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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Oct 17. 2018

국산 마녀는 무엇을 위해 싸우나

영화 <마녀> (2018)

  영화 <마녀>의 예고편을 봤을 때 몇 년 전 나왔다 금세 사라진 미국 드라마가 떠올랐다.

 


  2014년, 시즌1로 끝난 미드 <BELIEVE>는 어린 소녀가 자신이 지닌 초능력(염력, 예지력, 공중 부양 등)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로드 드라마다. 1,2회만 봤기에 전체 내용은 모르지만, 날 때부터 신비한 능력을 지닌 소녀를 (당연히) 그녀의 능력을 독점적으로 이용하려는 동기가 불순하고 미심쩍은 기업에서 추적한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탈옥한 사형수가 애를 맡아 추적자들을 피해 다니며 맞닥뜨리는 사건이 매회 펼쳐진다.


소녀와 탈옥수


  아이의 가족은 없고, 보호자가 된 탈옥수는 사실 아이의 친아빠지만 둘은 생면부지 남이나 마찬가지다. 대신 그녀를 보호하려는 또 다른 무정부 기관이 이 방랑자 커플을 백업한다. 도망 다니는 소녀는 우연히 개입하거나 맞닥뜨리게 되는 사건에 자신의 능력을 사용한다. 소극적이긴 하지만 세상의 질서와 평화를 위해 초능력을 발휘한다. 애초에 아이에게 가족이나 친구를 붙여주지 않은 것은 비상한 능력을 좀 더 광범위하게 세상을 위해 쓰게 하려는 의도라 생각한다.   


  국산 마녀(김다미)는 타고난 초능력자가 아닌 만들어진 아이다. 실험실에서 자칭 뇌 연구의 권위자 '닥터 백(조민수)'에 의해 뇌를 통해 초능력 인자를 이식받아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괴물이 됐다. 사실 이 영화의 타이틀 롤은 아이가 아니라 닥터 백이다. 그녀야 말로 딱 봐도 마녀 그 자체로, 엄청난 포스를 지녔다.


  의문의 사고가 일어난 시설에서 홀로 탈출한 후 모든 기억을 잃은(혹은 잃은 척하는) 아이는 자신을 거두어준 소 농장을 하는 노부부의 양녀가 된다. 10년 후, 밝고 씩씩한 여고생 자윤으로 사는 아이는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상금이 걸린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그런데 방송이 나간 후부터 의문의 인물들이 그녀 앞에 나타난다. 자윤의 주변을 맴돌며 날카롭게 지켜보는 귀공자(최우식)와 닥터 백의 명령으로 자윤을 찾는 미스터 최(박희순)의 하수인들까지.


'마녀'를 만든 닥터 백


  자윤은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극심한 두통과 어깨에 새겨진 알 수 없는 표식을 의식하지만,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자신의 과거에 대해 아는 척하는 사람들 때문에 불안해한다. 어느 날 집까지 쳐들어와 가족과 친구를 위협하는 귀공자 일행과 맞닥뜨린 소녀는 자신의 능력을 각성, 드디어 마녀의 본성을 드러낸다.


자윤을 쫓는 귀공자


  예상보다 잔인하고 영리한 자윤은 자신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파괴한다. 대체 그들은 왜 그녀를 괴물로 만들었고, (10년 동안 잠잠했는데) 왜 이제 와서 없애려 하는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니키타 같은 킬러로 만들 계획이었는데 애가 도망가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한 건가? 심지어 닥터 백은 그녀의 뇌가 극도로 활성화되어 폭발해 죽었을 거라 단정하고 있었다. 오디션 방송에서 자윤을 알아보기 전까진.


마녀를 없애려는 미스터 최


  위험하니 무조건 없애야 한다는 명분으로 모든 이들이 자윤을 쫓는다. 결국 언제 드러날지 모를 마녀의 잠재적 능력을 없애겠다며 자윤을 불러들였다 화를 자초한다. (사실 그들이 불러들인 것도 아니다. 자윤이 자신을 찾아오게 유도한 것이지.)


  마녀가 자신을 해치려는 무리를 하나씩 처단하는 광경은 통쾌하다. 그녀는 그 많은 피의 대가로 얻은 두통을 해결할 약을 알츠하이머로 투병 중인 양엄마에게 양보한다. 아마 뇌에 직방으로 작용해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약인 것 같다. 마녀는 평범한 아이로 살았던 지난 십 년에 대한 보은을 이런 식으로 철저하게 한다.


결국 마녀의 손에 처단될 사람들


  사실 그녀가 마녀로 각성하고, 위험한 실험실 소굴에 제 발로 들어가는 것은 가족과 친구 때문이다. 극심한 두통을 없애줄 해결책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죽어가는 엄마와 무너져가는 농장을 위한 돌파구가 절실했을 것이다. 자윤은 자신의 어마어마한 능력을 오로지 가족을 위해 쓴다. 나쁘지 않지만 솔직히 아깝다. 그녀의 투쟁과 전투가 가치 없다는 게 아니라, 그런 능력이면 좀 더 세상을 위해 쓸 수 있을 텐데 아쉽다. 대단히 거대한 사회 악을 무찌르라는 게 아니라, 주변과 일상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학교 폭력이나 데이트 폭력, 아동 학대범을 처단하는 일에 능력을 발휘했다면 더 통쾌했을 것이다. 내가 국내산 마녀에게 어벤저스의 '블랙 위도우'를 기대하는 건가?     


친구 명희와 자윤


  자윤의 친구 명희 아빠는 경찰이다. 한적한 시골마을의 경찰은 무능력하게 보인다. 굳이 능력을 발휘할 사건이 없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지만 처단할 수밖에 없는 개별적인 복수라도 괜찮으니, 이 영화의 속편에선 자윤이 좀 더 광범위하게 능력을 발휘하는 걸 보고 싶다. 더불어 친구 명희 아빠도 경찰로 이웃집에서 장기만 두지 말고 뭔가 경찰다운 일을 했으면 한다. 그가 미성년자 자윤이 무면허 운전하는 걸 눈감아 줄 정도로 아량을 지닌 건 알지만, 너무 하는 일 없이 놀고먹는 것 같다. 명색이 경찰인데. 경찰인 명희 아빠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세상의 어두운 구석에 마녀가 나타나면 분명 뭔가 달라지고 누군가는 좀 더 편안하게 숨을 쉬게 되지 않을까. 한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캐릭터 김다미 양에게 내가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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