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이스 Apr 09. 2019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영화 <경계선 BORDER> 2018년

  예전에 읽은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현재 지구 상 최고의 복지국가들이 모여있는 북유럽에선 아직도 요정이나 트롤(troll 스칸디나비아와 스코틀랜드 전설에 등장하는 인간과 비슷한 모습의 거인족)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고 한다. 전 세계 어린이들이 범국가적으로 산타클로스를 믿듯이 말이다.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동화적 판타지에 근거한 게 아니라 실제로 혹한을 견뎌내고 인간과 맞서거나 도와주는, 인간과 매우 닮았지만 결코 인간이 아닌 초자연적인 존재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것이다.  


  덴마크와 스웨덴의 합작 영화 「경계선 BORDER」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선에 존재하는 이들이 등장해 관객을 경악하고 당혹스럽게 한다.


세관 심사에서 처음 만난 보레와 티나


  공항 출입국 세관 요원으로 일하는 경찰 티나(에바 멜란데르 Eva Melander)는 단언컨대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아우라를 지닌 여자다. 일단 외모가 참, 남다르다. 분명 여잔데 늑대 같은 동물을 연상시킬 만큼 거칠게(?) 생겼다. 게다가 냄새로 다른 이의 숨겨진 감정까지 잡아내는 매우 특이한 능력을 갖고 있다. 불법적인 물건을 반입하거나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죄책감과 수치심에서 풍기는 독특한 체취를 캐치해 범법자들을 잡아낸다.

  그러던 어느 날, 티나는 입국하는 사람들 중에서 뭔가 수상한 남자 보레(에로 밀로노프 Eero Milonoff)를 만난다. 그리고 그에게 묘한 매력을 느낀다. 보레 역시 티나와 비슷한 아우라를 지니고 있다. 짐승을 연상시키는 외모와 불분명한 말투, 게다 뭔가 치명적인 비밀을 품고 있는 듯한 여운까지.


  티나는 자신의 특이한 능력과 추한 외모가 염색체 결함 때문이라 생각한다. 자신을 입양한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살았지만, 친부모만이 답해줄 수 있는 이 기이한 정체성에 대한 진실을 갈망하며 살아왔다. 그녀는 외딴 숲 속 집에서 자신에게 빌붙어먹는 무능한 남자와 함께 산다. 인간 세계에 몸담고 있지만 숲 속 짐승들과 더 능숙하게 교감한다. 또한 경찰로 일하며 인간의 추하고 어두운 면을 접한다. 아동 포르노를 만드는 남자와 소아성애자 커플을 적발하며 인간에 대한 혐오와 분노에 치를 떤다.


인간을 피해 숲 속으로 소풍 온 둘


  (티나도 인간처럼 살긴 하지만) 보통 인간이 보기에 티나는 그로테스크하고 비밀스럽게 보인다. 그녀가 자신과 흡사한 보레를 집에 들이고 교감하면서 드러내는 정체성은 매우 놀랍다. 보레는 분명 남자이지만 여성의 생식기를 갖고 있다. 티나는 여성이지만 몸안에서 남성의 생식기를 분출(?)하는 특이한 능력을 갖고 있다. 집이 아닌 숲 속에서 둘이 사랑하는 모습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의 짝짓기에 가까워 보인다. (이건 직접 봐야 한다. 말로 설명하는 덴 한계가 있다.) 암수가 바뀐 생식기, 꼬리를 절단한 듯한 흉터, 짐승과 교감하며 구더기에 환장하는 식성, (트롤은 번개를 쫓아다닌다고 하는데) 얼굴에 번개 맞은 자국까지. 티나와 보레는 많은 공통점을 갖고 있는 세상에 단 둘 뿐인 존재들이다. 보레는 정기적으로 히시트라는 무수정란 아기를 낳는 것으로 자신은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마치 '나는 자연인이다'를 찍는 듯한 두 사람


  대체 이런 존재를 설정한 인간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스칸디나비아에서 태어나 요정과 트롤을 소꿉친구처럼 여기며 자란 북유럽인이 진짜 트롤을 만난다면, 아니 신이 된 것처럼 트롤을 만든다면 이런 모습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티나와 보레에겐, 비인간이지만 인간과 흡사한 존재를 두려워하면서도 혐오하는 인류의 시선이 담겨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인간의 혐오를 자극하는 존재들이 인간이 하는 가장 비인간적이고 역겨운 짓을 응징한다는 것이다.


