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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Nov 17. 2018

너라도 행복해서 다행이야!

<Christopher Robin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2018

  솔직히, 나는 '위니 더 푸'를 잘 모른다. 이 캐릭터는 거의 90년 넘게 지구에서 사랑받으며 존재감을 뽐내고 있지만, 나의 어린 시절은 교묘하게 비켜갔다. 그래도 익숙하긴 하다. 빨간 윗도리만 입은 채 드러낸 통통한 몸은, (인간이 이러고 돌아다니면 변태지만) 귀엽고 푸근한 모습으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곰돌이 ‘위니 더 푸’


  영화 <Christopher Robin>은 어른이 된 크리스토퍼 로빈(유안 맥그리거 Ewan McGregor)이 위니 더 푸를 다시 만나는 이야기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지만, 사실 이 이야기에 감동받는 어른이 몇이나 될까 싶다. 감동까진 아니더라도 아련한 추억에 젖을 수는 있다. '곰돌이 푸' 책을 읽고 자랐거나, 캐릭터 장난감을 갖고 놀았던 어른이라면 말이다. 난 둘 다 해당되지 않는다. 오히려 어른이 되어 문구나 팬시 용품에 박힌 푸와 친구들(이요르, 티거, 피글릿 등)을 무심히 봐왔다. 얘네들이 이렇게 유명한 애들인지(구체적으로 어마어마한 저작권료를 벌어들이는 캐릭터들인지) 몰랐다. 푸는 나에게 어린 시절을 함께 한 추억의 친구가 아니라, 몸값이 장난 아닌 캐릭터일 뿐이다.


어른이 된 크리스토퍼 앞에 나타난 푸


  영화는 뻔하다. 100살 가까이 된 푸만큼 낡고 진부하다.


  어른이 되어 동심을 깡그리 잃어버린 채 일에 치여 사는 크리스토퍼는 우연히 푸를 만나며 모험한다. 그 모험이 어린 시절 헌드레드 에이커 숲에서 놀았던 수준이 아니라는 게 문제다. 갑자기 런던에 나타난 푸를 크리스토퍼는 고향집에 데려다 주려한다. 말하는 곰인형이란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사람들 눈을 피해 가며 하는 기차여행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가는 어른의 고난의 여정과 다를 바 없다. 한 마디로 푸는 말썽꾸러기 아이고, 크리스토퍼는 보호자다. 푸는 끊임없이 질문하고, 움직이고, 풍선 사달라 조르며, 사라지기 일쑤다. 주말에도 할 일이 산더미인 크리스토퍼는 짜증 나는 걸 참아가며 푸와 동행한다.


  웃기는 건, 애처럼 행동하는 푸가 할아버지 목소리를 내는 기운 없는 노인 같다는 것이다. 이미 커버린 크리스토퍼가 안 놀아주고, 잃어버린 친구들 생각에 풀이 죽은 거라 짐작되지만, 쓰러져가는 노인처럼 쇠잔해 보인다.


푸를 보자 당황하는 크리스토퍼


  푸는 주말도 가족과 함께하지 못하는 크리스토퍼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투척한다.


"아무것도 안 하다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을 하게 된다."


  정말 이 곰돌이의 어록을 믿고 싶지만, 푸가 틀렸다.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것도 못 한다. 자신과 가족을 책임져야 할 어른이 아무것도 안 하며 사는 게 얼마나 괴롭고 서글픈지 푸는 짐작도 못할 것이다. 푸는 모른다, 어른들의 세계를. 그에겐 어린 크리스토퍼와 놀았던 숲과 동물 인형 친구들이 세상의 전부다. 그는 런던에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 부하 직원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직장인으로 사는 어른 크리스토퍼가 지닌 책임의 무게를 알지 못한다.

  주말도 없이 속물처럼 일만 하는 크리스토퍼가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겠지만, 정작 그가 실업자가 되어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그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나타나서 얼핏 이상적으로 보이는 다른 말을 했을 것이다. '꿈꾸기를 포기하지 말라' 든가  '포기하지 않으면 기회는 반드시 온다' 같은. 푸까지 보태지 않아도 세상엔 그런 말들이 차고 넘친다. 지겨울 정도로.


어린 시절 크리스토퍼의 동물 인형 친구들


  이건 인정한다. 푸의 메시지는 나름 신선하다. 열심히 하라는 사람은 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사람은 이제껏 없었으니까. 그래도 와 닿지는 않는다. 푸를 만나서 행복해하는 크리스토퍼를 보는 건 좋지만, 딱 거기까지다. 나까지 행복해지진 않는다. 이 영화 역시 세파에 찌든 어른들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21세기 디즈니가 이 이야기를 이렇게 안이하고 기교 없이 순박하게 만들었을 리 없다. 마치 맛은 없지만 무공해 식품이니 몸 생각하고 먹으라며, 밭에서 수확한 채소를 별다른 조리 없이 내놓은 느낌이다. 뭐, 가끔 그런 것도 먹을 필요는 있다.   


크리스토퍼의 아내와 딸


  푸의 말을 듣고 크리스토퍼는 무겁고 골치 아팠던 문제를 해결한다. 주말도 반납하고 가족도 내팽개친 채 일하는 그에게 푸가 역발상의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일을 손에서 놓으니 해결책이 보였다는 건 고무적인 일이지만, 그런 행운은 어쩌다 한 번이고 누구에게나 있지 않다. 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친구를 행복하게 해 준다. 푸를 다시 만나서 행복해지는 건 크리스토퍼 하나로 충분하다.




  이 영화를 비난하는 것처럼 썼지만, 나 역시 모처럼 긴장감 없이 멍 때리며 화면을 응시할 수 있어서 편안했다. 심장을 쫄깃하게 하는 스릴도, 현란한 캐릭터 쇼도, 허를 찌르는 반전도 없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이 영화는 푸의 목소리처럼 기운 없는 노인 같기도 하지만, 끊임없이 움직이는 아이처럼 철없이 정신없기도 한다.


  이 동화가 판타지인 것은 주인공이 말하는 곰인형과 모험을 해서가 아니라, 깔끔하고 명쾌하게 선과 악이 나뉜 세상이 배경이기 때문이다. 어른 크리스토퍼가 겪는 세상의 풍파는 곰인형 한 마디에 해결될 정도로 깔끔하고 공정하다. 가족들은 오해와 불신을 단번에 끝내고 손쉽게 사랑을 확인한다. 시골 마을에서 런던까지 번거롭게 왔다 갔다 하는 수고를 했어도, 그들이 사는 세상은 어린 크리스토퍼가 살았던 동화에서 몇 발자국 나아가지 않은, 여전히 아름답고 이상적인 세상이다. 그래서 어른들에게도 동화가 필요한 듯싶다. 이 세상에 그런 곳은 없지만, 이 세상에 엄연히 존재했으면 하는 그곳으로 피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그곳을 엿보고 그리워하는 취미는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기에 가질 수 있다. 아이들은 아직 그곳에 살고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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