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이스 Oct 14. 2018

정말 그것이 알고 싶다!

영화 <세 번째 살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2017)

▶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브랜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아무도 모른다>(2004년)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년)로 내게 익숙한 감독이다. 아직 못 본 <바다 마을 다이어리>와 <어느 가족>도 조만간 볼 것이다. 그가 꾸준히 제기하는 '가족'과 '죽음'이라는 화두는 보편적인 주제이지만, 문제를 터뜨리고 보여주는 방식은 결코 보편적이지 않다. 문제는 투척하되 절대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아니 답이 아예 없다. 문제 자체가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흡수하는 블랙홀 같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보면 '그래서 어쩌라고..' 싶은 게 답답하고 약간 지루할 수 있는데, 감독 이름을 믿고 조금만 집중하면 거대한 함정에 빠진 것처럼 충격받을 수도 있다.


  <세 번째 살인>은 법정물이다. 일본 국민 배우 둘이 함께 출연한 작품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안성기와 이병헌이 투톱으로 출연한 영화인 셈이다. 배우들 이름값에 걸맞게 작품의 무게 또한 만만치 않다.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와 미스미(야쿠쇼 코지)


▶ 진실을 은폐하는 피의자


  자신을 해고한 공장 사장을 살해해 지갑을 훔친 후 불에 태운 미스미(야쿠쇼 코지)는 범행 일체를 자백하고 수감된다. 그의 변호를 맡은 시게모리(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승률이 높은 이성적이고 냉정한 변호사다. 일단 시작은 단순 명쾌하다. 시게모리는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보다 감형에 유리한 진술을 피의자에게 주입하려 하는데, 시종일관 횡설수설하는 미스미 때문에 (사형만은 피하려는) 변론에 차질이 생긴다. 그는 미스미를 접견할수록 애초에 관심 없었던 이 사건의 진실을 궁금해하며 파고든다.   


살인을 자백한 미스미


  시게모리는 미스미 주변을 탐문하던 중, 살해된 피해자(공장 사장)의 딸 사키에와 미스미가 가까웠고, 그가 범행 전 월세를 미리 내고, 기르던 새들을 죽여 묻어주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원한에 의한 우발적 살인이 아닌 계획된 범죄는 형이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석연치 않은 건, 범행 현장처럼 새들의 무덤도 십자가 모양이라는 점이다. 미스미는 누군가를 심판하는 절대자 코스프레를 한 것일까? 시게모리는 미스미의 고향 홋카이도에 가서 그와 30여 년 전에 연락이 끊긴 딸을 수소문하는데 만나지 못한다. 그런데 그의 딸이 피해자의 딸 사키에와 마찬가지로 한쪽 다리를 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범행 현장을 수사중인 시게모리


  그곳은 시게모리의 고향이기도 하다. 판사인 시게모리 아버지는 30년 전 미스미의 첫 번째 살인 사건을 재판했었다. 그는 그때 사형을 선고했으면 30년 후에 두 번째 살인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며 후회한다. 살인자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며, 마치 자신이 한 인간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절대자라도 되는 듯한 태도다. 이에 반발하는 시게모리 또한 다르지 않다. 변호사이지만 그 역시 사형을 무기징역으로, 즉 죽음을 삶으로 바꾸어 단죄하는 역할을 자처한다. 자신이 그럴 힘과 권리가 있다는 듯.


피해자의 딸 사키에


  피해자 딸 사키에는 시게모리에게, 아버지가 지속적으로 자신을 성폭행했는데 엄마는 이를 묵인했고, 평소 가까웠던 미스미가 아버지를 죽인 거라 진술한다. 미스미가 절름발이 소녀를 친딸처럼 여겼을 거란 추측이 더해지며, 시게모리는 '사키에 양의 살의를 당신(미스미)이 헤아린 거냐'라고 추궁하지만 미스미는 애가 거짓말한 거라며 강력하게 부인한다. 그러면서 이미 자백한 살인을 번복, 혐의를 부인한다. 재판에 혼선이 생기고 시게모리는 물론 판사 측과 검사 측까지 당황한다.  



▶ 과연 진실은?


