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이스 Dec 28. 2018

혈연으로부터 달아나기

책 <공터에서> 김훈 장편소설, 해냄, 2017년

나는 그저 겨우 지낸다. 니 동생은 학교에 댕기는데, 머지않아 입대하게 되었다.
니가 제대하자 니 동생이 입대하게 되니까 우리 집이 나라에 공이 많은 것이냐.
너의 아버지라는 사람은 무슨 헛것이 씌었는지 도통 밖으로만 싸지르고
두어 달에 한 번씩 집에 오는데, 왜 오는지 모르겠다.
내가 그 인간하고 살을 섞고 살아서 너희들을 내지른 세월을 생각하면
내 가슴에 벌레가 끓고 들불이 인다.
너는 힘들고 쓸쓸하면 너보다 더 쓸쓸한 이 어미를 생각해라.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의 전부다.
남의 나라 쌈하는데 가서 앞서서 날뛰지 말고,
조용히 엎드려 있다가 다치지나 말고 돌아와라.



장성한 아들에게 쓴 어미의 편지는, 단호한 이 책의 어느 갈피보다 내 마음에 오래 남는다. 길지 않은 문장에 어머니의 척박한 인생사가 한눈에 들어오고, 그 아들의 스산한 삶 또한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 이 편지의 수신인이 어머니 글씨에 눈물이라도 흘렸다면, 예상 가능한 반응에 오히려 읽는 나는 담담했을 것이다. 아들은 가나다라를 겨우 엮어가면서 비틀거리는 어머니의 글씨를 보며 혈연으로부터 달아는 일의 어려움에 아득해한다. 그러나 그 아득함을 발판으로 삼아 더 먼 곳으로 달려간다. 어머니, 시대, 조국에서 달아나기 위해.


작가 특유의 단호하고 정갈한 문장을 엮어 만든 이 이야기는, 칼바람 부는 겨울 공터에 혼자 서있는 것처럼 서늘하면서도 가슴에 뜨거운 것을 치밀어 오르게 한다. 너무 춥고 척박한 시대는 그리 먼 옛날이 아닌데도 까마득히 멀게 느껴진다. 진짜 먼 과거라서가 아니라, 그만큼 멀리 밀어내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닌가 싶다.


1920년 대 태어난 마동수는 만주 일대를 떠돌다 한국전쟁을 치르며 파란의 시대를 겪어낸다. 군부독재 시절을 거쳐 그가 쇠퇴하여 멸하기까지, 피난지에서 만난 과부 아닌 과부 이도순과 결합해 아들 둘을 내지르고 방랑하는 길지 않은 평생이 그려진다. 그의 생 후반부와 겹쳐지며 장남 마장세가 장성해 베트남전에 참전한 후 미크로네시의 괌으로 달아나는 여정과, 차남 마차세가 5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격동의 대한민국을 살아내는 과정이 냉정하고 모질게 펼쳐진다. 세 부자의 삶이 삭막한 것은, 그들의 인간성이 저온이어서라기 보다 그들이 처한 사회와 시대가 그걸 감내하는 운명들에게 모질기 때문이다.


식민 지배, 한국전쟁, 가난, 군부독재, 언론통폐합, 해고는 비리와 멸시를 낳는다. 사람들은 지독하게 못살았고 비굴했으며 발버둥 치다 더 움츠러든다. 누구는 평생 방랑하고, 누구는 삶을 저주처럼 씹어 삼키고, 누구는 되도록 멀리 달아난다. 감내하는 자는 삶의 무게에 온 몸이 짜부러든 것처럼 스치는 바람에도 휘청거린다. 이처럼 스산한 시대가 내 삶을 교묘히 비껴간 것에 (나도 모르게) 안도의 숨이 나올 정도로, 마씨 세 부자와 이도순의 삶은 객관적으로 보기에 불운하다. (그렇다고 내가 행복하다는 얘긴 아니다. 시대와 환경이 낳은 주관적, 상대적 불행은 인생에 늘 상주해 있다.)


