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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Nov 21. 2018

나를 복제한 인간이 필요할까?

영화 <Naver Let Me Go> 2010.

  어딘가에 나와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내가 가끔 하는 미친 상상 중 하나다. 나뿐만 아니라, 나를 포함한 이 세상의 복사본이 존재해 내가 지금 하는 상상조차 실시간으로 똑같이 하는 (또 다른) 내가 이 세상과 똑같은 (또 다른) 곳에 존재하지 않을까, 싶을 때가 있다. 물론 그럴 리 없다.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똑같은 세상이 하나 더 있어야 할 필연적 이유가 있지 않는 한, 그런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지구는 엉망진창이고 우주의 삼라만상이 내 이해 범위 밖에 있지만, 이유 없이 똑같은 복제 세상이 존재하는 물리적 낭비를 우주의 에너지가 허용할 리 없다고 본다.    


  세상은 복제할 수 없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창조주의 능력을 넘보며 생명체를 복제하려 한다. 1997년 복제양 돌리를 만들어낸 이후, 아직까지 인간을 복제했다는 소식은 없지만 난자와 정자의 수정 세포가 아닌 체세포를 복제해 인간을 만들어내려 한다는 얘긴 들은 것 같다.


클론답지 않은 클론 루스, 캐시, 토미


  〈Never Let Me Go〉는 본지 좀 된 영화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나를 보내지 마』를 원작으로 하는데, 인간복제라는 미묘한 소재를 꽤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영국의 한적한 숲 속에 있는 기숙학교 '헤일셤'엔 다양한 연령의 남녀 아이들이 생활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언제부터 어떻게 그곳에서 생활했는지 모른 채, 지도교사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외부와 차단된 환경에서 성장한다. 그 애들은 언젠가 자신들의 본체에게 장기기증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복제인간들이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지 아닌지는 불분명하다. (성인이 되면 확실히 정체성을 자각하긴 한다) 영화를 보면서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기숙학교라 생각했는데, (복제 인간이 아닌) 지도교사의 입을 통해 이 아이들에겐 정해진 목적만 있을 뿐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감지하고 섬찟했다.


토미를 사랑하지만 루스에게 빼앗기고 가슴 아파하는 캐시


  어린 소년과 소녀들은 자라면서 서로에게 호감을 갖는다. 캐시(캐리 멀리건 Carey Mulligan), 루스(키이라 나이틀리 Keira Knightley), 토미(앤드류 가필드 Andrew Garfield)는 어릴 때부터 유독 친했다. 사려 깊은 캐시와 감정 표현에 서툰 토미는 서로에게 끌리지만, 적극적인 루스가 끼어들며 둘의 관계는 어긋난다. 성인이 되어 기숙학교를 나와 농장에서 생활하게 된 세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기증 유예' 소문을 듣는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장기기증만 하다 삶을 마감하는 게 아니라, 오리지널 인간들처럼 천수를 누리며 사는 삶을 어설프게나마 상상한다.


'기증 유예'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나선 세 사람


  그들이 운명적으로 주어진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찾아가는 여정은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 기증 유예만이 삶을 연장하는 길이지만, 불분명한 소문의 실체 때문인지 거역할 수 없는 삶에 반항하지 못하는 클론들은 주어진 생을 이상하리만치 순하게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복제인간이란 정체성을 가졌어도 그들은 살아 숨 쉬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인간이다. 자신들 존재의 이유에 의의를 제기하고, 삶의 연장을 적극적으로 모색해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진짜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흔들리긴 해도)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는다. 인간보다 더 섬세하고 감정적인 그들이 어째서 생의 근본적인 문제에서는 함구하는지 모르겠다. 마치 친구에게 사랑을 빼앗기고도 별다른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캐시처럼.  


농장에서 생활하는 복제 인간들


  10여 년의 시간이 흘러, 캐시는 기증 병원에서 일한다. 아직 한 번도 장기 기증을 하지 않았지만 언젠가 그날이 오리라는 것을 안다. 이미 몇 번 장기를 기증하고 다음을 기다리는 루스와 우연히 만난 그녀는, 루스의 다음 수술은 죽음으로 마감되리라는 것을 예감한다. 그녀는 이미 두 번이나 수술한 토미를 찾아가 뒤늦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어린 시절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이제야 확인해서일까. 사려 깊지만 답답하기도 했던 캐시가 토미와 함께 적극적으로 '기증 유예'의 삶을 모색하며 기숙학교 시절의 지도 교사를 찾아간다. 복제 인간이 아닌 교사에게, 클론을 벗어나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하지만 너무나 허무한 대답만 듣는다. 기증 유예.. 그런 건 없다는.  




  복제인간을 다룬 소설이나 영화는 대부분 클론이 야기하는 인간의 공포와 윤리 문제를 다룬다. 인간과 똑같지만 자연의 섭리가 아닌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인간을 인간으로 보아야 하는가. 난치병 치료와 생명연장을 위해 만들어낸 나와 똑같은 그는 나인가 아닌가. 나의 또 다른 나를 어디까지 써먹고 어떻게 폐기시켜야 하는가. 클론이 자신의 본체를 공격해 존재 자체를 전복시킬지도 모른다는 원초적 공포 못지않게,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복제 인간들에 대한 연민과 안타까움도 생각을 복잡하게 한다.


누가 이들을 복제인간이라 생각할 수 있을까


  이 영화에서는 본체들이 나오지 않는다. 간간이 등장하는 기숙학교 교사들 외엔 모두 복제 인간들이다. 굳이 본체와의 투샷을 일부러 피하지 않더라도, 그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매우 인간적인) 인간들이다. 이 리얼한 현실감은 젊고 감성 충만한 그들이 누군가에게 장기를 기증하기 위해 수술대 위에 눕는다는 상상만으로도 비극적이다. 그들이 기증을 위한 삶이 아닌, 주체적으로 살고자 투쟁했다면 오히려 클론다웠을 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마치 체제와 이념에 굴복하는 현대 국가의 시민들처럼, 타고난 운명을 받아들인다. 잠깐의 의심과 갈등과 꿈틀거림이 있었지만, 세상을 전복하고 자신의 존재를 뒤집으려 하지 않는다. 세상을 향한 개인의 저항이 갈수록 무기력해지는 현실을 인간이 아닌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클론이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이들이 더 인간답게 보인다. 그들은 수술대 위에 누워 무기력하게 죽어가는데, 복제 인간이 아닌 오리지널 인간이라고 뭐가 다를까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나에게 가상현실을 다룬 SF가 아닌, 인간 세상을 사실보다 더 사실적으로 창조해 보여주는 하이퍼 리얼리즘 영화다.



  원작 소설은 영화와는 또 다른 아우라가 있을 것이다. 빠른 시일 내에 소설을 읽어야겠다는 강박이 생겼다. 영화를 본 지 좀 되어 사실 세세한 장면은 가물가물하다. 전체적인 이미지는 떠오르지만 세부묘사는 몽롱한 풍경화처럼 아련하다. 한번 본 그림보다, 그 그림을 그린 화가가 본 진짜 풍경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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