  티나는 인간에게 선의를 갖고 있고 딱히 피해를 주지 않지만(오히려 인간에게 도움을 준다), 매우 이질적이고 기괴하다. 혐오까진 아니더라도 확실히 그로테스크하다. 그녀(?) 내면엔 짐승의 본능과 인간의 정체성이 복잡하게 녹아있으며, 초능력이 있지만 사회성은 부족하다. 인간 남자와 사랑을 나눌 수 없는 티나는 자신의 비밀과 정체성을 혼란스러워하다 보레를 만나면서 마음껏 본능을 드러낸다.

  보레는 티나와 같은 종족(?)이지만, 그녀와 달리 인간에게 적의를 품고 있다. 학대와 차별을 견디며 살아온 그는 인간에 대한 복수를 꿈꾼다. 소아성애자를 무력으로 처단하는가 하면 자신이 낳은 히시트를 인간 아기와 바꿔 놓는 고약한 짓을 저지르기도 한다.


“인간들은 지구 상의 모든 걸 이용해 먹는 기생충들이야. 심지어 자기들 후손까지도 자신들의 쾌락을 위해서. 인간이란 종자들은 질병 그 자체야.”


  추한 괴물 보레의 입에서 나온 말은 반박의 여지가 없어서 슬프다. 극히 일부이긴 해도 인간의 추함은 티롤의 추함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둡고 역겹다. 그동안 애써 간직해왔던 인내심을 버린 티나 역시 예전처럼 (고통을 감내하며 인간인 척하며) 살지 않겠다 선언한다.


  친부모가 지어준 티나의 본명은 '레이바'다. ('티나' 보다 확실히 덜 인간적인 이름이다) 인간으로 살기 위해 그녀는 꼬리를 (양아버지에 의해) 잘라야 했지만 끝내 인간이 되지 못한다. 당연하다, 그녀는 인간이 아니니까. 굳이 따지자면, 인간과 그녀는 같은 속(genus) 일지 모르지만 같은 종(species)은 아닌 것이다. 티나는 (보레가 그녀와 관계해서 낳은) 아기를 데리고 핀란드로 가려한다. 아마 자신을 닮은,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야 할 아기의 미래를 위해 내린 결단인 듯싶다.


  핀란드는 다른 북유럽보다 트롤과 요정을 믿는 사람이 더 많은 건가? 핀란드 호수와 자작나무 숲은 인간의 발길이 뜸하고, 스웨덴이나 덴마크 혹은 노르웨이보다 비인간이 살기에 더 적합한 곳인가? 나의 짧은 지식으론 알 수 없다.  

    

  이 영화는 나를 조금 당황하게 했지만 매우 신선하고 독특하다. 2018년 칸느 영화제에서 어떤 상을 수상했는지 모르겠지만(수상 여부는 내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굳이 찾아보지 않았다), 그곳에서 엄청 주목받았다고 한다. 호불호는 갈리겠지만 이 영화를 본 사람은 동의하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 이렇게 독특하고 기이하며 그로테스크한 영화는 보기 드물다는 것을. 특히 보레가 낳은 아기의 기괴한 형상은 섬찟하면서도 은근히 아름답다.


  북유럽 사람들이 트롤(혹은 요정 기타 등등)에 대해 갖는 두려움과 신비함을 바탕으로 한 이중적인 관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마 평생 나는 그들 무의식의 원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이 아시아인의 무의식을 잘 모르듯이. 하지만 이런 식의 낯선 충격과 간접 경험은 해볼 만하다.


  그들은 트롤이 존재한다고 진심으로 믿는 걸까. 혹시 순수해 보이고 싶어 억지 쓰는 거 아닌가. 나도 어쩔 수 없는 인간이라 자꾸 의심하고 캐묻게 된다. 트롤 비슷한 존재들의 거침없는(?) 사생활을 보고 나니 더 의구심이 든다. 진짜 쟤들은 존재하는 건가. 그렇다면 그들을 인간과 구분하는 경계는 정당한가.   나는 누구에게 소외받으며 어떤 경계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생존하고 있는 것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시를 쓰지 못하는 시인도 시인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