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I

모두가 다 소중한 인연.

by 이로하

돌이켜보면, 나의 20-30대는 야근이 대부분인 직장 생활을 뜨거운 연애로 시간을 이겨내며 보낸 것 같다.


울면서 못 헤어진다는 사람부터 헤어지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한 사람까지 정말 별의별 케이스가 다 있었다. 나이부터 직업, 외모, 만나게 된 계기, 성격이 다 달랐지만 왠지 모르게 내 연애는 끝이 그리 담담하지 않았다. 하긴, 끝이 아름다운 안녕이 그리 쉬울까.


20대 말에 굉장히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와는 집안 반대로 몰래 연애를 했었고, 성향이나 외모풍, 좋아하는 것은 달라도 둘이 좋아하는 책의 풍이나 조용한 것들을 선호하는 것, 나대지 않고 연애하는 걸 좋아했던 등으로 여러 가지가 맞아 그래도 둘이 어찌어찌 잘 만났다.


헤어지게 된 이유는 여느 누구나 그러하듯 여러 가지가 복합적이었지만,

그 후, 한 번만 다시 얼굴 보고 얘기하자 만났던 자리에서 그 애답지 않은 행동에 밑바닥을 보게 되었고 그전에 그나마 갖고 있던 그리웠던 마음들이 한순간에 바사삭하고 다 사라져 버렸다.

어쩌면, 다행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게 그 애다운 행동이었을 것이다.


다시 마주치게 되면 어떠려나 하고 상상했던 때가 있었다.

몇 년 전까지는 그래도 다시 보게 되면 아무 말도 못 하려나, 당황하면 어쩌지 싶었는데,

얼마 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중에 그 애를 실제로 마주하게 되었다.

결과는 내가 상상하던 것과 다르게 내가 너무나 무덤덤한 것이 아닌가!

당황도 하지 않고, 놀라지도 않았으며, 그냥 익숙했던 그 아이의 곱슬한 뒷머리와 뒷덜미를 보면서

아 저런 뒷모습을 오래 마주했었지, 하는 생각만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마치 고무 인간을 가져다 놓고 그냥 껍데기를 마주하는 듯, 마네킨을 보는 마냥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모든 인간관계가 아마 그럴 것이다.


한때는 친구도 소중해서 좋아 죽고, 연애도 서로 달콤한 말들을 쌓아가며 단단한 신뢰를 만들었다 생각하지만 그런 것들의 관계가 어떠한 이유로 멈추게 되고, 노력이 끊어지고, 그 상태로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 누구든 남, 즉 나와 아무 인연이 없는 타인과 타인 같은 0의 관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인연이라는 것은 다 허상과도 같은 것일지 모른다.


반대로 또, 그러하기 때문에 고마운 인연들이 곁에 있을 때는 서로, 함께 '잘'해야 한다고 항상 생각한다.

또 내가 잘해주기 때문에 그걸 이용하고 악용하는 사람은 조용히 '굿바이'다.


곁에 있기 때문에, 계속 곁에 있을 것 같아서 소홀 해지는 건 별로다.

영원히 내 곁에 남아있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모든 건 어느 순간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나는 지금 곁에 있는 것을 감사히 여기고

또 하루하루를 나에게 가치 있는 것들로 채우며 노력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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