  시게모리는 변호사란 업에 충실하며 피의자 형량을 줄이는데만 관심 있었다. 그런 그가 진실을 궁금해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진실을 숨기는 피의자를 만나면서다. 접견실에서 미스미는 사람의 말을 믿지 않지만, 맞닿은 손바닥의 체온은 믿는다며 시게모리의 손바닥 체온을 느낀다. 인간의 말은 진실성을 잃은 지 오래다. 특히 진실을 가리는 법정에선 그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이해관계와 형량에 맞게 조작된 (진실이라 믿고 싶은) 사건의 실체만 밝혀질 뿐이다. 미스미를 기소한 검사는 용의자를 변호하는 시게모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범인이 죄와 마주하는 걸 방해하는 겁니다." 사실 그게 변호사의 임무 아닌가. 그렇게 말하는 검사는 범행의 진실을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는지 되묻고 싶다. 검사 또한 진실보다는 사건의 실체만 밝히고 처벌을 요구하는 게 임무이니, 진실에 관심 없을 법도 하다. 처음과 달리 사건의 진실을 추궁하는 시게모리에게 미스미는 진짜 범행 동기가 궁금하냐고 묻는다. 진실을 안다는 것은 때론 두려움과 맞설 용기를 필요로 한다. 은폐된 진실은 (알려지지 않는 게 나은) 꺼림칙함을 내포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쟁점이 된 시게모리, 사키에, 미스미 세 사람의 진실 공방


  시게모리의 십 대 딸은 별거 중인 아빠 앞에서 거짓으로 눈물을 만들어 보인다. 아빠가 필요하고 보고 싶다는 진심을, 문제 생기면 도와주러 와 줄 거냐고 돌려서 묻는다. 미스미의 살인에 결정적 동기가 될 수 있는 진술을 한 사키에도 자신이 다리를 저는 게 지붕에서 떨어져서 그렇다지만, 이웃은 선천적으로 그랬다고 말한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지, 어떤 게 진실인지 아무도 모른다. 이젠 사키에가 아버지에게 성폭행당한 것이 사실인지 조차 의심스럽다. 성폭행당했다는 사실이 이 사건과 직접 연관이 있는지, 그렇다면 왜 그런 사실은 밝혀지지 않는 것인지, 모든 것이 미궁 속에 있다. 진실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탁해지기라도 하는 듯, 사람들은 감추고 거짓으로 위장할수록 진실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 세 번째 살인


  미스미는 법정에서 혐의를 부인한다. 미스미의 주장을 믿기로 한 시게모리는 사키에의 (아버지에게 성폭행당했다는) 증언을 막는다. 그녀가 미스미의 강력한 살해 동기를 증언하면, 미스미의 (살인하지 않았다는) 주장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미스미는 정말 살인을 하지 않아 자백을 번복한 것일까. 아니면 이 모든 게 어린 소녀가 법정에서 친부에게 성폭행당했다는 괴로운 증언을 하지 않게 하려는 그의 빅픽처일까. 사실 이 살인 범죄에 목격자는 없다. 범인의 자백만이 기소할 근거였다. 그런 그가 이제 와서 번복하니, 이 영화 속 사법 시스템 종사자뿐 아니라, 보는 나도 기가 막혔다.

  
  결국 미스미는 사형 선고를 받는다. 공판에서 그가 범죄를 부인한 이유의 합리성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살해한 사장을 죽어 마땅한 인간이라며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인간도 있다고 말한다. 사장만이 아니라 (30년 전에 사람을 죽인) 자기 자신을 향해하는 말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그가 비참한 인생을 구원받고 싶었는지 모르겠지만, 불완전한 인간의 사법 제도를 통해 자신을 단죄했다는 것은 찜찜하다. 재판이 끝난 후 사키에가 한 말처럼, 누굴 심판하느냐를 누가 정하는 건지 의문만 남는다.


  진실을 따라가라고 화두를 던져놓고 추궁하지만, 끝내 진실을 알려주지 않은 채 끝난 이 영화는 관객을 구원하지도 심판하지도 않은 채 모든 걸 의심하게만 한다.


누가 누굴 심판하고 구원하는가


  미스미가 사장을 죽인 건 맞는지, 죽였다면 왜 죽였는지, 우리가 범행 동기라고 믿고 싶은 그 이유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그가 안 죽였다면 대체 누가 죽인 것인지, 그는 왜 자백했다 번복한 것인지, 그 이유 또한 우리가 짐작하는 게 맞는 것인지, 영화가 끝난 지금 모든 것이 의심스럽고 아무것도 모르겠다. 정말 그것이 알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타는 탄생하지만 소멸하기도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