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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O로부터 “스크럼”이라는 단어를 들은 날부터 나는 애자일, 스크럼, 칸반 등 여러 개념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솔직히 당시 느낌은 반반이었다. '이걸 도입한다고 정말 상황이 나아질까?' 하는 의문이 있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방법론을 시도해보는 것에 대한 설렘도 느껴졌다.
사실, 나는 새롭고 낯선 것에 두려움이나 거부감보다는 도전의식과 기대감이 먼저 생기는 성격이다. 이것이 나만의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약간 자기 어필이지만, 사실이라 어쩔 수 없다.)
공부를 하던 중, CTO와 개발 리더와 함께 스크럼을 더 깊이 이해하고 직접 적용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개념이 확실히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의 첫 시도는 생각보다 어려웠다. 스크럼은 주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이벤트들을 실행하며 시장 상황에 빠르게 대응하는 게 핵심인데, 초반에는 기간과 업무를 미리 정해놓고 단순히 이벤트에 맞추는 방식으로 운영되다 보니, 결국 워터폴 방식과 다를 바 없는 “스크럼형 워터폴”이 되고 말았다.
CTO는 이 상태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스크럼 마스터 교육을 받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무려 1인당 300만 원에 달하는 고가의 교육을 회사 지원으로 받을 수 있게 해주었다. 이 교육은 3일 동안 스크럼 코치 자격을 가진 전문가가 진행하는 과정이었고, 강의 후에는 코치가 합격자를 선발해 스크럼 마스터 자격증 취득 과정으로 이어졌다.
나는 일본에서 일본어로 진행되는 교육에 참여했다. 교육을 맡은 코치는 스크럼 창시자 중 한 명의 1세대 제자였고, 첫 과제로 “스크럼 마스터 교육을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까?”라는 주제를 주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방법을 정하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었지만, 나는 일본어에 대한 자신감 부족도 있었고, 누군가 먼저 나서주길 기다리며 조용히 있었다.
그러던 중 한 교육생이 제안하자 코치는 그 이유와 제안의 장단점을 물었다. 교육생은 답을 정확히 하지 못해 제안이 취소되었다. 우물쭈물하던 중 또 다른 교육생이 “모여서 함께 정하자”고 하자 다들 동의했지만, 코치는 또 한 번 질문을 던졌다. “모두 동의한 거냐?” 한 교육생이 “나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따랐다”고 하며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스크럼의 기본 원칙인 100% 전원의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코치는 그 교육생에게 “왜 참여했는가? 그 행동의 장단점은 무엇인가?”라고 물었고, 우리는 답을 내지 못한 채 같은 자리에 머물렀다.
그렇게 혼란 속에서 수업은 이어졌고, 3일째가 되어서야 겨우 교육을 마쳤다. 교육생 30명이 모였지만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끝났다. 지금 돌이켜보면, 워터폴 사고방식에서 애자일 사고방식으로 전환하기 위한 일종의 ‘정신 개조’ 과정이었지만, 3일이라는 시간이 너무 짧았던 것 같다.
교육 후 일주일쯤 지나, CTO와 개발 리더는 합격 여부에 대한 추가 피드백을 요청하는 메일을 받았지만, 나에게는 아무 메일도 오지 않았다. 떨어진 것이었다. 원인을 알아보니, 회사 메일로 접수했지만 마지막 날 내 개인 메일 주소를 기입한 탓에 결과가 오지 않았던 것이다. 교육 중 코치가 여러 번 “신청 메일과 동일한 주소를 적으라”고 했지만, 그 부분을 놓쳤다. 회사에서도 이 말을 전하자 다들 “그런 바보 같은 일이 어디 있어?”라며 웃었지만, 나는 그 바보 같은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결국 300만 원의 교육비는 날아갔고, 나는 사비를 들여 재교육을 받고 스크럼 마스터 자격증을 취득했다. (다행히 같은 해에 재신청할 때 반값으로 등록할 수 있었다.)
스크럼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정독한 것은 바로 스크럼 가이드였다. 스크럼 가이드 링크 스크럼 가이드는 기본적인 설명에 충실했지만, 그 내용만으로 완전한 스크럼을 이해하기에는 어려웠다. 가이드 자체가 기초서 수준이고, 같은 단어라도 이해 수준에 따라 해석의 폭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회사의 스크럼 도입 첫날이 찾아왔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을 간과했다. 스크럼을 하려면 팀원들의 100% 동의가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팀원의 동의를 얻지 못한 채 진행한 것이 문제였다. 초기에는 별 문제 없었지만, 나중에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이 점이 발목을 잡았다.
반복 주기 설정에서도 논의가 필요했다. 우리는 1주, 2주, 4주 중 고민하다 최종적으로 2주를 택했다. 1주는 너무 짧고, 4주는 긴 터라 2주가 가장 적절한 선택이었다. 또한, 1주 스프린트는 회의에 소요되는 시간이 많아 실제 업무 시간이 적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스크럼 초반은 매우 힘들었다. 나는 스크럼 마스터로서 PO가 준비한 백로그를 관리하며, 각 업무에 명확한 조건과 목표를 설정하도록 도왔다. PO는 팀이 진행할 업무를 정리하고 가치를 부여해야 했고, 나는 이벤트와 규칙이 지켜지도록 관리하며, 팀의 속도(velocity)를 측정하고 이를 향상시키는 것 또한 내 역할이었다. 문제나 이슈가 발생할 때 즉각 해결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였다.
스크럼 마스터는 팀의 구체적 업무에 참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 있다. 하지만 이를 이해시키고, 스크럼 마스터가 팀을 관리하면서 ‘일을 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바꾸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이 과정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면 스크럼 마스터 업무와 개발 업무를 병행하는 이른바 ‘지옥’을 맛보게 되는데, 나는 그 지옥을 직접 경험했다. (웃음)
첫 주 월요일에 플래닝을 시작했지만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각 업무의 완료 시점과 난이도, 포인트를 정하기 위한 분석이 충분치 않아, 순전히 감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첫 스프린트는 그렇게 완벽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스프린트 마지막 날 리뷰에서는 잘된 부분과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회고를 통해 개선할 점을 논의하고, 다음 스프린트에서는 더 나은 결과를 목표로 하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6개월 동안 스크럼 방식을 유지했고, 팀의 속도와 성과도 점차 향상되었다. 업무의 투명성과 목표 명확성을 높이며 이해관계자들에게도 업무의 진척 상황을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스크럼을 통해 변화하고 성장하는 팀을 보며, 나 또한 많은 배움을 얻었다.
다음 글에서는 실제로 우리가 스크럼을 적용한 방식과 그 과정에서 배운 교훈들을 하나씩 자세히 이야기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