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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Oct 10. 2018

스타는 탄생하지만 소멸하기도 한다!

영화 <A Star is Born> (2018)

* 브런치 무비 패스 시사회에서 본 영화입니다.


 먼저 고백해야겠다. 이 영화가 1937년 영화 <스타 탄생>을 1954년, 1976년에 이어 세 번째 리메이크 한 영화라는 걸 모르고 봤다. 들어는 봤어도 본 적 없는 영화가 세 번이나 리메이크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스타 탄생의 전형적인 스토리는 그 전형 때문에 예상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치명적이고 탄탄하다. 인생의 빛과 어둠, 사랑의 탄생과 소멸은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한 신예와 재능을 낭비하는 스타의 갭만큼 크나큰 낙차로 파장을 일으킨다.  



함께 노래를 만드는 잭슨과 앨리

 

 자신의 가치를 모르는 웨이트리스 앨리(레이디 가가 Lady GaGa)는 우연히 인기 가수 잭슨 메인(브래들리 쿠퍼 Bradley Cooper)을 만나 꽃길만 걷는 일약 스타가 된다. 그녀가 잭슨을 처음 만났을 때 바에서 부른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은 잭슨의 귀엔 자신을 향한 갈망과 애원으로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알아보고 사랑하고 재능을 만개시킨 잭슨은 안타깝게도 알코올 중독에 청각장애까지 있다. 게다가 불우한 어린 시절에 대한 상처는 극복 못할 트라우마가 되어 그를 점점 파괴한다. 승승장구하는 앨리는 그와 결혼까지 하지만, 술에 중독되어 마비되어 가는 잭슨의 일상은 둘 사이의 균열을 만든다. 그는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밀려나는 꼴을 당하지만, 앨리는 잭슨의 품을 떠나 음악 장르까지 전향하며 팝스타로 우뚝 솟는다. 앨리의 음악이 상업적으로 변했다고 질책하는 잭슨과 자신에 대한 질투 때문에 잭슨이 변했다고 원망하는 앨리. 두 사람의 갈등은 깊어가고, 잭슨의 알코올 중독과 재활 끝엔 완성되지 못한 사랑과 자책, 그리고 그녀를 위한 곡만 남는다.   


앨리의 라이브 무대를 지켜보는 잭슨


  레이디 가가 팬들을 동원해 콘서트장에서 직접 노래하며 촬영해서인지, 이 영화는 브레들리 쿠퍼와 레이디 가가의 콘서트장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생생한 라이브 현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기괴한 분장과 퍼포먼스를 뺀 레이디 가가의 민낯은 그녀 말대로 코가 좀 클 뿐 생각보다 청순(?)하고 예뻐서 놀랍다. 게다 연기까지 웬만한 배우 뺨치게 잘 하니, 이건 뭐 신에게 재능을 패키지로 받은 피조물인가 싶다. 더 놀라운 건 브레들리 쿠퍼의 라이브 실력이다. 이 남자까지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연기와 노래 둘 중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다. 그는 이 영화로 감독 데뷔까지 했으니, 이건 뭐 누가누가 더 재능이 많나 내기라도 하는 것 같다.  


사랑만큼 지독한 갈등


  스크린에서 잭슨이 마시는 알코올만큼이나 빈번하고 지독하게 흐르는 것이 그들의 노래다. 사실 영화 보는 내내 두 사람의 라이브로 듣는 멜로디와 자막으로 흐르는 가사는 미처 분해시키기도 전에 주입되는 알코올처럼 취하게 한다. 차가운 바람과 뜨거운 열기가 동시에 퍼지는 음악은 뭔가 세뇌하는 듯 자꾸 감정을 환기시킨다. 심지어 앨리가 SNL에 출연할 때 부르는 노래나 지극히 상업적으로 전향한 음악에서 조차 그런 열기와 에너지가 감지된다. 100% 좋다고만 할 수 없는 이 감정은, 처절하고 아름다운 결말에 가서야 진정된다.  


  엘리와 잭슨이 서로를 인정하고 평화롭게 끝까지 함께 했다면 그냥저냥 업계의 아름다운 커플로 남았을 것이다. 화합하면서도 상충하는 그들의 에너지는 하나를 하늘 위로 띄운 대신 하나는 지독하게 파괴한다. 엘리를 알기 전부터 잭슨은 이미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녀를 처음 만난 것도, 이미 만취한 상태에서 아예 피를 알코올로 바꿔버릴 기세로 간 바에서였다. 그렇지만 그가 정한 엔딩은 엘리 때문이란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그의 매니저이자 형의 말대로, 이 모든 건 그가 선택한 것이다. 음악도 사랑도 결말도.  


앨리와 잭슨의 행복한 한 때


  그들의 사랑은 지독할 정도로 파괴적이고 암울한 면이 있는데, 원래 성공과 실패가 동전의 양면 같으니 못 받아들일 것도 없다. 대중스타가 된다는 건, 화려한 앞면만큼 어둡고 깊은 뒷면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 빛과 어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화가 자꾸 리메이크되는 건, 사람들은 스타의 화려함 만큼이나 그들의 그림자에도 은근 열광하기 때문 아닐까. 좌절을 극복하고 성공한 저 높은 곳에 있는 별은, 별이 된 그 순간부터 언제 어떤 방식으로 추락할지, 누구에게 그 자리를 바통 터치할지 궁금증을 유발한다. 잭슨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 자리를 물려주고 떠난다. 이젠 엘리 차례다. 그래미 신인상을 거머쥐고, 유럽 투어의 방해물이 사라진 그녀에겐 한동안 이목이 집중될 것이다. 하늘색 드레스를 입고 잭슨을 추모하며 그가 남긴 곡을 부르는 엘리는 더없이 아름답지만 그다음엔, 잭슨만큼은 아닐지라도 그녀 또한 처절하게 내려올 일만 남았다. 높은 곳에 있을수록 떨어질 때의 속도감과 낙차는 아찔할 것이다. 스타는 가장 쉽고 직접적으로 흥망성쇠를 온몸으로 보여주며 대중을 사로잡았다 외면받는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자꾸 반복되는 '스타 탄생'은 '스타 소멸'의 다른 버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는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에 아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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