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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Sep 17. 2018

장수를 욕망하게 하는 무대

포르테 디 콰트로 콘서트 명작,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018.09.16

  오래 살고 싶어 졌다. ('오래 산다는 것'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다지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는데, 아름다운 명작들에 홀리다 보니 없던 욕망이 생겼다. 물론 나도 생명체가 지닌 본능적인 생존 욕구는 있다. 아름다움을 찾아다닐 자신이 없어지면 내 생도 끝난 거라 생각했을 뿐.  



Overture


  2.5집 미니 음반을 갖고 돌아온 『포르테 디 콰트로』는 여전히 유쾌하고 시원시원했다. 주문한 음반이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 15일 하루 종일 듣고, 16일까지 듣다가 공연장으로 갔다. 물론 그전에 음원으로도 들었다. 비가 내려 을씨년스러웠지만 한 달 만에 포디콰 완전체를 본다는 마음에 설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들이 무대에  올랐다.


  명작 콘셉트에 맞게, 무대 뒷배경에 액자틀로 장식한 영상에선 네 남자의 얼굴이 끊임없이 명멸했다. 얼굴이 사라져도 슈트발을 뽐내며 무대에 우뚝 서있는 그들을 보니 흐뭇했다. 이런 바람직한 남자들 같으니라고. 솔직히 노래에, 음악에 반했는데 날이 갈수록 그들의 자태에 홀린다. 그러다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 이번에도 나의 뇌는 얼마나 활성화됐는지, 심장이 쫄깃해졌다 풀어지길 얼마나 반복했는지, 재수 삼수까지 해서 세 번의 수능시험을 세 시간 동안 한꺼번에 본 기분이다.  



Fly


  무엇을 기대해도 늘 기대 이상인 고퀄의 화음과, 그와 반대급부인 아무 말 향연은 끊임없는 변주곡처럼 대극장에 흘러넘쳤다. 태진 군 말대로, 그들의 평상시 모습과 노래할 때 모습의 차이가 크다(?) 보니 즐거운 감동을 받는데, 훈정이 형은 그건 감동을 뛰어넘는 '그 어떤 것'이라 한다.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포디콰가 하는 '아무 말'은 그냥 아무 말이 아니다. 그들 공연의 시그니처이자 일종의 콘셉트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한다. '아무 말' 없는 포디콰 콘서트는 이제 상상할 수 없다. 점잖게 노래만 한다면 솔직히 매력이 반감될 것이다. 음악만 들을 거면 이어폰 끼고 볼륨 업시켜 듣지 뭐하러 공연장에 가겠는가. '아무 말'과 노래의 낙차가 클수록, 그들이 거리낌 없이 아무 말을 마구 투척할수록, 묘한 전율과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그들이 언제나 이 '갭의 미학'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미니 앨범의  「Fly」로 포문을 열더니 곧바로 아무 말로 직진한 것까진 좋았는데, 왠지 이번 공연의 아무 말은 전체적으로 체계가 잡힌 느낌이다. 대기실에서 짜고 연습하고 나온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정제된 멘트가 더러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그들의 아무 말이 진화한 것인가?) 체계 잡힌 멘트도 좋지만, 더 발랄하게 막 날린 생생한 아무 말을 듣고 싶다.

  "아무 말은 현수가 알아서 하겠지." 훈정이 형 말대로 이번에도 현수 군은 가열차게 아무 말을 투척했다. 중간에 셋이서만 얘기한다고 살짝 삐친 척도 하면서. 역시 '얼굴의 신'은 이번에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팬클럽 배너의 위용. 이 깜찍한 자태에 진심 빵 터졌다!


Ariel   


  벼리 군이 인어공주를 생각하며 만든 '아리엘'은 탱고의 선율이 매우 인상적이다. 약간 슬픈 멜로디인데, 곡을 설명하는 벼리군 표정은 늘 그랬듯이 덤덤하다. 설명을 안 들었다면 가사만 보고 엉뚱한 상상을 할 뻔했다. (여자 친구가 벼리군 버리고 물거품처럼 사라졌나? 뭐 이런.. ㅎㅎ) 벼리군 음성은 참 맑고 청량하다. 태진 군이 '기름진 베이스'라는 건 수긍하지만, 벼리 군은 (개인적으로) 기름진 테너가 아닌 맑고 청량한 테너라 생각한다. 고음을 낼 때 목소리는 폭포수가 쏟아지는 듯 시원하고 힘차다. 솔로로 부른 안드레아 보첼리 노래는 음원으로 나왔으면 한다. 벼리군 솔로 음반도 기다리는데, 좋은 소식 있길 바란다.