불행한 사람들은 가족에 대한 연민부터 재빨리 지운다. 척박한 시대는 가진 것 없이 태어난 사람에게 생이 고행이라는 사실을 너무 빨리, 너무 직접적으로 알려준다. 자식들은 부모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지 않는다. 아예 연을 끊다시피 한 자식도, 울음을 내뱉는 자식도 한 생의 소멸에 별다른 감흥이 없다. 형제가 아버지의 죽음에 대처하는 모습은 너무 적나라하게 사실적이어서 오히려 민망하다. 어머니라고 다르지 않다. 요양원에서 몇 년 동안 정신이 오락가락한 채 지낸 늙은 여자의 말년은 결코 아름답지 않고, 그녀의 인생은 그 누구에게도 기념이 되지 않는다. 생이 다 비루하다지만, 평생 고생과 원망만 하다 저무는 생명은 무서울 정도로 허무하다. 마동수와 이도순이 그 시대를 산 한국인의 전형 중 하나라 해도 그들의 인생은 너무 스산해서 눈물조차 안 나온다. 그들의 아들들이 '부모'라고 명명된 다른 생을 처리하는 방식은 냉정하지만 욕할 수 없는 공감을 자아낸다.  


마장세와 마차세 형제는 시대를 다른 식으로 대면한다. 베트남 전에서 (어쩔 수 없이) 전우를 사살한 마장세는 한국을 버린다. 부모와 형제도 싸잡아 버린다. 국가가 하사한 무공훈장 따위는 그의 살인의 기억을 더 도드라지게 할 뿐이다. 그는 근본 없이 태어난 고아보다 더 야멸차게 혈연으로부터 멀리 달아난다. 그의 부유는 안타깝지만 일면 타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누가 이런 시대에 태어나고 싶어서 나왔는가. 원하지 않는 시대에 원하지 않는 곳에 태어났는데, 사는 것이라도 마음대로 못할 이유가 있는가.


마차세는 따뜻한 온기를 지닌 여자와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는다. 실업의 위기와 가난한 소시민의 삶은 그를 쉼 없이 생활 전선으로 몰아낸다. 다시 취직하고 삶의 기반을 마련하는 동안 그의 입안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어 준 것은 아내다. 그가 새로 만든 가족과 혈연은 아내와 딸이지, 스산한 삶의 기억만 안겨준 부모도 노골적으로 가족을 저버린 형도 아니다.


다른 삶을 사는 듯 하지만 세 부자는 실은 같은 삶의 무늬를 그리고 있다. 그들은 끊임없이 달아난다. 달아날 곳이 없는데도 그들은 최선을 다해 벗어나려 한다. 물리적 땅덩어리로부터, 지긋지긋한 생활고로부터, 연민 없는 혈연으로부터, 잘못 타고났다 여겨지는 시대로부터. 그리고 어느 날, 자신이 달아났던 곳에 도로 돌아와 있는 걸 발견할 것이다. 영웅이 되지 못한 소시민들은 시대와 불화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땅바닥을 기어가며 삶을 이어간다. 멀리 뛰어도 한순간에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불가항력은 개인이 어쩔 수 없다. 부모는 늙어 병들고, 전쟁터에선 사람이 죽고, 잘 나가던 사업은 망하고, 자식은 태어나 자란다. 독재자는 죽었지만 다른 양상의 독재가 시대를 뒤흔든다. 불행은 대를 이어 면면히 이어지고, 잠깐씩 스며 나온 삶의 온기가 그 불행을 견디게 해 준다.




이 책이 세상에 나온 의도와는 좀 다른 듯 하지만, 마씨 가족의 연대기를 들여다보며 가족이야말로 가장 무심하지만 가장 끈질긴 인연이란 생각이 든다. 물기 빼고 건조하게 펼쳐진 마씨 부자의 행적은 인간적으로 보이지만 소름 끼치게 냉정한 것도 사실이다. 마장세의 사업이 한순간에 망하고, 마차세의 아내가 기적적으로 착한 여자인 것은 아무 인과관계가 없지만, 마씨 형제의 삶은 이런 일들에 영향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부유할 것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사람들은 시대에 밀려 앞으로 나가거나 뒤로 처지고, 삶은 잔인하지만 따뜻하게 이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환상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