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I

엄마라는 이름.

by 이로하

엄마가 나에게 했던 말 중에 가장 기억이 많이 남는 말들은 “니 아빠랑 진짜 똑같아” 였던 것 같다.

난 그 말이 그렇게나 싫었다.


우리에게 매일 아빠 욕을 하고, 미워하고 부정하면서 딸한테 왜 그런 사람이랑 똑같다고 대놓고 그렇게 계속 말했던 걸까. 혹여나, 아빠에게 미운 정이 들었다고 해도, 딸을 사랑하지만 그런 식으로 투박하게 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엄마의 그 어법을 나는 지금도 좋아하지 않는다. 어린 마음에는 혹여나 아빠가 아들을 못 낳았다고 구박했으니, 딸로 태어난 나에게 화풀이를 퍼붓는 건가 싶을 때도 있었다.


어른이 되고서 생각해 보면, 기댈 데 없고, 힘들고, 어렸던 엄마는 화나고 상처받는 마음들을 어린 나와 언니한테

필터 없이 다 표현하면서 그 불안함을 삭히고 기대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도 엄마가 우리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썼었다는 생각에는 변함은 없지만 말이다.




엄마는 그 옛날 시대의 여러 집이 그러했듯 남녀차별과 외할아버지의 이상한 가정교육관이 자리 잡고 있던 다형제 집에서 다수의 무능한 가족들을 책임지고 꿋꿋하고 독하게 살아온 영리한 사람이다. 엄마가 20대 중반 어린 나이에 시집을 와 고생하며 이루어냈던걸 생각하면 동년배 때의 나는 정말 코흘리개와 다름없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는 지금도 생존에는 강한 사람이다.


어릴 때 돈이 없어 전기세를 못내 한 겨울에 언니가 동상에 걸렸을 때도 엄마는 혼자 눈물을 삭히며 우리를 어떻게든 키워냈어야 했다. 엄마는 지금도 술만 마시면 그 얘기를 하며 운다. (평소에 언니한테 사랑한다는 말이나 하지.) 아마 요즘으로 따지면 엄마는 공황장애는 물론이고 우울증에 PTSD도 여러 번 걸렸을 거다.


나는 그런 어려움들은 홀로 어떻게든 이겨내는 그 큰 마음을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이 생각이 없는 나에게 주변에서 으레 하는 “낳으면 다 키우게 되어있다”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결국에 자식은 부모를 갈아내고 깎아서 그 진액으로 기생하며 자라는 존재들이다.




외국으로 대학을 편입해 이사를 갔을 때,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던 좁은 집에서 이사 일주일 만에 쥐와 바퀴벌레가 나왔다 도움을 요청할 곳도 없고, 그런 경험이 처음이었던 나는 밖으로 나와 건물 계단에 앉아 울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너 어릴 때 살던 집에서 쥐랑 바퀴벌레 많이 나왔는데, 깔깔” 하면서 웃었다.


순간 눈물이 쏙 들어갔다. 아, 무슨 일을 겪으면 “엄마야” 소리가 먼저 나오는 여느 한국 사람처럼 난 또 엄마가 어떤 성격의 사람인 줄 순간 잊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또 마음이 약해져 전화를 했구나.

하긴, 이역만리 떨어져 있는 사람한테 전화를 해서 무슨 도움을 받겠다고. 내가 너무 바보같이 느껴졌다.


엄마는 그렇게 힘든 일들을 겪어내며 다른 이의 감정에는 깊이 공감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힘든 일이 있어도 이해받지 못하는, 아니 가까이 있을 때도 감정적으로 공감을 못 받았던 경험들을 바탕으로 점점 더 부모에게 감정적으로 기대지 않고 터놓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엄마에게 물은 적이 있다.왜 사랑한다는 말을 못 하냐고.

엄마는 자라면서 그런 표현을 못 받고 못 듣고 자라서 그렇다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가 못 들고 자랐다는 이유로 노력하지 않아서 언니와 나도 그런 말을 못 하는 사람으로 컸다고.

그러니 왜 우리에게 사랑 표현 안 하냐고, 노력 안 한다는 소리는 하면 안 되는 거라고.

엄마는 그날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마, 엄마는 아빠한테서도 평생 사랑한다는 말을 못 들어봤을 거다.




나이를 먹고 나서는 엄마의 사랑이 김치로 발현된다는 걸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냥 감사해하고, 거기까지만 받아들이면 된다. 엄마가 견뎌온 힘든 세월에 토 다는 건 사치다.


그리고 내가 나이를 먹어가며 직접 김치와 반찬, 더 다양한 요리들을 할 수 있게 된 이후로는 괜찮다고 하는데도 음식을 갖다 주는 엄마의 사랑이 점점 희미하고 무뎌지게 느껴졌다. 반면에 또 엄마는 그걸로라도 당신의 입지를 표현해야만 하는 사람처럼 끊임없이 음식을 해다 날랐다. 그걸 안 하면 자신이 우리에게서 잊혀질 것 마냥.




사랑은 입 밖으로 나와서 상대에게 오롯이 전달이 되어야만 그 말이 진심이 된다고 생각한다.

말을 안 해도 알겠지, 공기 어딘가에 떠다니는 알 것 같은 마음 따위 같은 건 알게 뭐야,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런 것에는 아직 마음을 굳게 걸어 잠그고 괜히 못되게 먹게 된다.


아마도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도 나는 “우리 딸 사랑한다”라는 말을 못 들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엄마의 감정에 대한 확인 욕구를 버리기로 했다. 어떠면 또 이것도 하나의 인정 욕구일지도 모른다.


그냥 누구의 인정보다는, 내가 나를 인정해 주는 어른으로 배우고 성장하자 마음을 바꿔가는 중이다.

나부터 나를 사랑하자, 안아주자, 고생했다 해주자.그것도 어른이 되는 하나의 과정이다.


그러고 나면, 엄마한테는 언젠가 고생했다, 사랑했다 말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그런 말을 꼭 할 수 있는 조금은 덜 못난 어른이 되어야지 하고 노력하는 요즘이다.


Firefly_Korean mom aged as late 60's smiling with bob hair in dark brown color. 9528.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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