언제나


  태진 군은 (내가 잘못 안 것일 수도 있지만) 감기에 걸린 듯 약간 코맹맹이 소리가 나서 걱정했는데, 노래는 또 기가 막히게 한다. 감기 걸렸는데도 그렇게 노래한 것이라면, 그는 음원을 우습게 정복하는 음원 깡패가 아닌 '음원 AI'다. 그가 프로듀싱한 재즈풍 노래 '언제나'는 기분 좋게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한다. 앞으로 콘서트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할 것 같은 곡이다.  

  기름진 베이스 태진 군은 이번에도 객석을 가장 많이 쳐다봤다. 포디콰 콘서트에 몇 번 가보니 눈에 띄는 게 있는데, 태진 군은 언제나 왼손으로 마이크를 잡는다는 것과 객석(특히 2,3층)에 시선을 많이 준다는 것이다. 객석 수군거림에 대한 리액션도 항상 태진 군이 먼저, 제일 활발하게 한다. 이 젠틀한 남자는 넷 중 유일하게 '객석 성애자'다.


대박... 앙증맞은 두 남자 자태에 이성을 잃을 뻔 했다.


La Preghiera(기도)


  네 사람 모두 영혼을 다해 노래하고 세련된 무대 매너를 보여줬지만, 특히 현수 군은 온몸의 영혼을 끌어모아 노래하는 듯했다. 그가 솔로로 부른 「마중」을 비롯해서, 1집 수록곡 「Stella Lontana」, 「Senza Parole」, 「Fantasma D'Amore」는 정말 내일이 없는 것처럼 불러서 저러다 성대에 불붙는 거 아닌가 걱정될 정도였다.  「얼음꽃」, 「신기루」, 「Ave Maria」도 심장을 떼었다 붙여놓은 듯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특히 신기루는 (몹시 가혹한 상상이지만) 포디콰 노래 중 딱 한 곡만 들어야 한다면 내가 눈물을 머금고 선택할 최애곡인데, 함춘호 선생님의 기타 반주에만 의지해서 들려줬다. 작년 12월 31일 클라시카 성남 콘서트 이후 간만에 듣는 라이브다. 1월 앵콜콘에서 이 노래만 쏙 빠져 얼마나 아쉬웠는지 모른다. 노래하는 동안 무대에 서 있는 네 남자가 신기루처럼 느껴졌다. 홀로그램처럼, 눈에 보이지만 잡히지 않는 그들이 내겐 언제나 신기루다. 저러다 사라지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아득하게 보이기까지 한다. 아~~~~ (feat. 깊은 한숨)    


  포근하고 달달한 테너 현수 군은 아무 말을 할 때는 천진하지만 노래할 땐 하이드 같은 마성을 드러내는 이중적인(?) 남자다. 스위트가이와 마성의 남자를 오가는 이 분을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을까. 프라하에서도 아침으로 토스트를 두 개씩이나 드시고, 한식을 찾아 헤매다 못 먹고 귀국하자마자 신라면을 드셨다니. (신라면 100개 사주고 싶다!) 잘 먹고 잘 웃는 이 남자, 정말 매력적이다! 얼마나 귀염 열매를 많이 드신 건지, 이 분이 공연 때마다 배출하는 발랄한 '아무 말'은 나를 가장 많이 웃게 한다.     


  개인적으로 미니 앨범 중 「La Preghiera (기도)」가 가장 좋다. 사실 곡마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사랑스러움과 감동이 있다. 한 곡을 고른다는 게, 손가락 다섯 개 중 잘라도 될 거 하나를 고르는 것처럼 무모한 짓이지만, 그래도 굳이 하나만 고른다면 이 곡이다. 밝고 명랑한 곡도 아름답지만, 약간 장중하고 애잔한 멜로디가 폐부에 먼저 와 닿는다. 게다가 가슴을 흔드는 가사까지. 어떤 손이 수놓은 아름다운 글자들인지,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속 파문이 커져간다.



Wish


  눈 앞에서 본 살아있는 Masterpiece들은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고 찬란했다. 앞으로 오래오래 그들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하던 생각이지만 좀 더 강렬해졌다. 비용과 시간이 드는 이 짜릿한 조건 만남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설레고 기쁜 자본주의적 사랑이다.


  벼리 군이 전세대출 다 갚고 집 장만했다는 얘기를 듣고 싶고, 현수 군이 둘째라서 서럽다고 앙탈 부리는 걸 10년 후에도 보고 싶다. 20년쯤 후엔, 태진 군이 못 오게 막고 있다는 (해외에 계신다는) 그 부장님도 보고 싶다. 언젠가 훈정이 형 아들 결혼식에 포디콰가 축가 불렀다는 얘기도 콘서트에서 전해주길 바란다. 세월이 흘러, 세 시간 내내 서있지 못해 앉아서 노래해도 좋으니 20년, 30년, 40년 후까지 포디콰가 완전체로 함께하길, '모든 순간들이 더욱더 간절하기를 모든 순간들이 더욱더 감사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한다.


  

아름답고 바람직한 네 남자 손태진 이벼리 고훈정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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