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힘들 수도 있는 이야기. 가족.
나이를 들수록 아빠, 엄마가 어려워졌다.
여러 기억의 파편들이 나의 예민한 기질에는 결국 나이를 먹을수록 희미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쌓이고 증폭되어 나는 힘든 일이 있거나 아파도 부모에게는 털어놓지 못하는 중년이 되었다.
아빠는 어릴 때 부부 싸움을 하면 가끔 엄마를 때렸다. 가족이나 부부 관계에 대한 모범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자란 아빠는 나이 차이가 좀 있던 엄마를 당신이 가르쳐서 버릇을 고쳐놔야 한다고 생각했다. 장남인 아빠는, 몸이 약해서 몇 번이나 유산을 했던 엄마가 아들을 못 낳았다고 구박을 하기도 했다. 고향이 서울이 아니었던 엄마는 기댈 곳이 없어 그런 날은 방 안에서 혼자 울었고, 그 후 며칠은 언니와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썼다.
두 분은 우리를 가르칠 때 판단 기준에 일관성이 없었고, 무례하고 신경질적이고 감정적일 때가 많았다. 나는 부모와 함께하는 식사 시간에 큰소리나 짜증이 들리면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한다.
어릴 때의 두 분의 환한 얼굴이나 웃는 모습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언니는 장녀라 나보다 더 엄마의 ‘기댈 곳’이 되어 어릴 때부터 타의에 의해 애어른으로 자랄 수밖에 없었다. 언니한테 향한 부모님의 통제도 나보다 더 심했는데, 엄마는 언니에게 기대가 여러모로 컸던 탓에 언니의 시험 성적, 진로 같은 계획들이 엄마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거나, 언니가 사춘기 때 작은 거짓말이라도 하면 엄마는 그걸 자신에 대한 배신으로 여기고 언니를 감정적 훈육으로 심하게 때렸다.
나는 어릴 때부터 기민하고 몸이 약해 잔병치레를 자주 했었고, 학습적으로도 부모님의 기대 축에 못 드는 아이였던지라, 두 사람의 레이더망에서 대부분 많이 벗어나 있던 것 같다. 해서, 나는 언니랑 같은 행동을 해도 덜 혼났고, 건드릴 데가 없어 못 때리는 아이였기 때문에 통제는 덜 했지만 뭘 해도 큰 기대가 안 되는 애로 자랐다. 그렇게 여러모로 부모를 피곤하게 하는 애였으니, 엄마가 나에게 대부분 관심이 없게 느껴지는 것도 당연했다.
엄마는 버거웠던 것 같다. 이 삶이, 그런 아빠를 견디면서 어린 나이에 우리를 책임지고 사는 인생이.
그래도 부모님은 우리를 잘 키우려고 각자 노력을 많이 하셨다. 하지만 긍정적인 친밀의 표현은 전혀 하지 않았다. 언니와 나는 사랑한다는 말을 부모에게서 들어보지 못한 어른으로 컸다. 살면서 한 다섯 번 들은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엄마가 술을 마시면 취할 때뿐이었는데 엄마의 상태를 이미 눈치챈 나는 그게 그렇게 거짓 같고 듣기가 싫었다. 어차피 다음날이면 나한테 했던 말도 기억을 못 했다.
감정 조절 방식에 있어 어른스러운 방법을 터득하지 못하는 엄마는 나이가 드셨음에도 자기 수가 틀리면 종종 판을 엎듯이 화를 지른다. 얼마 전에도 나한테 갑자기 전화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내가 또 당신 뜻대로 안 되자 엄마는 소리를 지르고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나는 그런 엄마를 몇 개월 동안 보지 않았다. 이제는 할 만큼 했고, 더 이상 내 마음을 깎아가면서 맞추고 싶지 않아 졌다. 자식이기 때문에 일방적인 감정받이가 계속 받아줘야 한다는 의무를 더 짊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그런 일을 겪으면 나는 의례 나만의 부모 콤플렉스에서 못 헤어 나와 몇 개월을 밤마다 분노를 삭이며 보냈다.
마음을 고쳐 먹기로 했다. 생각을 전환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더는 그렇게 내 시간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아 졌기 때문이다.
잘 때 행복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기분이 좋은 그런 인생을 살고 싶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동기부여가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고, 무언가를 하지 않는 내가 있는 그대로 괜찮고 부모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못 듣고 살았으나 내 눈에 사랑스러운 나 자체로 나 자신을 도닥이고 보듬고 싶었다. 용기를 얻고 나면 모래성처럼 쉽사리 무너지지 않고, 그걸 내 자양분으로 삼아 작지만 조약돌 같은 단단한 나로 계속 전진하고 싶어졌다. 그걸 무너트리지 않을 나로 그 인생을 살아가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큰 용기를 내어 그런 부모를 용서하기로 했다.
"용서한다"해서 “내 인생 안으로 이전처럼 다시 들어와서 헤집어 놔도 괜찮아요.”라는 뜻은 아니다.
내 마음을 부모에게 그런 내 마음을 얘기하고 용서했다고 말할 필요도 없다. 내 개인적으로 마음 안에서 나와 부모를 용서하고, 나를 자유롭게 하는 방법이다. 언제까지 부모 콤플렉스에 빠져서 분노와 서운함으로 내 시간을 살아갈 수는 없는 이유 때문이다.
*이 내용은 김주환 교수님의 용서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참고하여 많이 배우고, 생각을 계속 정리해 나가는 중이다.
내 인생을 바꾸고 그걸 살아갈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걸 선택할 힘도 나에게만 있다.
그리고 그 인생을 살아갈 자격이 있는 사람도 나뿐이다.
나는 나를 온전히 사랑하고 싶다.
나는 어른의 나이지만 아직도 성장하고 나를 찾아가는 과정의 길 어딘가에 있다. 꾸미지 않는 내 모습, 얼굴의 주름이 화장으로도 안 가려지는 내 모습, 아니 그걸 화장으로 가리지 않아도 편안한 나 자신, 그 어떤 것이든 괜찮다 하고 누구도 먼저 보듬어 주지 않을 나를 내가 제일 먼저 사랑하고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그 어린 날의 나를 찾아가서 네 잘못이 아니니 다 괜찮다, 사랑한다, 힘내라 꼭 안아주며 말해주고 싶어졌다. 왜 몰랐냐고, 왜 한 마디 못했냐고, 나 자신을 다그치던 시간을 지나 그때의 나를 용서해 주고 나 자신과 화해하고 싶어졌다. 그 아무도 해주지 못했던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