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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Dec 14. 2018

제대로만 하면 육아야말로 영웅적인 일이다!

영화 <INCREDIBLES 2> 2018년

  세상의 모든 아빠와 엄마는 자식들에게 영웅이다. 아니, 영웅이어야 한다. 어리고 연약한 존재들은 부모의 절대적 사랑과 보호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하다. 부모가 전지전능하게 지켜주지 않으면, 이 험한 세상에서 어떤 꼴로 비참함을 맛볼지 알 수 없다. 자식을 낳아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아이 하나를 온전히 책임지고 성인으로 길러내는 것은 세상을 구하는 것만큼이나 험난하고 초인적인 능력을 요구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렇게 보면, 세상의 모든 부모는 인크레더블 하고 어메이징 한 히어로들이다.  



  슈퍼파워를 가진 엄마 아빠도 가정을 지키고 아이들을 기르는 일에 고심이 많다. 히어로 활동이 불법인 상황에서 나섰다가 여론이 안 좋아지자 지원마저 끊긴다. 일라스티걸과 인크레더블맨의 삶은 팍팍해진다. 초능력은 불법으로 간주되고, 히어로들에 대한 인식은 악화된다. 출중한 능력은 숨겨야 하는 치부이고,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이들마저 불이익을 받을까 전전긍긍한다. 지금까지 고생한 남편 대신 헬렌은 자신이 가족을 부양하겠다고 나선다. 그러던 중, 글로벌 기업 CEO 윈스턴 데버가 히어로 이미지 개선에 대한 홍보 프로젝트를 제안하며 적합한 인물로 '일라스티걸'을 지목한다.



  인크레더블맨은 자신이 아닌 일라스티걸, 즉 아내에게 제안이 들어왔다는 것에 은근 자존심이 상한다. 히어로도 평범한 남편일 때는 가부장적이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아내가 밖에서 활약할 동안 그는 집에서 아이들을 돌본다. 사춘기인 십 대 딸 바이올렛은 극심한 감정 기복을 드러내며 애를 먹인다. 개구쟁이 아들 대쉬는 사고 다발 지역에서 날뛰는 거나 마찬가지고, 막내 잭잭이는 그야말로 예측 불허다. 헬렌이 밖에서 악당과 싸우며 세상을 구하는 동안, 독박 육아에 시달리는 밥은 악당들을, 아니 아이들을 감당하며 피골이 상접해진다. 게다 지금까지 발현되지 않았던 아기 잭잭이의 초능력 파워가 드러나며 놀람과 혼란의 시간이 이어진다. 슈퍼히어로 슈트 디자이너 에드나는 잭잭이에게도 컨트롤 슈트를 만들어준다. 그 사이 헬렌은 데버 남매의 프로젝트에 부응하며, 히어로의 합법화를 위해 활약하다 '스크린슬레이버'의 존재를 알게 된다. 위기에 빠진 헬렌을 위해 밥이 나서고, 삼 남매는 엄마 아빠를 위험에서 구하기 위해 인크레더빌(인크레더블 카)을 타고 출동한다.  



  이 가족이 처음 언더마이어를 처단할 때, 아이들까지 슈퍼히어로 슈트를 입고 현란한 파워를 뽐내며 현장을 누빈다. 그 와중에 아기 잭잭이는 이 사람 저 사람 손에 넘겨지며 방해물 취급받는다. 모두들 막내를 걱정하지만 누구도 떠맡으려 하지 않는다. 애보기는 무능력한 사람의 몫인 듯, 다들 자기 나름의  '영웅적 행위'를 하기 위해 아기를 공 넘기듯, 다른 사람 손에 넘기지 못해 안달이다.


  세상을 구하는 일은 위험하지만 짜릿하고 폼난다. 성공하면 자아실현이 되고 보람과 긍지도 생긴다. 아기를 돌보는 일은, 아무리 사랑으로 뭉친 가족이라도 기꺼이 감당하겠다고 말하기 쉽지 않다. 오죽하면 밭 맬래 애 볼래 물으면 밭을 맨다고 하지 않나. 애보기는 무한한 인내심을 요구하고 초인적인 힘이 들지만 티가 안 난다. 제일 중요한 건 끝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의 위기는 악당을 처단하면 끝나고, 모든 작업장엔 퇴근 시간이라는 것이 있다. 육아는, 아이가 저 혼자 큰 줄 알고 부모 곁을 자발적으로 벗어나기 전까진 멈출 수 없다.



