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만 세 돌이 가까워지면서 축복처럼 터진 것이 있다. 바로 '언어'다.
자기표현이 명확해진 아이의 성장은 분명 기쁜 일이지만, 엄마인 나에게는 예상치 못한 복병이 생겼다. 아이가 집안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어린이집 선생님께 생중계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 오늘 아침에 혼났어. 그래서 화가 났어."
어느 날 하원 길, 선생님께서는 "어머니~ 아이가 아침에 밥을 안 먹어서 엄마가 혼내서 화가났대요~"라고 말씀하셨다. 말을 잘 하는 건 알았는데 내 본 모습(?)까지 낱낱이 공개할 줄은 몰랐다.
그때부터였다. 선생님을 마주할 때마다 구구절절 해명 아닌 해명을 늘어놓기 시작한 것이.
"선생님, 어제 제가 좀 엄하게 말하긴 했지만 그게 아이가 밥을 너무 안 먹어서 그랬거든요. 원래는 안 그러는데…."
묻지도 않은 말들을 쏟아내며 나는 필사적으로 나의 이미지를 관리했다. 이상한 엄마로 보이지 않으려, 완벽한 엄마의 가면을 다시 고쳐 썼다.
사실 알고 있다. 선생님은 수많은 아이를 겪으며 아이들의 과장 섞인 표현에 익숙하실 것이고, 나를 비난할 생각조차 없으시다는 것을.
하지만 내 안의 고질병인 인정중독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조금이라도 일그러지는 것을 나는 견디지 못했다. 아이의 입을 빌려 전달된 나의 인간적인 실수를 나는 실패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인정중독을 타파하겠다고 다짐하며 글을 써왔지만, 육아의 현장에서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기란 참으로 어렵다. 아이는 나의 가장 부끄러운 민낯까지 세상 밖으로 실어 나르는 작은 전령사였다.
이제는 구구절절한 해명을 멈춰보려 한다.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때로는 화도 내고 때로는 후회도 하는 '사람인 엄마'의 모습을 인정하는 것.
선생님 앞에서 이미지 관리를 하느라 에너지를 쓰는 대신, 아이가 전한 그 말 뒤에 숨겨진 감정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엄마가 되고 싶다.
인정중독이라는 거대한 성벽을 허무는 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지만, 나는 이제 어색한 해명 대신 담백한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는 연습을 한다.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엄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