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인터넷)
결혼 후, 남편이 변한 건 또 있다. 바로 나에 대한 평가의 말이다. 연애할 때는 내 말이 늘 맞다고 현명하고 지혜롭다고 때로는 합리적이라고 칭찬하던 사람이었다.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 말 대신에 '도도하다', '배운 티를 낸다', '잘난 체한다' 등이었다. 내가 그런 말을 듣게 된 사연은 밤새워 말해도 할 수 있으나, 여기서는 몇 가지만 말하기로 한다. 시어머니의 미신적인 행동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남편은 어머니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고분고분 따라주는 게 문제였다. 모든 것이 자식 잘 되라고 그러는 것이니 웬만하면 따라 드리는 것이 가정의 평화를 위해서 좋지 않냐는 것이었다. 나는 시어머니에게 대항하지는 못하고 남편에게만 따지고 들었다. 제발 어머니 좀 말려 달라고. 남편은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또 분란이 일어났다.
가장 먼저, 신혼여행 다녀와서 집에 들어오기 전에 오색실을 대문옆에 버리고 들어오라고 한 것부터 시작해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괴이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지만, 시키는 대로 따랐다. 결혼한 새색시가 처음부터 어깃장을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내가 해석하기로는, 오색실 즉 오만가지 잡귀신을 모두 떨쳐 버리고 새 마음으로 집안에 들어오라는 얘긴가, 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두 번째 유산을 했을 때였던 같다. 시어머니는 충남에 있는 어느 산에 같이 가자고 했다. 돌부처의 코인가 뭐를 긁어내서 물에 타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고. 분명히 반대할 거니까 아비에게는 말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시어머니의 그런 미신에 동조할 수가 없었다. 크게 내색은 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루다가 남편에게 말했다. 남편은 화를 냈다. 가지 말라고 했다. 산에 가자는 말을 듣지 않자, 시어머니는 우리 부부를 시골집에 오라고 하시더니 큰 보따리를 가져가라 하셨다. 그리고는 인천 집에 가서 풀라고 하였다. 시키는 대로 하였다. (TV에서 보니까, 아들 몇 낳은 여자의 속옷을 입고 합방을 하면 아들을 낳는다던가. 또는 아들 몇 낳은 집의 마루밑에 가서 부부가 함께 자면 아들을 낳는다던가 하는, 그런 황당한 일을 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했다.)
시어머니에게 잘 도착했다고 전화를 했더니, 보따리에 든 것의 용도를 설명하셨다. 전화를 끊고, 보따리를 풀었다. 한 뼘 정도 되는 이름 모를 나뭇가지를 한 움큼씩 묶은 다발이 한아름이 넘었다. 여러 가지 곡식을 섞은 것이 두 되는 되었다. 어두워지면, 나뭇가지 묶음은 하루에 한 묶음씩 현관에서 태우고, 곡식은 하루에 한 움큼을 조금씩 나누어서 창문마다 뿌리라고 하였다. 나는 정말로 하기 싫었다. 남편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시어머니가 우리 아기 생기라고 하라는 정성인데 안 할 수 있냐며, 억지로 실행했다.
현관문을 닫고 나뭇가지를 태웠다. 혹시나 화재 난 줄 알면 안 되니까. 여름이라 습해서 그런지, 나뭇가지가 마르지 않아서인지 잘 타지 않고 연기가 많이 났다. 서러워서 눈물이 났고, 연기가 매워서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한 달가량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남편은 내가 그 일을 할 때면 밖에 나가 있었다. 야속했지만 남편이 나가 있는 게 내 마음은 편했다. 이 모든 일이 손자를 보기 위한 것이고 우리 부부도 아기를 원하는 일이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순순히 따랐다.
이사를 가는 날에도 시어머니의 종교생활은 이어졌다. 시어머니가 스님과 동행하여 우리 집에 왔다. 집에 살림을 들여놓기 전에 큰 항아리를 거실 가운데에 가져다 놓으라고 해서 가져다 놓았더니, 스님은 목탁을 두드리며 아미타불을 불렀다. 한참을 그렇게 염불을 하고 나갈 때, 시어머니는 나에게 눈짓을 했다. 스님에게 돈봉투를 드리라고. 얼마를 드려야 하냐고 했더니, 내 수준에서는 꽤 큰 액수였다. 집 안에 있는 현금을 모아 모아서 드렸다.
부처님께 축원기도를 드려야 하니 얼마를 내야 한다, 부처님 오신 날에 등을 달아야 하는데 얼마를 내야 한다, 부적을 써야 하니 얼마가 필요하다, 등등에 들어가는 돈을 나에게 요구했다. 우리 부부를 위한 일에는 당사자가 비용을 부담해야 효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남편에게 달라고 하면 나에게 미룰 게 뻔하니까, 시어머니는 나에게 달라고 한 것 같다. 그 심정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지만 정말 맘에 들지 않았다.
가장 심하다고 생각한 것은, 남편이 크게 아픈 적이 있었다. 시어머니는 나에게 와서 이런 말을 하셨다.
"네가 가진 돈이 모두 얼마냐? 스님이 그러는데, 그 돈을 다 써야 애비가 낫는댄다."
이 말을 듣고, 따르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통장에 든 돈을 모두 출금하여, 시어머니와 함께 장애인 복지시설에 가서 기부하였다. 그때부터 나는 마이너스 통장이라는 것을 만들어 쓰기 시작했다.
시어머니가 다니던 절의 그 스님은 진짜 스님은 아닌 것 같다는 강한 의심이 들었지만 그걸 파헤칠 여력도 용기도 없었다. 아마도 스님과 무당의 중간쯤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그렇게 돈을 모아 모아 스님에게 바치던 시어머니께서 몇 년 전부터 교회를 다니신다. 어느 날, 시댁에 갔더니 거실에 십자가가 걸려 있었다. 얼마나 웃음이 나오던지, 나는 혼자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