 시인의 시 중에 '순간의 꽃' 있습니다. '내려갈 때 보았네/올라갈 때 못 본/그 꽃' 짧은 글 속에 어찌 그리 인생의 깊이를 느끼게 해 주는 시인지, 참 절창입니다.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로 다가올 텐데, 이 글을 쓰는 제게도 절실하게 다가옵니다. 제 삶이, 제 글이 누군가에게 '내려갈 때 본 순간의 꽃'이 된다면 큰 영광이겠습니다.
2022. 12.
겨울에 태어난 강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