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변했다

(1991년~1992년의 기록)

by 강지영

(사진출처 : 인터넷)

앗, 남편이 변했다.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다. 세상사 변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으랴만, 남편이 달라져도 너무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한밤중에 함께 꼭두각시 무용 연습을 해 줄 만큼 나에게 잘해 주었던 사람이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다른 사람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아니, 본모습으로 돌아온 건지도 몰랐다. 어느 게 실제 모습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인천에 발령받아 함께 살게 되었는데도, 그는 시골 부모님 집을 자기 집으로 인식했다. 부모에게서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것 같았다. 사 남매 장남, 장손이라는 것에 짓눌려 사는 것 같아 가엾기까지 했다. 그런 그를 품어줄 만한 넉넉함이 나에겐 부족했다. 시골 부모님 살림살이를 경제적으로 돕는 것도 좋지만, 우선 내가 살고 봐야 부모를 도울 수도 있지 않냐는 것이 내 논리였다. 남편은 내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래서 불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우선 연탄보일러 단칸방을 벗어나고 싶었다. 살던 곳에서 연탄가스 사고가 난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TV에서 연탄가스 중독 사고 뉴스가 나올 때마다, 나는 두려워서 잠을 자기가 어려웠다. 잘래야 잘 수가 없었다. 남편은 그것도 모르고 곯아떨어져 잤다. 그는 가정 경제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로지 학교일에만 집중하였다. 가게에 가서 옷을 사는 일에도 관심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남편이 입던 옷을 가지고 가서, 이 사이즈의 옷을 주세요, 하는 식으로 옷을 사다 주었다. 사다 주면 뭐든 불평 없이 입고 다녔다. 남편은 자기 몸을 꾸밀 줄도 몰랐다. 오로지 자기 전공 분야 공부, 생물학 연구에만 올인하는 스타일이었다. 날마다 현미경만 들여다봐서 시야가 좁아서 그런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연애할 때는 그게 큰 매력이었는데, 결혼해서 같이 살아보니 매력만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내가 변한 건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남편이 귀금속 따위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이 다행인 일도 있었다. 어느 날, 나의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그 당시에 나의 막내 남동생이 대학생이었는데, 얼마나 용돈이 궁했는지 나에게 전화를 했다. 부모님에게 용돈 달라기가 얼마나 죄송했으면 시집간 누나에게 전화를 했나 싶어서, 가슴이 아팠다. 동생이 부탁하기 전에 내가 동생에게 용돈을 주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파트를 사기 위해 내가 무리하게 저축을 해서 가진 돈은 없고, 동생에게 용돈은 줘야겠고, 할 수 없이 결혼반지를 팔아 송금했다. 남편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그때 나는 돈을 구할 다른 방도가 없었다. 결혼할 때 받은 순금으로 된 쌍가락지를 끼고 다니기는 너무 어색해서 보관해 놓기만 했었다. 장롱 속에 넣어둘 바에야 필요할 때 쓰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다행인 것은 남편이 귀금속 나부랭이에 관심이 없어서 들키지도 않았고, 내가 그런 연유로 반지를 팔았다고 말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 후로 아무 문제가 없었다.


쌍가락지를 판 것은 딱 한 번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어려운 가정형편에 힘들게 학업을 이어가고 있는 동생을 나는 나 몰라라 했다. 그러려고 하지는 않았는데, 나 살려고 그렇게 했다. 내가 교대를 다닐 때는 발령받아 교사가 되면 집안 살림을 크게 일으켜 보겠다는 큰 포부를 가졌었는데, 나의 암투병과 결혼으로 그 포부는 그야말로 헛된 꿈에 그치고 말았다. 만약에 시댁이라도 잘 살았으면 남편에게 부탁하여 동생 학비를 보탤 수도 있었는데, 시댁마저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말도 못 했다. 오로지 단칸방을 벗어나기 위해서 눈을 질끈 감고 외면하였다. 그 부분에 대해서, 동생에게 누나로서 면목이 서지 않는다.


어떻게든 집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했다. 그는 자기 봉급 통장 관리를 나에게 맡겼다. 내 집 마련을 위해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저축을 했다. 어떤 때에는 시장 갈 돈이 없어서 돼지 저금통에서 동전을 꺼내 쓰기도 하였다. 집 근처 인천 신포시장이 가까웠으나, 좀 더 멀리 인천 송현시장에 가서 장을 보았다. 송현시장 채소나 생선이 훨씬 더 저렴하였다. 송현시장 근처에 인천백화점이 있었다. 그곳을 지나갈 때면, 언제 나는 백화점 쇼핑을 하나, 부럽기도 했다. 내가 인천에 발령받아 온 지 2년 만에 소형 아파트로 이사를 하였다. 그때는 집값이 지금처럼 높지가 않아서 그게 가능했다. (대출을 조금 받은 것도 같고 안 받은 것도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그러는 동안, 시댁에서 오는 전화 때문에 남편과 많이 다투었다. 특히 농번기에, 주말에 오라는 내용이 많았다. 그 당시는 토요일도 오전 근무를 하던 때였다. 나는 주말에 청소, 빨래 등 할 일이 있고, 또 쉬고 싶은데 어떻게 주말에 다녀가라는 것인지 시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인천에서 충남 연기군 금남면(지금은 세종시)까지. 자가용차도 없는데. 지하철 타고 기차 타고 버스 타고, 가는데 만도 4시간가량이나 걸리는데,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었다. 남편도 쉬고 싶긴 하겠지만 부모 일손 돕는 것이 자식 된 도리라고 생각해서인지, 부모님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억지로 나를 데리고 가려고 하였다. 자상한 남편이 나에게만 다정했던 것이 아니었다.


연애할 때는 나를 위해서라면 뭐든 했던, 그렇게 다정했던 남자가 결혼 후 이렇게 변하다니, 나는 속은 기분이었다. 결혼으로 콩깍지가 벗겨지니 남편의 실체가 드러났다. 반대로, 남편도 속은 기분이었을지도 모른다. 낭만을 즐기던 사랑꾼 여자였는데, 결혼하면서 억척스러운 아줌마로 변했으니까. 생각해 보니, 나만 속았다고 억울해할 일만은 아니다. 속고 속이는 것이 인생사라 하던가.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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