  슈퍼히어로 아빠도 처음 하는 육아에 멘붕이 된다. 아이는 그릇을 들러엎고 끊임없이 물건을 집어던지며 먹은 것을 게워낸다. 호기심은 충만하고 에너지는 넘치며 귀는 예민하고 눈은 무지 밝다. 결정적으로 안 자려 발버둥 치며, 아주 사소한 일에도 미친 듯이 울어재낀다. 게다가 피는 못 속인다고, 잭잭이는 무려 열일곱 가지나 되는 파워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자네 아이는 다형체야. 잠재력이 무한하지. 아기들은 뭐든 될 수 있어." 에드나의 말처럼, 잭잭이는 순수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존재다. 말 그대로 무엇으로도 변신할 수 있다. 잭잭이가 눈에서 레이저를 쏘아대고 여러 명으로 나뉘며 때론 불길에 휩싸인 괴물로 변하는 모습은, 육아의 지난함에 지친 양육자의 심정이 반영된, 아이에 대한 '은유'가 아니라 '직유'로 느껴진다. 조금의 이해심이나 인내심도 없고, 눈치도 없는 아기들은 (양육자의 눈엔) 이기적인 악마일 수밖에 없다. 원하는 것을 쟁취할 때까지 타협 없이 울고 자비 없이 떼쓰는 그들은 천사 같은 악마이고, 악마 같은 천사다. 성질나는 대로 예고 없이 변신하는 잭잭이는 괴물처럼 부풀어 오른 와중에도 엄마를 찾으며 칭얼댄다.  




  후반부에 온 가족이 출동해 데버 테크사의 배에서 악의 세력과 맞설 때, 가족들은 더 이상 잭잭이를 떠넘기지 않는다. 잭잭이의 파워가 악당 처치에 도움이 되는 것도 있지만, 엄마 없이 지내는 동안 가족들은 (그동안 엄마가 도맡았던) 육아의 고충을 다 함께 공유했기에 이심전심이 되지 않았나 싶다. 잭잭이는 가족들이 번갈아가며 안고 뛰어야 하는 귀찮은 짐짝이 아니라, 기꺼이 보호하고 지켜야 할 구성원이자 제법 쓸만한 '인크레더블'이라는 걸 그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에블린 & 윈스턴 데버


  우리의 부모는 인크레더블맨이나 일라스티걸이 아니다. 우리 역시 슈퍼파워는 없다. 평범한 사람들은 평범한 자식을 낳지만, 평범하지 않은 정성과 사랑으로 은연중에 영웅적 행위를 한다. 세상은 구하지 못하더라도, 각자 자기 자식만 똑바로 키워낸다면 세상에 영웅이 필요할 일은 없을 것이다.

  히어로에 대한 비뚤어진 억하심정을 갖고 악당이 된 에블린 데버는 부모의 죽음으로 심경의 변화를 겪었다. 같은 부모의 자식이지만 오빠 윈스턴은 다른 방향으로 삶의 궤도를 잡았다. 데버 1세는 히어로를 좋아하고 지원했지만, 딸자식을 키우는 일에는 영웅적인 에너지를 덜 쏟았던 것 같다. 악당을 만든 건 그의 부모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한 사람의 인격 형성과 가치관에 부모의 영향이 절대적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부모가 아무리 노력하고 헌신해도 자식이 바람직한 인격체로 자란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육아는 악당을 쳐부수는 것보다 위험부담이 크고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요원한 모험이자 기적이다.


  인크레더블맨과 일라스티걸을 진정한 영웅으로 만드는 것은, 히어로의 존재를 인정해주는 세상이 아니라 그들을 빼닮은 아이들이 만들어 갈 미래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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