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려워.
중학교 때쯤이었던 것 같다.
나는 사춘기가 오고, 출근하는 아빠한테 전날에 쓴 두장의 손 편지를 건넸다.
아마 아빠는 당신은 사랑을 입으로 절대 표현한 적이 없어도, 자식은 으레 편지에 아빠 사랑한다는 말을 썼기를 바랐을 거고, 엄마에게 온갖 모진 말을 하면서도 딸은 그런 것에 영향을 받았을 거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듯하다.
편지의 내용은 내가 느낀 아빠의 문제점들과 엄마한테 했던 행동들이 어떻게 나한테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한 토로였던 걸로 기억한다.
*어린 내가 쓴 글들은 그 후에도 별로 영향력이 없었으니, 어쩔 수 없이 ‘토로’라는 표현을 입혀 본다.
편지를 받을 때 아빠는 좀 설레어했던 것 같다. 난 그 표정이 이상하리만치 뻔뻔하게 느껴져서 뒤에서는 그 편지를 읽을 아빠를 상상하며 혼자 통쾌해했던 것 같다.
뭐랄까…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복수의 끝판왕이라고 느껴졌다.
아들들은 아빠가 엄마를 대하는 걸 보면서 먼 미래의 자기 와이프한테 할 행동들을 무의식 중에 자신의 행동양식에 깊이 각인하게 된다. 반면에 딸들은 아빠의 그런 행동을 보면서 자신의 연애관이나 만날 사람에 대한 인간관, 미래의 결혼생활 대해 계획하고 꿈꾼다.
말 그대로 인생에 있어 나 모르게 하게 되는 첫 번째 연애관 교육이다.
나는 엄마를 사랑해 주지 않는, 우리에게 사랑한다는 표현 한마디를 안 해주던 아빠를 겪으며 애정결핍으로 자라 사춘기 때 정말 말 그대로 아무나 혼자 금세 짝사랑을 하는 아이로 컸다.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처럼, 누군가의 특정 모습에 혼자 꽂히면 그냥 맹목적으로 상대를 좋아했고, 고백을 했다. 그러곤 상대와 만나서 시간을 보내고 그게 상상과 달라 금방 실망하고 등을 돌렸다.
나는 내 감정을 잘 몰랐고, 그냥 누군가와 함께하기를 원했었다.
바람에 날아다니는 비닐봉지 같은 감정들이 남발되던 날들이었다.
나이를 먹고 그런 아빠를 조금이나마 용서할 수 있게 될 때쯤,
아빠의 저녁 산책을 따라간 나에게 아빠는 문득 이런 말을 했다.
“너는 연애 많이 해보고, 꼭 사랑하는 사람이랑 결혼해.”
이 말을 들으니 오히려 마음 한편에서 이상한 개운함이 느껴졌다.
아빠가 말을 돌려서라도 당신의 살아온 억지 세월을 인정한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상하지만, 그 말은 시간이 더 지나면서 아빠도 엄마도 모두 짠하게 여겨지는 이유 중에 하나가 되었다.
서로 몇십 년을 미워하고, 사랑하지 않으면서 책임으로 자식들만 돌보느라 세월에 복종하고 마음을 포기하는 삶이란 대체 어떤 것일까.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연애를 몇 번 하고, 자연스레 결혼 얘기도 오고 갔었다.
끝에는 내가 다 어그러트렸다.
그 상대들이랑 무슨 일을 겪더라도 이혼하지 않고 평생 살 자신이 없었고,
사랑이란 감정이 뭔지 모르겠고, 그런 내 감정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 생기지 않아서였다.
나도 나를 잘 모르겠는데 꿔다 놓은 보리짝처럼 영혼 없이 인생을 보낼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한 번은, 나에게 좋아한다며 고백했던 친구가 어느 날 그런 말을 했다.
“넌 사랑을 몰라,”
내가 생각해도 난 아직 애절하고, 그 사람을 위해 모든 걸 내어주는 그런 사랑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사랑이 따듯한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결국엔 자기의 욕심과 상대의 욕심이 죽이 맞아서 우리는 잘 맞는다 하고 사는 게 사랑인가 싶기도 하다.
아직 사랑에 희망이란 감정은 있으나, 솔직히 그런 건 금방 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한때 좋더라도, 그런 걸로 속아서 서로 눈 가리고 결혼하는 사람이 더 많다 싶은 생각.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언젠가는 나의 이런 생각을 깨트려줄 누군가 나타날 거라 막연한 기대를 아직 안고 산다.
인간이란 부정을 그득 안고 살다가도, 희망이란 작은 존재 앞에 갑자기 다 내려놓고 어린아이처럼 순수해지고 싶은 그렇게 미련한 존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