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구, 첫째가 참 안됐다. 사랑도 못 받고... 뭐가 그렇게 급해서..."
평범했던 오후,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벌어진 일이다. 우리 아이들을 보며 쌍둥이냐고 묻는 할머니에게 웃으며 "연년생이에요, 12개월 차이 나요"라고 대답한 직후 날아온 비수 같은 말이었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타인의 가정사에, 그것도 아이들이 빤히 듣고 있는 앞에서 어떻게 저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을까.
머릿속이 하얘지고 가슴속에서 뜨거운 불덩이가 훅 치밀어 올랐다. 당장이라도 "그게 무슨 무례한 말씀이시냐"며 따져 묻고 싶었지만, 아이들 앞에서 언성을 높일 수는 없었다.
결국 내가 뱉어낸 말은 "걱정은 감사해요"라는 짧고 차가운 인사말뿐이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그깟 '걱정은 감사하다'는 말 말고, 왜 남의 일에 참견이냐고 똑부러지게 쏘아붙이지 못한 내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아파트 입주민 단톡방을 열어 그 할머니의 인상착의와 함께 이 황당한 에피소드를 올려버릴까 수십 번도 더 고민했다. '세상에 이런 무례한 사람이 다 있네요, 다들 조심하세요!'라고 사람들의 공감과 위로를 얻고, 내 분노가 정당하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자판을 두드리던 손을 멈췄다.
가만히 내 마음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 이유는 단지 그 할머니가 예의가 없어서만은 아니었다.
그 무례한 말 한마디가, 연년생 두 아이를 키우며 내가 남몰래 해왔던 치열한 고민과 헌신을 한순간에 부정당한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했기 때문이다.
혹시라도 내 사랑이 부족하지 않을까 매일 밤 아이들의 머리맡에서 다짐했던 나의 짙은 모성애가, 모르는 타인에게 함부로 평가받았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왜 그 스쳐 지나가는 타인의 평가에 상처받고 억울해해야 하는 걸까?
우리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넘치는 사랑을 주고 있는지, 우리 가족이 얼마나 단단하고 행복한지는 나침반처럼 확고한 사실이다.
아파트 단톡방 사람들에게 억울함을 토로하며 "당신은 좋은 엄마예요, 그 할머니가 이상한 거예요"라는 위로와 인정을 구하지 않아도 변하지 않는 진실이다.
타인의 인정과 시선에 얽매이던 과거의 나였다면 어떻게든 억울함을 증명하려 애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무례한 오지랖에 내 귀한 감정과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그날 엘리베이터에서 똑같이 맞대응하지 않고 "걱정은 감사해요"라며 대화의 선을 그어버린 것은, 바보 같아서 참은 게 아니라 더 이상 타인의 무례함에 내 수준을 맞추지 않겠다는 우아한 방어막이었다는 것을.
다음에 또다시 선을 넘는 타인을 마주한다면, 그땐 속으로 가볍게 코웃음을 쳐주리라.
'저희 애들 사랑은 제가 알아서 차고 넘치게 주고 있으니, 본인 마음속 결핍이나 잘 챙기시죠.'
타인의 섣부른 잣대에서 한 걸음 물러나니, 단톡방에 올리려던 억울함 대신 내면의 단단함이 차오른다. 오늘도 우리 아이들은 엄마 아빠의 듬뿍 담긴 사랑 안에서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