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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Nov 27. 2018

아무도 바라지 않는 기적, 환생

영화 <환생> 2002년

  15년 전에 봤던 영화를 새삼 찾아본 것은 반전이 궁금해서다. 요즘 이런 일이 잦다. 예전에 본 영화의 결말이나 반전이 생각나지 않아 밤에 잠이 안 올 때가 있다. 내가 그렇게 호기심이 충만한 사람이 아닌데도 이런 사소한 일에 날밤을 새우기도 한다. 막상 궁금증을 해결하면 맞아 그랬었지, 하며 허탈할 때가 많다.  


  일본 영화 <환생>은 배우 다케우치 유코의 청순함이 오래 잊히지 않는 영화다. 여자인 내가 봐도 그 시절 그녀는 참 단아하고 아름다웠다. 좀 나이 든 티가 나긴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다. 실제 그녀가 어떤 성격인지 모르겠지만, 강한 캐릭터를 연기해도 어쩔 수 없이 풍겨 나오는 단아하고 조신한(?) 아우라는 감출 수가 없다. 내가 그런 이미지를 가진 여자가 되고 싶진 않지만(되고 싶어도 이번 생은 글렀음), 이런 여자를 지켜보는 건 나쁘지 않다.


아오이 (다케우치 유코)


  규슈의 아소 지방에 죽은 사람들이 살아 돌아오는 믿지 못할 사건이 일어난다. 죽을 때 모습 그대로, 자신을 그리워하는 사람 앞에 홀연히 나타난 그들은 기적이자 신비 그 자체다. 사랑하는 남편, 형제, 자식의 환생은 가족들에게 놀라움과 기쁨을 야기하지만, 행정당국은 혼란에 빠진다. 죽었던 이들이 다시 돌아오는 이 기적은 대체 어떻게 이루어진 것일까.


  후생성에 근무하는 헤이타(쿠사나기 츠요시)는 자신의 고향에서 일어난 기이한 환생 현상을 조사하기 위해 온다. 그곳엔 학창 시절부터 좋아했던 아오이(다케우치 유코)가 있다. 헤이타는 절친인 슈스케와 아오이가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그녀에 대한 진심을 감추고 살아왔다. 결혼을 앞두고 슈스케가 바다에 빠져 죽자, 아오이는 그를 그리워하며 지낸다.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환생으로 마을은 들썩거리고, 그 와중에 두 사람은 다시 만난다.


다시 만난 아오이와 헤이타


  헤이타는 아오이와 함께 환생 사례들을 조사하는데, 그들이 살아 돌아온 현상에 규칙이 있음을 알게 된다.


◈ 환생의 규칙


- 산악지대에서 발생한 (과학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는) 자기장에 의해 죽은 사람들이

  살아난다. 따라서 자기장이 미치는 곳에 사체의 일부라도 있어야 환생할 수 있다.

- 죽은 사람을 간절히 지속적으로 그리워하는 이가 있어야 환생이 가능하다.

- 환생한 사람은 이 세상에 21일간 머물다 사라진다.


  21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살아있는 사람들은 (이미 죽었지만) 살아 돌아온 사람들 때문에 혼비백산하다 기뻐하며 다시 절망한다. 소중한 기억을 간직한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이 기적은 예기치 않은 갈등을 낳기도 한다. 전쟁 때 죽은 어린 자식을 평생 그리워하며 산 할머니는 백 살에 가깝다. 살아 돌아온 자식은 그녀에게 오로지 기쁨일 수 있을까? 당장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노쇄한 노인에게 아이의 존재는 기쁨보다 근심과 회한에 가깝다. 냉정하지만 현실이 그렇다.  


  남편이 죽어 힘겹게 삶을 일구어온 아내는 또다시 남편 없는 삶을 감내해야 한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남편을 아무리 그리워했어도 남편 없이 2년 동안 산 여자에겐 자신만의 삶이 있다. 그녀가 남편의 부재를 견디며 산 세월은 헛된 시간이 아니다. 아내가 남편을 그리워하는 것이, 꼭 다시 남편과 살고 싶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며칠 전 죽은 자식의 환생은 부모에겐 놓치고 싶지 않은 기적이다. 그러나 살아 돌아온 아이는,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 친구들에게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아이가 그냥 죽은 채로 있는 게 낫다는 얘기가 아니다. 죽음은 생의 엔딩이다. 완전한 소멸과 끝. 그걸 되돌린다 한들, 그 죽음을 알고 있는 세상의 기억을 모조리 지우지 않는 한, 그 소멸 자체에서  영원히 자유로울 수 없다.


이지메로 죽은 소년과 그를 살려낸 소녀


  죽은 형의 환생은 동생에게 기쁨이자 짐이 된다. 형이 없었던 시간만큼 살아온 동생에게, 늙지도 않고 죽은 모습 그대로 나타난 (어린) 형은 어떤 식으로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형이 없던 시간을 온전히 살아낸 동생에게 (형을 그리워하는 마음과는 별도로) 그런 부채를 지우는 게 합당한가. 20년 전에 죽은 젊은 아내가 살아 돌아온들, 늙어버린 남편과 정상적인 부부 생활이 가능할까. 죽은 이를 향한 간절한 그리움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들이 살아 돌아오는 순간, 그리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리얼한 삶은 멈추지 않고 계속되기 때문이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환생은 어떤가. 젊어서 돌아가셨다면 그 모습 그대로 살아 돌아온 부모에게 부모다운 아우라는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늙어 돌아가신 부모라면, 그들의 환생을 대부분의 자식들이 격하게 환영할 수 있을까. 냉정한 얘기지만, 아마 반기지 않을 것이다. 부모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다. 늙어 소멸하는 건 자연의 이치이자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질서다. 그 질서를 역행하는 삶은 후세를 위한 세상에 페가 될 수밖에 없다. 세상의 모든 부모가 그리워하는 자식들을 위해 환생한다고 상상해보면 쉽게 수긍할 수 있다. 아마, 그런 지옥이 따로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내 부모만큼은 예외로 하고 싶은 자식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대체 언제까지, 늙은 부모와 같이 늙어가며 평화롭게 살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된다. 기적이 저주가 되는 건 시간 문제 아닐까.

  다행히(?) 이 영화에선 21일이란 뜬금없는 시간을 허락하여 저주가 될 수도 있는 잔인한 현실을 피해간다.


환생 현상을 조사하는 헤이타와 아오이


  아오이는 슈스케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헤이타는 아오이에 대한 사랑 때문에, 환생의 기적을 염원한다. 하지만 그들의 절절한 소망은 끝내 기적이 되지 못한다. 대신, 또 다른 기적이 잔인한 시간 속에 이루어진다. 절박하지 않았다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 이 기적은 얼마나 유예됐을지 모른다. 아오이가 사라지기 전에 닿기를 바라며 진심을 전한 헤이타는 아마 평생 그녀를 그리워하며 살 것이다. 아무리 그리워해도 아오이는 환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에 대한 마음은, 그녀가 환생하지 않아야 영원히 헤이타에게 머물 수 있다.


  어쩌면 누군가를 평생 그리워하는 마음이 기적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보면, 사람들은 저마다 하나씩 기적을 품고 살아간다. 아니면 기적의 대상이 될 가능성을 품고 살던가. 이도 저도 아니라고 해서 낙담할 필욘 없다. 꼭 내가 기적의 화신이 되어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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